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사랑이야기 3부 (28)

결번이라는 말을 듣고 문득 느낀 그녀를 잃어 버렸다는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하숙집을 떠나와 지금까지 그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무엇 때문에 연락을 미루었을까.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이렇게 급하게 집이 비워 질 줄은 몰랐다고 자책해 보지만 많은 아쉬움이 밀려 온다. 불과 보름이 지났다. 그런데 그녀가 알 수 없는 곳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그녀의 얼굴이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왜 이리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일까. 내 자취방에 들어 와서도 계속 그녀 생각 뿐이다. 가슴 한 구석이 뻥 뚤려 어디론가 달아난 느낌이다. 십자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따라 담배가 녹고 있다. 많은 것들이 희미해져 가고 있다. 연기처럼 말이다. 쉽게 떠올려 지던 그녀의 얼굴마저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내가 묵었던 하숙방, 주인 아줌마, 하숙집 학생들, 존재했다는 것은 뚜렷이 기억되나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다. 으앙, 진짜 잃어 버려 잊혀지는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다음날 학원을 가기 전에 하숙집을 찾아가 보았다. 빈 집이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 마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전화국에 전화 번호 추적을 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어디로 간 걸까? 분명 서울 어딘가일텐데... 서울이 우리 고향 크기만 되어도 내 도시 전체를 그녀 찾아 돌아 다녀 볼 수 있을텐데, 서울은 그러기에는 너무 크다. 신문에다 광고를 내어 볼까? 별 생각을 다해 보지만 잃어 버린 느낌이다.

내가, 아니 그녀가 조금만 젊었어도 잃어 버렸다는 느낌이 이처럼 많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혼자로 지내기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없이 잊혀지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경험했었는가. 생각없는 시간따라 사춘기적 첫사랑 소녀의 얼굴은 온데 간데 없고, 대학 들어 가 설레였던 어떤 아가씨의 모습도 그려지지 않는다. 그녀도 그렇게 잊혀 질 것만 같다.

학원을 파하고 종석이 형을 만났었다. 뭐 그리움이니 어쩌고 하더니 요즘 주영씨랑 잘 만나나 보다. 내 얼굴 표정보다는 확연히 밝다.
"오늘은 한 잔 하러 안가냐?"
"그럴 기분 아니에요."
"그녀가 시집을 안 가려나 봐."
"누구요?"
"주영이지 누구긴."
"요즘 만나요?"
"아니."
"그때 집들이 했을 때, 약속이 있다면서 나갔잖아요."
"아, 그때는 멀리서 보고 왔지. 다행히 맘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더라."
"네?"

"내가 어찌해서 주영이가 선보는 시간하고 약속 장소를 알아 냈었잖아."
"그럼 선보는 것 미행하러 갔던 거에요?"
"응."
이건 완전 또라이 아닌가? 하지만 마음 한 편으로 측은한 미소와 함께 이 녀석 생각보다 순정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 그랬어요?"
"보고는 싶는데, 내 처지가 그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걸 알거든. 멀리서 보고 왔지."

불쌍한 놈.
"형이 근처에 있던 것을 눈치 채지 못하던가요?"
"나가면서 나에게 인사하고 갔어."
하기야 그때 자네 머리 모양은 사람들 시선을 끌고도 남았겠지.
"형도 선이나 보지 그랬어요?"
"지금 내 처지가 선 볼 처지냐. 그리고 난 연애해서 사랑하는 사람한테 장가 갈거다."
"그러면 주영씨에게 좀 적극적으로 나서 보세요."
"내가 말했잖아. 주영이가 나와 같은 처지가 힘들어서 자기 꿈을 접었는데 내가 접근해서 부담스럽게 하기가 싫어."

좀 바보군. 아니 많이 바보군. 저런 놈이 아직 있었군.
"표정이 그런데로 밝네요?"
"요즘 그녀에게서 간혹 전화가 와. 날 잊지 않고 있다는 증거지. 잊지 않고 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만나겠지. 하하."
"그러다 진짜 시집 가버리면요?"
"그러면, 음... 모르겠다. 그녀가 행복해 하면 되지 뭐. 근데 요즘 말하는 걸로 봐서 다시 학원을 다닐 것도 같아. 꿈이라는 것이 어렵다고 쉽게 포기되어 지는 것이 아니거든."

"종석씨."
"왜."
"나중에 주영씨 시집가면 내 술한잔 살게요."
"그게 무슨 말이냐."
"바보군요."
지금 내가 자네 걱정 할 때가 아니지만 하는 것 보니까 많이 걱정 된다.
"사랑은 바보처럼 하는 거야. 기교 부리면 안되지. 묵묵히 마음만 주면 되지
암."
자네는 차라리 철학관 운영하는 것이 출세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21세기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 저런 우던한 놈이 있을 줄이야. 나중에 주영씨 딴 남자한테 시집가면 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술 한잔 사리다.

삼 일동안 밤마다 그녀 얼굴 그려내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졸업하고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학교 동기들의 얼굴들도 잘 그려지는데 그녀의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았다. 잘 그려지지 않는다면 생각도 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내 마음 떠오르는 생각들로 사람을 만든다면 나영이를 열도 더 만들 수 있겠지만 그녀의 기억만 생생하게 떠 오를 뿐 모습은 그려지지 않았다.

오늘 창문을 들어오는 희미한 밤바람 따라 내 마음을 정리 했다. 곁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잃어 버렸다고 생각하니까 그녀가 너무나 보고 싶다. 아무래도 나는 오래전부터 그녀에게 사랑이라는 맘을 품고 있었나 보다. 그랬다면 좀 더 잘해 주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도 그녀를 잃어 버린 느낌 만큼 아쉽다. 그녀는 나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는데 내가 왜 감정이 생겨야 하나? 그녀와 같이 살면서 이런 쪼잔한 생각을 했었나 보다. 이 쪼잔한 생각으로 내 마음을 알리지도 못한 채 사랑한 사람을 잃어 버린 나는 바보다. 잠이 안온다.

참으로 오랜만에 시한편을 적었다. 나도 따지고 보면 글 쓰는 사람이니까 시 쓴것이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참으로 유치한 시다. 종석이 형 닮아 가나 보다. 그렇지만 지금 심정으론 이 시 느낌이 좋다. 어짜피 나만 볼 신데 유치하면 어떠냐. 제목만 적어 보자.
나이 서른 쯤에는 단 하나의 이유로 많은 것들을 잊어 갈 것이다.

오늘 밤은 그리움이 주책없이 밀려 와 잠이 쉽게 들지 않을 것 같다. 방 안이 덥다. 낮동안 바로 햇빛을 받은 천정이 아직 식지 않았다. 옥상 바닥이 따뜻했다. 내가 앉은 소파보다 더 낡은 소파를 마주하고 앉았다. 좁다고 생각했던 이 옥상위의 서울 하늘이 오늘은 너무나 넓어 보인다.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달빛이 웃고 있다. 거기에 그녀가 걸려 있다.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지만 느낌이 거기에 있었다.

금요일 저녁이다. 학원을 파하고 종석이 형의 개떡 사랑 철학을 잠시 듣고 거리로 나섰다가 참으로 크게 웃었다. 그 웃는 내 얼굴 표정이 너무나 아름다웠을 것이다. 내 못 봤지만 그랬을 것이다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해가 다 기울어 어두운 저녁인데 선글라스는 왜 끼고 있냐? 내 어제 그렇게 자네 생각을 했었는데 모자쓰고 선글라스 꼈다고 못 알아 볼 것 같냐. 여긴 왜 왔을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날 분명히 본 것 같은데 왜 돌아서서 가냐. 졸라 뛰어 쫓아갔다. 그리고 반갑게 등을 쳤다.

"나영씨!"
"저, 알아 봤어요?"
잃어 버렸던 것을 찾았다.

29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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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이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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