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사랑이야기 3부 (23)

종석이 형이 오랜만에 보았다고 술 한잔 하자고 했지만 뿌리쳤다.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새끼. 비록 가족은 아니나 하숙집 주인 아줌마가 돌아 가셔서 지금 난 슬프다. 그리고 또 알수 없는 무언가 때문에 나는 지금 술 마실 기분이 아니었다. 내 얼굴을 보면 슬픔이 느껴 질 텐데 웃으며 술 먹자는 소리가 나오냐? 내가 언제 여자 사귀는 거 봤냐? 여자 한테 차였으면 카운셀러 해 줄테니까 술값은 니가 내라?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노. 훌쩍 날라서 이단 옆차기를 해줄까 했는데 그걸 배운 적이 없었기에 그냥 무시하는 표정만 지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숙집은 더 소란스러운 분위기다. 나는 어제도, 그제도 그리고 열흘 전에도 저 현관문으로 들락 거린 사람입니다. 그렇게 이상한 눈빛으로 절 쳐다 보지 마세요. 부끄러버요. 모르는 사람들이 더 늘었다. 그녀의 언니가 보인다. 하숙생들이 밥상으로 이용하는 식탁을 모르는 사람들이 점령한 채 그 앞에 앉아 있는 그녀의 언니와 말씀을 나누다 내가 들어 서자 나에게 어색한 눈길을 주었다. 그냥 꾸벅 인사를 하고 지나쳐 내 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녀의 언니가 그래도 날 봤다고 소란스러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 주었다.
"괜찮습니다."
현철이란 녀석이 조심스럽게 자기 방을 나와 아주 어색한 발걸음을 옮기며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을 떠 가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다시 나와 물 떠가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컵에 물을 부으면서 주위를 살펴 보았으나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내 방문을 열었다.

불을 켜고 나서 잘못하면 들고 있던 물컵을 떨어 뜨릴 뻔 했다. 그녀가 펴지 않은 이불위에 등이 굽은 새우 모양으로 잠이 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왜 여기 와서 자는겨? 깨워야 되나?
깨우지 않았다. 여자가 있는 방에서 옷 갈아 입기 참 힘들다. 하기야 그녀는 내 빤스 입은 모양 몇 번 봤다. 그녀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옷을 갈아 입고는 그녀가 누워 있는 바로 옆에 앉아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아직 눈물이 고여 있다.

밖은 소란 스럽다. 한시간 가까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그녀 옆에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부담스럽고 그녀가 빨리 일어나 나만의 공간을 찾고 싶은 생각이 많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상황이 길어 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녀의 귀를 덮고 있는 머리칼을 용기를 내어 만져 보았다. 귀밑 머리가 참 보기 좋다. 하얀 볼 또한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녀는 삼일 동안 잠을 자지 않았다. 깊이 잠든 것이 틀림 없다. 내가 볼에 뽀뽀를 해도 모를 것이야. 헤헤, 함 해 버릴까? 근데 지금 상황에 내가 이런 생각을 해도 되나? 나 나쁜 놈인가?

"따르릉!"
어랏! 상당히 놀랬다. 쉽게 말해 졸라 놀랬다. 이 시간에 왜 알람이 우는겨? 그리고 어디서 우는겨? 내 방에서 낯선 시계가 알람을 울었다. 그녀의 머리 맡에 소리는 졸라 크지만 작은 알람 시계가 있었다. 지금 시각 열시다. 급히 껐으나 그녀가 눈을 떴다.

"동엽씨 들어 와 있었네요?"
"나 가만히 있었어요."
"네? 언제 왔어요?"
"얼마 안되었어요."
"깨우지 그랬어요."
"알람이 울리네요."
"제가 갖다 놓은 거에요."
"네에. 조금 괜찮아요?"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빨리 잊기로 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아주 차분하다. 약간 쉰 목소리지만 주인 아줌마 돌아 가시고 난 뒤로 처음 들어 보는 예전의 그녀 목소리다.

"그래요. 산 사람은 살아야죠. 참 어머님 어디다 모셨어요?"
"네? 몰랐어요? 울 엄마 화장했어요."
뭐라고 답해야 되나? 또 그녀가 울려고 했다. 이럴 때 웃기는 말 하면 욕들어 먹겠지? 아줌마는 그럼 지금은 재가 되어 어딘가에 떠 다니고 있겠구나. 무상하다. 그녀가 굳은 내 표정을 보더니 살포시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냥 흙속에 혼자 묻히시는 것 보다 아빠 찾아 다니며 강을 떠다니는게 오히려 낫겠다 싶네요. 오늘 아침에 언니에게 대들었던게 후회도 되요."
"네. 아침에 언니하고 싸웠던 게 그것 때문이었어요?"
"아침에 동엽씨 오는 거 봤었어요. 보여 주기 싫은 모습 많이 보인 것 같아서 고마웠는데 말도 못 걸고."
"괜찮아요."
"미안해요. 동엽씨도 피곤할텐데 나 때문에. 친지들 때문에 잘 만한 곳이 없어서 동엽씨 방에 와서 눈을 좀 붙였어요."
"허허."

그녀는 슬프지만 내색하며 짧게 밝게 웃어 주고 내 방을 나갔다. 개어 놓은 이불위에 그녀의 누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흔적에 머리를 놓고 천정을 보며 어수선한 밖의 상황을 무시한 채 잠을 청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녀에게 내가 곁에 있는게 좋은지 물어 보고 좋다면 계속 있어 줄 수 있는데 그래 봐야 겠다. 잠든 그녀 옆에 앉아 있던 시간이 오늘 하루의 가장 좋은 추억이 되어 떠 오르고 있다. 주인 아줌마가 재로 변하여 영원히 이 하숙집을 떠난 슬픈 하루였지만 내 잠이 드는 얼굴에는 미소가 스미고 있다. 나 진짜 나쁜 놈인가?

하숙집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아줌마가 재로 뿌려진 날 다음날도 계속 되었다. 음식들이 많아서 먹기는 잘 먹었지만 많이 시끄러웠던 관계로 불편했다. 특히나 나는 토요일이었던 관계로 학원도 가지 않았었기에 할 일 없이 공원을 산책하고 뻔히 담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담배 사러 나가야 했다.

저녁 무렵이 되니까 하숙집이 예전 모습을 찾아 가고 있었다. 언니만 빼고는 다른 사람들은 다들 돌아 갔다.
저녁을 먹고 나서 방에 있었는데 그녀와 언니가 또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당장 그렇게 할 필요가 있냐, 나는 그럴 자신 없으니까 언니가 해라, 내가 당분간 알아서 할테니 신경쓰지 말아라. 무엇 때문에 싸우는 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뭔가 안타까운 일이 벌어 질 것 같다. 이 집이 언니 집이야?

그녀의 언니는 일요일날 자기 사는 곳으로 떠났다. 그렇지만 한 달뒤에 다시 온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
그때는 좀 더 오래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언니를 문 앞까지만 배웅했다. 어디 이웃에라도 사는 사람인 양. 뱅기 타고 열두시간은 날아가야 되는 곳에 산다고 알고 있는데. 헷갈린다 말이야. 어떤 때는 참 정이 많은 여자로 보이다가 또 어떨 때는 참 매정한 여자로도 보인다. 언니를 배웅하는 모습은 참 매정해 보였다.

어머님이 돌아 가셔서 당분간은 하숙집 밥을 못 먹어 보나 했었는데 일요일 저녁부터 그녀가 하숙생들 식사를 차려 주었다. 그녀의 표정이 아직 다소 어둡지만 저녁 식탁의 분위기가 예전 그것과 많이 다르지 않다. 이 새끼는 오늘따라 왜 내 옆에 앉는겨? 그녀는 식탁 건너 편 멀리 떨어져 앉아 있다. 하여튼 우리 하숙집에서 제일 나쁜 놈은 이 새끼여. 현철이라는 새끼. 친한 척 웃지마 새꺄.

월요일은 일찍 일어나 하숙생들과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아줌마가 없어서 허전했지만 그녀가 예전 모습을 찾아 가는게 보기 좋았다. 하숙생들도 애써 아줌마 얘기를 꺼내지 않고 그녀가 슬퍼할 만한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해 주었다.

그녀가 예전 모습을 많이 찾아 가고는 있지만 왠일인지 나를 피하는 느낌이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 보인 것 같다,라는 그녀의 말이 상기되어 진다. 내가 그 모습 지워지게 해 주고 싶은 지는 모르나? 다소 어색한 모습으로 나를 본다.

수요일 오후였다. 아줌마가 돌아 가신지 딱 일주일 째 되는 날이었다. 유월달이 열흘도 남지 않았다.
학원을 가려는데 그녀가 아주 어렵게 무슨 말을 꺼내려다가 얼버무려 버렸었다. 혹시 날 사랑한다고 말하려 하지 않았을까? 다음에 할게요.라며 돌아 서는 그녀의 모습이 기대되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 하다. 외롭겠지. 혼자가 되었으니까. 내가 심심하지 않게 해 주께요. 내 잘나게 되어도 그대 모른 채 하지 않겠오. 허허.

하숙집을 나왔다. 하숙집에서 큰 길 쪽으로 제법 걸었을 때 현철이란 녀석이 땀을 흘리며 걸어 오는 모습을 보았다. 학교하고 집 아니면 갈 데가 없는 불쌍한 놈.
"벌써 집에 오냐?"
"네."
"운동했냐? 땀이 많이 났네?"
"에구. 학기중에 하숙집 구하기가 힘드네요. 좀 돌아 다녔어요."
"하숙집을 구해? 너 하숙집 바꿀려고?"
이 새끼 나쁜 놈이네. 아줌마 때문에 좀 불편했던 적이 많았다고 바로 하숙집을 바꿔? 잘 됐네. 보기 싫은 놈 나가니까.
"형은 구했어요?"
"내가 왜 하숙집을 구해? 나는 하숙집 안 옮길거야."
"누나가 형에게는 말 안했어요?"
"뭘?"
"하숙 이번 달 까지만 하고 안 할거라고 그러던데요. 하숙방 구하라고 말 안했어요? 나한테는 미안하다면서 이달 하숙비를 돌려 주던데요."
"뭐야? 나한테는 아무말 없었는데..."
"곧 형한테도 말 할거에요. 내 대충 보니까 집을 아예 팔아 버릴려나 봐요."
"그래?"
"학원 가시나 보네요?"
"그래."
내 시야가 흐려지고 있다. 내 가슴이 답답해지고 있다. 주인 아줌마가 돌아 가셨을 때도 이 만큼 답답하지는 않았다.

24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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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이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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