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한국의 야담 66
장인 뿐인 줄 아나?
한 농사꾼이 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중 한 사람을 만났다네.
중이 큼지막한 보퉁이를 들고 신바람을 씽씽 내며 걸어가기에,
"스님께서는 무엇을 사 가지고 가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중이 하는 말.
"오늘 장에 좋은 양고기가 나왔더군. 갖은 양념 쳐서 구워 먹으려고 사
간다네."
"아니, 스님께서도 고기를 드십니까?"
농사꾼이 깜짝 놀라 이렇게 물으니, 중이 몹시 당황했던지 얼버무린다는 것이,
"아니 뭐 누가 고기를 먹고 싶어서 먹나? 절에 좋은 술이 있지 뭔가.
술안주로야 양고기가 제일이지. 그래서 조금 샀다네."
이러는구나.
"그럼 스님께서는 술도 드시나요?"
농사꾼이 더 놀라서 이렇게 물었겠다. 중은 또 실수했구나 싶었던지 얼른
둘러대는데.
"그게 아니라 절에 손님이 와 계시지 않겠나. 중이야 술을 안 먹지만 손님
대접까지 안 할 수야 없지 않은가."
"그렇군요. 어떤 손님이신지 귀한 분인가 보군요."
농사꾼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 고비 넘긴 중은 입에서 신바람이 나는구나.
"귀하다마다. 오랜만에 장인이 오지 않았겠나."
듣고 보니 점입가경이라 농사꾼이 되물을 수밖에.
"아니, 방금 장인이라고 하셨습니까?"
"장인뿐인 줄 아나? 장모도 와 있는걸."
"예? 그게 정말입니까?"
중이 그제야 아차 했는지 말꼬리를 슬쩍 돌리는데.
"이 사람아, 중이라고 농담도 못 하나? 나와는 인연이 있는 사람들인데, 절에
좀 시끄러운 일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네."
"그랬군요. 산중의 절에도 시끄러운 일이 있다니 믿기지 않는데요."
또 한 고비 넘긴 중이 가만히 있으면 좋을 것을, 어디 입이라는 게 가만히
있을라고 붙어 있나.
"골치 아픈 일이라네. 글쎄 마누라하고 첩하고 대판 싸움이 붙었지 뭔가?
오죽했으면 장인 장모가 담판을 내겠다고 그 멀리서 찾아 왔겠나?"
"예? 첩이라고요?"
"이 사람아, 누가 첫째 첩 가지고 그러는 줄 아나? 얼마 전에 얻은 둘째 첩이
말썽이라네. 지금도 대판 싸우고 있을지 모르니 난 어서 가 봐야겠네."
중이 이러고 성큼성큼 앞서 가더라나.
-출처미상
2001/03/06(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