[당근] 한국의 야담 61
[닭값과 봉값]
봉이 김선달이 서울 구경을 하러 갔겠다.
종로에 나가 보니 궁인들이 나와서 길에다 황토를 깐다 잡인을 물린다, 야단법석이야. 곧
임금 행차가 있을 모양이지. 구경거리가 생겼으니 마침 잘 되었다 하고, 행차가 이를 동안
장마당 구경을 했어.
장터를 다니다 보니 마침 닭장수가 닭을 사고 팔고 있는데, 한참 보자니까 이게 아주
능구렁이야.
시골에서 닭 팔러 올라온 사람을 어찌어찌 으르고 구슬려서 터무니없이 싼 값에 닭을
사서는, 이걸 또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판단 말이야.
시골 사람이라고 함부로 깔보고 등쳐 먹는 것을 보니 슬그머니 부아가 끓어오르지. 김
선달이 그걸 보고 어디 가만히 있을 사람인가.
닭장수 앞에 가서 한참 동안 쭈그리고 앉아 멀뚱멀뚱 닭 구경을 하다가,
"여보, 주인장. 저건 무슨 새요?"
하고 벼슬이 시뻘건 수탉을 가리키며 묻는구나.
닭장수가 그 꼴을 보니 어이가 없어. 아무리 어수룩한 시골뜨기라 해도 어찌 닭을 모른단
말인가.
김 선달은 한 술 더 떠서,
"저게 혹시 이름만 듣던 봉이 아닌가요?"
하고 묻거든. 닭장수는 이런 멍청한 바보가 있나 싶어서,
"그래, 그게 바로 봉일세. 잘 알아보는군."
했단 말이야. 김 선달은 짐짓 고개를 주억거리며 군침을 꿀꺽 삼키네.
"값은 얼마나 가오? 아무래도 비쌀 테지."
이쯤 되니 닭장수도 슬그머니 욕심이 생기지. 저 촌뜨기를 속여서 횡재나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
"스무 냥일세. 사겠나?"
아무리 큰 닭이라야 석 냥이면 너끈히 사고도 남을 것을, 닭장수가 아주 바가지를 씌우기로
작정을 했지.
김 선달은 비싸다 말도 없이 선뜻 엽전 스무 냥을 내고 수탉을 사더니, 임금 행차를
구경한다고 어슬렁어슬렁 큰길로 나가더란 말이야.
그 때 임금 행차가 오는지 저 멀리서 '물렀거라!' 소리가 요란하거든. 김 선달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수탉을 안고 얼른 길 한가운데로 나아가 넙죽 엎드리는구나.
벽제 소리가 나면 길 가던 사람도 몸을 피하는 법인데, 도리어 길 가운데로 나가 행차를
가로막으니 그게 보통 일인가.
나졸들이 달려들어 밀고 당기고 하는 통에 행차가 멎었단 말이야. 임금이 무슨 일인가
물으니 여차여차하다고 해서 이윽고 김 선달이 임금 앞에 불려 갔어.
"너는 어떤 백성인데 내가 가는 길에서 야료를 하는고?"
"예. 소인은 평양 사는 김가온데, 서울 구경을 왔다가 봉을 한 마리 얻었습니다요. 이 귀한
것을 어찌 소인 같은 백성이 가지겠습니까? 마침 상감 행차가 있다기에 바치려고
가져왔습니다."
하고 김 선달이 수탉을 들어올리는구나. 임금이 내려다보니 영락없는 수탉이거든.
"그래, 그것이 봉이란 말이냐?"
"예. 이걸 판 사람이 틀림없이 그렇게 말했습니다요."
임금이 대충 사정을 알아차리고 사령들을 불러 엄명을 내렸어.
"너희들은 지체 말고 이 백성과 함께 저자에 가서 닭을 봉이라 속여 판 장사치를 잡아
오너라."
사령들이 김 선달을 앞세우고 닭전으로 가서 닭장수를 잡아 왔지.
"네가 이 백성에게 봉을 팔았느냐?"
닭장수는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금세 알아차렸는지라 넙죽 엎드려 손이 발이 되도록 빌
수밖에.
"예, 그저 죽을 죄를 졌습니다. 저 사람이 닭을 보고 봉이 아니냐 하기에 농으로 봉이라
하였더니, 저 사람이 사겠다 하기에 스무 냥에 팔았습니다. 돈을 도로 돌려줄 테니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듣고 있던 김 선달이 펄쩍 뛰며 나서는구나.
"거짓말이올시다. 소인은 이백 냥을 주고 샀습니다."
닭장수는 스무 냥에 팔았다 하고 김 선달은 이백 냥을 주고 샀다하고 둘이서 옥신각신하니
임금이 누구 말을 믿겠자.
닭장수는 처음부터 닭을 봉이라 속여 팔았고, 김 선달은 그 말에 소아 샀으니 누군들
닭장수 말을 믿으려 할까.
"저놈이 예까지 와서도 거짓말을 하는구나. 어서 이백 냥을 이 선량한 백성에게 돌려주고,
다시는 속임수를 쓰지 말라."
임금의 명령이 추상같으니 어쩔 수 있나. 닭장수는 시골뜨기를 속여 횡재하려다가 도리어
망하게 됐다는 이야기지.
이 때부터 '봉이 김선달'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거야.
2001/02/06(0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