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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4.24 16:48:28
백수의 사랑이야기 3부 (36) "알았어요. 내가 어제 오지 않은 것은 따지지 않을테니까 일어나 봐요." 내가 잘못 한 일이 뭐가 있냐. "무슨 기분 나쁜 일 있어요? 아니면 내가 동엽씨한테 잘못한 거 있어요?" 대답하기 싫다. 기분 나쁜 일이 뭐 있겠냐. 사람 사는 일에 기분 나빠하면 자기만 손해지. 자네가 잘못한 거? 잘못한 것은 있지. 내맘 뺏어 가고 딴 남자 만나는 것. 확 일어나서 어제 그 놈이 누군지 물어 볼까? 내가 그런 걸 왜 물어보냐. 내가 벤댕이 속알 머리도 아니고 우리가 연인 사이도 아닌데. 그리고 말할 기운도 없다. 몸이 추워서 떨리고, 마음이 떨려서 머리가 아프다. 내가 물어도 반응이 없자 그녀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잘 가라, 그래도 먹을 것은 놔두고 가면 좋겠는데. 에구, 그녀가 찾아 오면 반갑기는 하겠지만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제 본 그 사람도 남잔데, 이런 모습 보게 되면 오해하기 쉬울 것이고, 나또한 나중에 비참해 질 것 같다. 에구, 힘 없다. 그래도 맘 단단히 먹고 일어나면 이 정도 아픈 것 쯤이야 털어 버릴 수 있으련만, 마음은 더 아파서 일어 날 수 없다. 그녀가 왔다가 가 버렸다. 그녀가 말을 건넬 때 대답 해 줄 것을... 몸이 아프니까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 말고 아무나 그녀 생각 안나게 해 줄 만한 사람 말이다. 집에 몇 일 동안 내려가 있을까? "동엽씨, 쌀이 없네요." 어랏, 안갔었네. 내 맘을 잘 모르겠다. 그녀가 아직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반갑다. 바로 내 곁에 지금 그녀가 있는데 왜 자꾸 멀리 그리움 되어 떨어 진 느낌이 드냐. 아까 먹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내가 쌀이랑 라면을 숨겨 놓았던 장소가 말이다. "옥상 마당에 있는 폐가구 밑에 보세요." 내 마음은 그녀가 밥을 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나 보다. 그녀가 있어 주기를 바라는 것인가? 솔직히 배가 너무 고프다. 한참만에 그녀가 방문을 열고 얼굴을 내 비추었다. 그녀는 아직 사랑스런 모습으로 들어 온다. "아니 이걸 왜 거기다 숨겨놓은 거에요?" "비상 식량." 그녀가 들어와 전기 밭솥에 쌀을 앉히고, 밥상을 들고 나갔다. 꼭 자기 방인양 지맘데로다. 아직도 하숙집 주인딸로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도 고맙다. 저런 여자를 어떻게 떠나 보낸다냐. 어제 그 놈이 밉다. 다시 한참만에 그녀가 들고 들어온 밥상에는 반찬이 푸짐했다. 고기 부침개도 있고, 생선도 있다. 제삿집에 갔다 왔나? 밥을 퍼고는 나보고 일어 나라고 명령했다. 맘데로 몸이 일으켜 세워지지 않았다. 몸 상태가 안좋긴 안좋나 보다. 그래도 힘을 내어 앉았다. 이불을 한 쪽으로 치우고 밥상 앞으로 기어 갔다. "다 죽어 가는 사람처럼 왜 그래요?" "몸이 안 좋아서요." "왜 안좋은데?" "몸이 안좋은데 이유가 있어야 되나요?" "에구, 백수가 몸까지 약하면 큰일인데." 그 말이 오늘은 듣기 매우 거북하다. 하지만 따질 힘이 없다. 말 없이 그녀가 퍼준 밥을 한 숟갈 입에 넣었다. 그리고 고기도 함께 넣었다. 맨 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밥을 넘기자 마자 바로 속에서 거부 반응이 올라왔다. "맛 없어요?" "아니, 맛있어요." 앉아 있기가 힘들다. 두 숟갈 밥을 넘겼으나 더 이상은 무리다. 배는 고프지만 질긴 고기나 마른 밥을 속에서 완강히 거부했다. "왜 그래요? 밥에 이상한 것 들었어요?" "아니에요. 미안하지만 밥은 그만 먹을래요." "먹기 싫다면 뭐. 냉장고에 반찬 될 만한 거 넣어 두었으니까 나중에 밥이랑 드세요 그럼." 좀 삐친 모습이다. 밥상을 치우지도 않았지만 힘이 없어 구석으로 가 누웠다. 그래도 별말 없이 밥상을 치우는 그녀의 모습이 꼭 조강지처 같다. 그녀가 부엌으로 가 있는 동안 치워 놓은 이불을 감싸안고 잠이 드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잃어 갔다. 그녀가 웃으며 방으로 들어 와 내 모습을 보더니 물었다. "진짜 어디 아픈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프면 말해요. 나한테 기분 나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죠?" 왜 자꾸 자기한테 기분 나쁜 일이 있지 않을까 의식하냐. 혹시 내가 어제 자네가 같이 있던 사내를 보지나 않았을까 걱정되어서 그러냐? 내가 그 사내를 봤던 말던 별 상관 없잖아. "아니에요. 집에 안 갈거에요?" "오늘은 날 대하는 태도가 영 시원찮네요." "그게 아니라 좀 눕고 싶은데 나영씨가 있으니까 그러지 못해서 하는 소리에요." "손 좀 씻고 갈게요 그럼." "그러세요." 그녀가 다소 언짢은 모습으로 욕실로 들어 갔다. 몸이 이제는 저려 온다. 머리도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동엽씨." 욕실 안에서 그녀가 날 불렀다. "왜요?" "어제 비 맞았어요?" "네." "그래서 못 왔던 거에요?"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난 또. 젖은 옷은 바로 빨아서 말려야 되거든요. 조금만 더 있다 갈게요." 그러던지, 안고 있던 이불을 폈다. 그리고 돌돌말아 누웠다. 앉아 있기가 더 이상은 불가능했다. 그녀가 욕실에서 빨래를 하고 있지만 내 눈은 스르르 감겼다. "동엽씨." 잠시 잠이 들었었는데 그녀가 깨우는 바람에 일어 났다. "왜요." "빨래는 옥상 마당에 널어 놓았구요. 그냥 가려다가 신음 소리가 심상찮아서 깨웠어요." 내가 신음 소리까지 냈단 말인가. 에구, 그녀의 손 느낌은 참 시원했다. 그녀가 내 머리에 손을 갖다 대었다.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보니까 낯선 여자의 모습과 사랑이란 단어가 겹쳐져 있었다. "하아." "열이 대단하네요. 진짜 아프구나. 진작 말하지 그랬어요." 대충 내 모습 보면 모르겠냐?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 지겠지요." "약 지어 올게요. 그래도 안되면 병원 갑시다. 지금 어떻게 아파요?" "자고 일어 나면 괜찮아 질 거라니까." "어떻게 아프냐니까요?" "그냥 온 몸이 떨리고 머리가 아프고 속이 쓰리다 그래 주세요. 참 그리고 맘도 아프다고." 아직 말장난 할 정도의 기력이 남아 있는 걸로 봐서 오늘 지나면 낫을 것 같다. "그럼 잠시만 누워 있어요. 내가 바로 약 지어 올테니까." 야이, 너무 친절하잖아. 그녀는 약 사러 나가기 전에 수건에 물을 적셔 이마에 올려 주고 가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어제 그 놈한테도 이렇게 친절할까? 다시 멍한 상태로 여러 가지 꿈을 꾸며 누워 있었다. "똑, 똑." "에?" 선 잠을 깨고 무심결에 대답을 했다. "나야 아랫집 아저씨." 대답하기도 힘든데 주인 아저씨가 왜 찾아 왔을까. "무슨 일인데요." 거의 기다시피 움직여 방문을 열어 주었다. "수도세 나왔어." "내일이나 모레 다시 오시면 안되겠어요?" "왜?" "제가 지금 몸이 많이 아파서요." "그래. 그럼 내일 다시 오지. 참 아까 왠 아가씨 내려가던데 동생인가?" "아니에요." "그럼 애인인가?" "아니에요. 그냥 아는 사람이에요." "결혼은 한 처잔가?" 내가 지금 아프다고 말했을텐데 왜 자꾸 묻는겨. "아까 아저씨가 아가씨라고 했잖아요. 아가씨에요." "그려? 결혼도 안한 처자가 그냥 아는 사이라고 혼자 사는 사내 방에 와서 빨래도 해주고 그러남? 세상 참 많이 변했네." 빨래 느는 것도 봤나 보네. 저 아저씨가 소문 내면 그녀가 시집가는데 곤란을 겪을 수도 있는데... "그냥 학교 다닐때 친구에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내 친구 중에는 아무도 내 빨래를 해 준 사람이 없는데. 하기야 내 세대는 여자가 친구면 그냥 결혼 했지. 남 녀 사이에 친구가 어딨나." "친구 맞다니까요." 살 열받아서 언성을 좀 높였다. "아프다더니 거짓말이었구만. 수도세 4000원 내 빨리." 삭막한 아저씨다 진짜. 결국은 돈을 받아 가는 구나. 머리가 더 아픈 것 같다. 37회에서 계속... -------------------------- 원작자: 이현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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