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카투사 40話 자대배치...조회수 : 599    
    작성자 : joker작성일 : 2004-10-05    

1999/04/13 조회: 338, 줄수: 186, 분류: Etc. 매탤 02-15 19:39 | HIT : 59 | VOTE : 0 
카투사 40話 자대배치... 


★까투리 시리즈...제 40 話...★ 

자대배치 받기까지의 여정(?)입니다... 
생각보다 자대로 가는게 쉽지 않네요...^^; 

그럼 40번째...드디어 자대배치 받는 이야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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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기상!'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눈은 정해진 시간에 떠졌었다.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곳에서의 첫 아침. 
무의식적으로 아침 6시에 눈을 떳는데, 아무도 통제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젠 훈련병이 아닌 것이었다.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이젠 훈련소를 마쳤다는 뿌듯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특이하게도 우리들의 신분(?)이 이등병이자 아직 
부대배치를 받지 않은 대기병(?)이었기 때문에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 

군대라는 조직사회에서 외부의 간섭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유로움일까? 
그 덕분에 그곳에서의 생활은 한.마.디.로 굳~ 이었다. 

아침을 먹고 어제 모였던 곳에 모여서 멀뚱멀뚱 앉아 있으니 일병 한명이 
들어왔다. 물론 일병이 우리들 있는 곳에 들어왔지만 별로 할 말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냥 '앞으로 군생활 동안 하고싶은 일에 대해서 한명씩 이야기 
해 보세요'라고 존대말까지 써서 우리들은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 온 듯한 
착각에 잠시 빠지기도 하였었다. 

대부분의 훈련병들은 군생활의 각오를 '고참말 잘 듣고', '영어공부 열심히 
하고', '군생활도 열심히 하고', '체력단련도 열심히 하고', 등등의 입에 
발린 거짓말(?)만 늘어놓았다. 물론 그것이 일정부분은 사실일 수도 있고, 
나도 그때는 군생활 열심히 해보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던 때이기도 하였었다. 

그 곳에서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식당에서였다. 
드디어 점심 때 어느 기간병들이나 그러하듯이 여유롭게 식당에 가서, 
훈련병 때 그렇게 애타게 먹고 싶었던 햄버거를 시켜 먹었다. 

식당에서 햄버거를 더불 버거로 2개를 주었는데, 1개를 다 먹지 못했는데도 
배가 불렀다. 훈련소에서는 10개도 먹을 자신이 있었는데, 이게 무슨 조화일까? 

아무리 춥고 배고픈 것이 훈련병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훈련병을 끝내자 
마자 배가 불러(?)진 것은 인간의 간사한 심리 때문이었을까? 
신기한 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동기들이 다 그러했다는 것인데, 
정신적 긴장감이 공복감으로 연결된 것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저녁에 일과를 마치고 방안에 있으니 우리를 인솔했던 병장 - 이병장은 말년 
병장이었다. 클리어(전역을 직전에 둔 상태)를 앞두고 심심해서 우리들을 
인솔했었던 모양이었다 -이 말했다. 

" 막사에만 머물지 말고 이제 헤어지면 동기들도 보지 못할텐데 
부대 구경이나 하고 영화나 보도록 해라." 

사실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듯했다. 
그래서 동기들이 모두 CP Humphreys의 밤거리를 나와서 활보했다. 
평택의 밤은 논산의 낮보다는 아름다웠지만, 그것은 평택이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논산에서 만약 저녁에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했다면 분명히 논산의 
밤이 평택의 낮보다는 훨씬 아름다웠을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객관적인 
측면보다는 마음에서 느끼는 주관적인 측면이 더 강하지 않을까. 

훈련받을 때 시내를 달리던 기억을 더듬어 찾아 낸 영화관에 들어갔다. 
만약 영화가 인기있는 영화였으면 미군들이 들어가기 전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카투사들은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인기있는 영화는 돈을 내고 
들어가는 미군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난 미군부대에서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는데, 이번의 영화는 그렇게 
인기가 좋은 영화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 
우리들은 거의 텅텅 비어있는 영화관 중앙에 앉아서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ABYSS'였다. 물속 깊이 들어가서 사람이 어떤 조화(?)를 통해서 
다시 밖으로 나온다는 줄거리 외에는 기억에 나지 않느다. 그것 말고 기억나는 
것은 사람의 얼굴모양으로 자유자재로 변하는 물기둥모양인데, 그것이 
터미네에터 2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는 것 정도라고 할까? 

미국이라는 나라는 '풍요의 나라'라는 명칭이 느껴진 것은 바로 영화관에서 
파는 팝콘이었다. 어른 머리통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큰 종이컵 - 사실 종이컵 
이라기보다는 종이 바구니가 적당하겠다 -에 팝콘을 가득 담아서 양동이만한 
콜라컵에 콜라를 가득 체워 주는데, 그것만 먹어도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될 것처럼 푸짐하게 보였다. 팝콘 가격도 1달러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를 보는데도 미국인과 한국인의 태도는 많이 달랐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웃기는 대목이 나오면 웃기는 하지만 그렇게 떠들지는 않은데, 
미국인들은 재미 있는 장면이 나오면 크게 소리지르고 웃고 환호하고 떠들고 한다. 
양놈들은 영화관을 야구장이나 농구장으로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_-; 

영화를 보고 부대로 돌아오다가 스넥바에서 소주를 한잔했다. 
동기들이 모여 앉아서 소주와 김치찌게를 시켜놓고 소주를 주고받고 있는데, 
바로 옆에 낯익은 얼굴이 뻗뻗하게 앉아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다른 부대로 배치받은 동기들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부를려고 하는데 바로 옆에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뻗뻗한 자세로 눈알만 굴리고 있는 동기의 모습을 보니 상황이 바로 
판단되었다. '후후...고참하고 같이 왔구나.' 

물론 그 모습은 그 병사의 모습 뿐만이 아니라 당장 며칠 후에 뻔히 보이는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며 우리들은 술잔을 기울였다. 
쓰디쓴 소주잔을. 

다음날 오전에 MOS(군사주특기)를 받았다. 
공병대이니만큼 장비를 다루는 보직과 운전을 하는 보직, 그리고 삽질(?)을 
하는 보직으로 구분되는데, 난 운전을 하는 보직을 받았고, 다른 동기들도 
운전을 하는 보직과 몇몇은 삽질(?)을 하는 보직을 받았다. 

그리고 곧 각자가 군생활을 몸담을 부대 발표를 하였다. 
용산에 1명이 가고 부천에 10명, 평택에 10명씩 사이좋게 갈라먹기를 하였다. 
용산에 간놈은 신났고, 평택에 남는 병사들도 나름대로 신났었다. 
그러나 부천으로 가는 병사 중에서 부천에 남는 병사들을 제외하고 
의정부와 동두천으로 파견되어 가는 병사들은 얼굴색이 똥색이 되었다. 

내가 훈련소에서 2사단으로 가는 동기들에게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거야!' 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씨가된 것일까? 

평택에 남는자는 남고 부천으로 가는 병사들은 다시 조그만 트럭을 타고 
부천의 대대로 갔다. 부천에는 CAMP MERCER라는 부대가 있었다. 
4* 대대의 본부중대와 A,C중대가 위치하고 있는 곳이었다. 

부대에 들어가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파란잔디였다. 
아마도 부대 전체가 파랗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곳도 역시 내가 몸담을(?) 곳은 아니었었다. 
이제 여기서 또다시 북쪽으로 올라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져만 갔다. 

대대 인사과로 들어가니 한 일병이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었다. 
모두 목청을 높여서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했다. 

그러나 그 일병은 우리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계속 나를 
응시하는 것이 아닌가! 난 훈련소에서 갈고닦은 본능으로 '내가 또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에 조마조마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일병이 
내 이름을 불렀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지?'하고 혼자 생각한 것도 잠시, 나와 그 일병의 
눈이 마주쳤을때 내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바로 내 고등학교 친구가 
아닌가? 참으로 좁은 세상이었다. 난 그 친구가 카투사 간다는 소식만 먼 
발치로 들었는데, 여기서 만나다니 정말 반가왔었다. 
생각지도 못한 친구를 낯선 곳에서 만날 때의 기분은 어느 정도일까? 

친구를 따라 대대의 스넥바에 가서 육게장을 얻어 먹고, 방으로 들어가서 
막사 구경을 하였다. 방에 들어가니 그 친구의 방졸(보통 3명이 방을 
쓰는데, 방에서 제일 졸병)이 일어나서 친구를 반겼다. 

친구는 평택에서 갈고닦은(앞글 군화편 참조) 내 군화를 보더니, 
" 너 이 따위로 군화닦고 자대 가려고 했냐? " 
라고 말했다. 이건 교관들이 말하던 것 그대로였다. 

그러더니 방졸에게 이렇게 말했다. 
" 야! 얘 군화닦는 방법좀 가르쳐 줘라!" 

그리고 부대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4*대대에는 중대가 5개가 있는데, 내가 가게되는 Bravo 중대가 가장 
힘들고 작전도 많고 군기도 세니까 각오하고 가라는 요지의 이야기였었다. 

사실 그때는 그 친구의 이야기가 낯선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기쁨에 
거의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것은 마치 인적이 없는 산길에서 길을 
잃었다가 멀리서 아스라히 보이는 인가를 찾았을 때의 안도감이라고 할까? 

아쉬운 친구와의 이야기도 잠시, 다시 대대의 인사과로 가서 그 곳에서도 
역시 처음 부대를 옮기는 통과의례인 자기 신고서를 썼다. 
신고서를 쓰고 나니 웬 대위가 들어왔다. 바로 대대 파견대장이다. 

파견대장과 면담을 가지고. 이런저런 상투적인 이야기를 하였다. 
마지막에 자기의 전화번호를 적어 주면서 필요하거나 애로사항이 있으면 
연락을 하라고 했지만, 과연 연락을 한다고 애로사항을 들어주었을까? 
'군대는 한편의 연극'이라는 논산의 어느 조교의 말이 머리속에서 맴돌며 
떠나지 않았다. 

이제 앞으로 언제 볼지 모르는 파견대장(보통 파견대장을 보는 경우는 
신병으로서 한번, 그리고 전역할 때 한번이라고 한다.)과의 면담을 마치고 
문을 나서니 중대에서 5/4 TON짚차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Bravo중대에 배속된 신병 4명이 드디어 자대로 가게 되는 것이다. 
부천에서 나와 김포공항을 지나 행주대교를 건너는데 눈과 비가 섞여서 
하늘에서 강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창가를 스쳐 지나가는 얼굴들...기억들... 
차라리 그렇게 계속 달려서 북으로 넘어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 차는 마침내 동두천 시내의 어느 조그만 부대에 멈춰섰다. 

논산에서부터 대기병, 훈련병, 이등병, 훈련병(유격), 이등병, 교육병, 
이등병을 거쳐서 드디어 신병으로서 새로운 군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어떤 생활이 펼쳐질까? 


---------- Written by ELO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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