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사랑이야기 3부 (25)

술 기운으로 깜박 졸았으나 옅은 잠이었다. 잠에서 깨고 나니 속이 쓰렸다. 깜깜한 내 방의 모습이 그 동안 이 공간에서의 거억들을 아련하게 떠 오르게 한다. 내일은 나도 다른 하숙집을 구해야 하는구나. 아직 그 일로 그녀와 많은 말 오고 가지는 않았지만 이 하숙집을 떠나야 된다는 것은 정해 진 것 같다.속이 쓰린 관계로 화장실 좀 갔다 와야 겠다. 시간은 새벽 두시를 넘어 섰다. 오늘은 글이나 써 볼까? 일단 화장실 갔다 와서 생각하자.

마루로 나왔다. 불이 꺼진 마루위로 뚜렷하게 그어진 불 빛. 주인 아줌마의 조금 열린 방문 틈 사이로 나오는 불 빛이다. 그녀가 불을 꺼지 않고 나갔나 보다. 불 꺼줄까? 그러지 뭐.

아낙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방 문을 살며시 열어 보았다. 그녀가 자기 방으로 돌아 가지 않고 아직 주인 아줌마의 방에 있었다. 어머님이 쓰시던 물건들을 정리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그리고 한쪽에 앉아서 그녀가 조용히 울고 있었다. 모른 척 조금 지켜 보았다. 아직 잊기가 힘들겠지. 참 가여워 보인다. 아직 출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따져 보면 지금 고아다. 저런 그녀를 두고 하숙집을 옮겨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하지만 내가 떠나고 싶어서 떠나나?

그녀가 나가라고 하니까 떠나는 것이지.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게 내 방으로 돌아 왔다. 뭔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 방에 들어와 누웠다. 한참 생각을 해 보니까 화장실 가려고 나갔다가 화장실을 안가고 들어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럼 다시 나가야지.

"동엽씨 아직 안 잤어요?"
그녀가 주인 아줌마의 방을 나오다가 나를 봤다. 주방의 불이 켜졌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을 흘린 모습은 아니다. 아까 흐느끼던 모습은 감추어져 있었다.
"자다가 일어 났어요."
"왜요?"
"속이 쓰려서요. 배도 좀 고프고. 나영씨는 왜 안 잤어요?"
"그냥."

아까 우는 모습 봤는데 말 하지 말아야 겠다. 그녀가 주방 식탁에 앉았다.
"안 잘거에요?"
"잠이 안 오네요."
"잠 안 와요? 나도 안 오는데."
"그럼 여기 앉으세요. 배 고프면 라면 하나 끓여 드릴까요?"
"새벽에 라면 먹으면 얼굴 부어요. 그리고 쫓아 낸다고 친절해 할 필요 없어요."
"기분 나쁜 듯이 얘기 하네. 그럼 커피나 한 잔 할래요?"
그럼 기분 좋겠냐. 쫓겨 나는 기분인데.
"에이. 그럼 한 잔 주세요."

내가 식탁에 앉자 마자 그녀는 일어 서 버렸다. 새벽에 그녀와 커피 타임도 가져 본다. 헤, 아쉬운 로멘틱이다.
그녀가 커피를 끓여 내 옆에 앉았다. 하숙집 실내는 조용했다. 바깥이 조용한 만큼 실내에서 들리는 그녀의 말소리는 뚜렷하게 감정까지 들린다.
"동엽씨."
나긋하게 부르는 음성이다.
"왜요?"
별 시원찮게 대답하는 음성이다.
"하숙집 옮기게 된 것 미안해요."
"그것보다 딴 놈들은 다 알고 있었는데 나만 몰랐던 것이 좀 화가 났어요."
"애들 한테도 그제 말했어요. 동엽씨에게도 어제 말하려고 했었는데 미안하고 또 그런 말 할 용기가 잘 서지 않았어요."
"언제까지 방 구해서 나가면 되나요?"
"너무 그렇게 따지 듯 묻지 마세요. 그러면 내가 슬퍼져요."

이런 씨, 니가 슬픈 것만 따지냐. 나도 나가는 것이 슬퍼.
"이번 달 말까지는 나가야 되겠죠?"
"네. 언니가 칠월 초순 경에 형부랑 한국에 오는데 그때까지 하숙생들 비우려구요."
"집 팔거에요?"
"네. 집 팔면 반은 언니 몫이고 반은 내 몫이겠죠."
"아, 그렇게 되는구나. 그럼 나영씨는 어디서 살 건데요?"
"뭐 오피스텔이나 작은 전셋집 하나 구해야 되겠네요."
"계속 하숙 칠 생각은 없어요?"
"제가 그걸 계속 할 수 있을까요?"
"힘들겠구나. 참, 발령은 났어요?"
"아직이요. 그래도 내년엔 자리가 날 것으로 믿어요."
"나영씨?"
"왜요."
"나 이 하숙집 나가게 되면 아무래도 잊혀 지겠죠?"
"그 대답하기 전에 나는 잊혀 질까요?"
그녀가 커피잔을 세운 채 날 빤히 쳐다 본다. 씨, 내가 먼저 물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시간이 흘러 봐야 알지."
"그럼 저도 시간이 흘러 봐야 알겠지요. 그 대답 밖에는 못하나? 동엽씬 아무래도 중매로 결혼하는 수 밖에 없겠다."

요즘 한 동안 안 놀린다 했더니 기어이 또 놀리는 구나. 너도 뭐 내 맘 아프게 하는 걸로 봐서 빨리 가긴 힘들 것 같다.
"나도 맘만 먹으면 연애 할 수 있어요. 결혼 누가 빨리 하나 두고 봅시다."
"좋을데로 하세요."
내 표정이 우스운가? 아주 비장스럽게 말했는데 그녀는 피식 웃는 모습을 보였다. 좀 못마땅했지만 아까 흐느끼던 표정 보다는 보기 좋다.
"내 지금 처지 때문에 여자들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분명 나 좋아하는 사람 어디 있을거에요."
"훗훗.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래요 분명 있을 거에요."
어랏? 따져야 되는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니까 할 말이 없어진다. 미소 짓는 저 표정을 잊을 수가 있을까? 오 개월 동안 정이 많이 들었는데 헤어질 것이라 생각하니 많이 아쉽다.

"나중에 집을 대충 어디 쯤 구할 거에요?"
"왜요, 놀러 오게요?"
"그것보다 궁금하잖아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멀리 안 갈거에요. 나중에 학교 발령이 나면 그 근처로 다시 이사할까도 생각 중이에요. 기회되면 가르쳐 드릴게요. 동엽씨는 어디 하숙집을 구할 건데요?"
"오늘 구해 봐야지요. 이번에는 되도록 학원 근처에서 구할까 싶네요."
"좋은 하숙집 구하세요. 참, 잠깐만요."

그녀가 자기 방으로 급히 들어 갔다가 하얀 봉투를 하나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내게 주었다.
"이게 뭐에요?"
"이번 달 하숙비에요."
"이걸 왜? 나는 월초에 들어 와서 이번 한 달 다 살고 나가는 것인데."
"그래도 자의로 나가는 것은 아니잖아요. 받으세요."
이러면 미안한데. 그리고 이 돈이 꼭 그녀와 내 관계가 하숙집 주인과 하숙생이라는 아주 계산적이고 단순한 관계일 뿐이라고 판을 박는 느낌이다.

"이 돈 받기 싫은데요."
"왜요. 하숙 그만 두면서 제일 미안했던 사람이 동엽씨에요. 받으세요."
"싫어요. 돈이라는게 좀 삭막해 보이지 않아요?"
"뭐가요? 받으세요."
"다 살고 나가는데 왜 내가 이 돈을 받아요?"
돈을 받기 싫었다. 받으면 안된다는 필이 팍 왔다.
"내 성의라니까요. 돈이라고 생각지 말고 받으면 되잖아요."
"싫어요. 동정심인가요?"
"뭐에요? 싫으면 관둬요. 동엽씬 그러니까 여자 친구가 없는거에요."
씨, 또 놀렸다. 그리고 조금 화가 난 어투다.
"무슨! 거기서 그 말이 왜 나와요?"

나도 되받아쳤다.
"내가 이 돈 드리는 것이 동정심으로 보였나요? 제 처지가 지금 누구 동정할 처지로 보여요?"
어쭈. 조금 더 화난 목소리다. 무섭다. 내가 뭘 잘 못한 것이여? 내 맘을 조금만 알아 봐라. 그런 말 못할 거다.
"그럼 그 말은 안 들은 것으로 하세요. 내가 그 돈을 받으면 말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 중에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뭔데요?"
"하여튼 내 마음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내가 초라한 존재 밖에는 안 될 것 같아서 받기 싫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영씨하고 고작 하숙비로 연관되어진 존재만은 아니고 싶다 뭐 이런 뜻이라는 겁니다."

그녀가 내 모습을 찬찬히 바라 본다.
"훗. 그래요?"
그녀가 한번 피식 웃고는 돈 봉투를 들고 일어 선다. 폼새가 방에 들어 갈 모양이다.
"자게요?"
"네. 동엽씨 좋은 꿈 꾸세요."

그녀가 그냥 방에 들어가 버렸다. 많이 삐쳤나? 받을 걸 그랬나? 내가 아무리 지금 백수지만 그 정도의 돈 때문에 내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다 이거야. 저 돈을 받았으면 서글펐을 것이다. 야, 이 나영. 솔직히 너 보면서 이 하숙집에 계속 있고 싶은데, 그래서 꼭 쫓겨 나가는 기분인데, 돈까지 받았다면 진짜 쫓겨 난 것 아니냐. 그녀가 날 한 번 더 섭하게 했다. 삐쳤으면 안되는데. 좋은 기분으로 헤어져야 하는데... 컵은 씻어 놓고 가야 할 것 아냐. 컵을 씻어 놓고 방으로 들어 왔다. 뭔가 꺼림찍 하다.
우쒸, 또 화장실 못 갔다. 갔다 올까? 이제 배도 쓰리지 않다. 그냥 자자.

26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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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이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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