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한국의 야담 82
[잔칫집의 낯선 손님]
임제(林悌)는 호협한 선비였다.
소시적에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가 어떤 한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그 마을에는 어느 재상의 집이 있었는데 이때 크게 잔치를 베풀어서 막
손님들을 향응하고 있었다.
그 주인은 전연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임제는 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이 집 주인과 옛 교분이 있으니 자네도 나를 따라 이 잔치에
참석하겠나?"
"그러지."
"자네는 우선 문 밖에서 기다리게. 내가 먼저 들어가서 자네를 맞이함세."
그 친구는 그의 말대로 문 밖에 서 있었다.
임제는 들어가서 주인과 손님들에게 인사하고 말석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있었다.
술이 세 순배 돌더니 어떤 손님이 주인의 귀에 대고 물었다.
"저 사람을 주인은 아시나요?"
"모르는 사람이오."
주인이 또 손님들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저 사람은 손님들의 친구이신지요?"
"아니오."
손님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말이 끝나자 주인과 손님들은 서로 돌아보며 냉소하였다.
임제가 비로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여러분은 나를 보고 웃으십니까? 나는 별 웃음거리가 못 되오.
나보다 더 우스운 사람이 있소이다.
오랫동안 문 밖에 서서 내 입을 바라보며 주식(酒食)을 기다린다오."
주인과 손님들은 크게 웃었다.
임제와 말을 주고 받더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호걸스런 선비임을 알고
곧 문 밖의 손님을 불러서 종일 즐겁게 마시고 파하였다.
문 밖의 손님은 임제가 주인과 진짜 교분이 있는 줄만 생각하고 자기를 병신
취급한 줄은 끝내 깨닫지 못하였다.
《어우야담》
2001/05/15(0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