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사랑이야기 3부 (2)

내 방에는 가구가 없다. 그래도 비싼게 많이 있다. 25인치 티비, VTR, 그리고 컴퓨터, 음악을 듣기 위한 미니 콤포넌트. 티비와 비디오는 극본 구성을 위해 자료를 시청하기 위해 필요하였고, 컴퓨터는 글을 쓰기 위해 필요했다. 가구가 없는 이유는 옷도 별로 없고 이불은 그냥 펴놓으면 된다. 옷은 컴퓨터 위에도 놓을 수 있고 티비 위에도 놓을 수 있다.
빨리 내 방 문의 잠금 장치를 고쳐야 겠다. 내가 방으로 들어 왔을 때 벗어 놓은 옷은 헹거에 걸려 있었고 이불도 개어져 한쪽으로 치워져 있었다. 하숙집 아줌마 아니면 그녀의 소행인데 그녀가 그랬다면 쪽팔리기 때문이다. 명색이 그래도 여자인데 나만의 공간을 보여주기가 부끄럽다.

밤이 깊어 나는 머리를 쥐어 박으며 졸음을 쫓고 글을 쓴다. 오늘 강사가 씹은 부분을 곰곰히 들여다 보았다. 씨, 나는 괜찮은 거 같은데. 이러다가 각본은 언제 써 보나, 앞날이 걱정 된다. 느는게 담배요. 커피다. 담배 한 갑으로 하루를 버티는 게 힘이 든다. 커피 믹스 한 박스는 일주일을 못 버틴다. 괜히 작가 한다고 집 나와 가지고 일찍 죽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심히 걱정이 된다.
대충 글을 마무리 지었다. 아무래도 또 엄청 깨질 것 같다. 모르겠다. 배째라 그래.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가 넘었다. 자야겠다. 내일도 그녀가 방문을 홱 열어 버리면 내 대 들것이다. 쫓겨나는 한이 있어도 말이다.

눈을 떴다. 그녀가 내 방문을 두들기기 전에 일어 났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하다. 그녀가 내 꿈속에 나타났었다. 묘한 기분이다. 솔직히 기분이 야릇한게 좋다.
"쾅! 쾅! 백수씨 밥 먹어요."
에이. 꿈에서 봤던 그녀의 좋던 기분 다 깨졌다. 빨리 추리닝이라도 하나 걸쳐야지. 추리닝은 어디 간겨.
"잠깐만요."
"왜 안나오는 거에요? 어머나!"
그녀가 문을 또 홱 열었다. '너 솔직히 아침마다 내 이런 꼴 보고 싶은거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추리닝을 찾다가 오늘처럼 이렇게 처참하게 내 빤스만 입은 꼴을 들킨 것은 첨이다. 다른 날은 그래도 이불 속에 있었거나 이불을 보듬고 앉아 있었는데, 오늘은 완전히 쇼윈도의 마네킨처럼 뻔히 서서 보여 줬다.
"그 문 좀 홱 열지 말라니까요."
"노크 했잖아요."
내 나중에 복수 할 겁니다. 두고 보자. 내 벗은 모습이 보고 싶은지 계속 문 앞에 서 있는 그녀를 쫓아 내고는 추리닝 대신으로 바지하나 걸치고 나왔다.

오늘도 식탁 옆에 작은 밥상을 놓고는 그녀는 공주처럼 앉아 있었다. 내 밥그릇이 놓여져 있는 걸로 봐서 굶기지는 않을 모양이다. 왠일로 내 밥을 퍼 놓았을까. 식탁 위도 치워져 있었다.
"어머님은 오늘도 병원 가셨어요?"
밥상 앞에 앉아서 아까 팬티차림 들킨게 어색해서 물었다.
"네."
그녀는 나를 보지 않고 파릇한 냉이 무침에 젓가락을 갖다 대며 답한다. 북어국이다. 내 밥그릇 옆에 북어국이 있다. 내가 어제 술 마신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 같이 좀 다니고 그래요."
"백수씨 때문에 못 따라 갔잖아요."
"그럼 아침에 좀 깨워요."
"일어날 자신 있어요?"
"없어요. 그건 그렇다치고 잠금장치 좀 고쳐줘요."
"잠옷 없어요?"
말을 말자. 내가 고치던지 해야지. 북어국이 시원하다. 그녀는 또 고고한 척 먹은 밥을 손으로 가린 입을 야물거린다. 그녀가 국을 한 술 떠 먹고는 묻는다.
"북어국 괜찮아요? 내가 끓였거든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고개를 한 쪽으로 약간 젖힌 채 날 보고 있다. 밥이 아직 남았으나 국그릇을 들고 남아 있던 국을 벌컥 다 마셔버렸다.
"내가 이만기하고 씨름하면서 끓여도 이것보다는 잘 끓이겠다."
그렇게 말하고 상을 잡았다. 상 엎어 버릴까봐서. 그녀가 국을 한 숟갈 떠서 먹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아무말 없이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녀가 먹던 달래랑 냉이를 같이 먹으며 남아 있던 밥을 비웠다.
"설거지 할 거죠?"
"늦게 일어 났으니까 해야 겠죠 뭐."
"잘 아시네요."
놔 두세요 오늘은 제가 할게요, 이 말을 언제쯤 그녀가 할까? 그 말 하면 내 진짜 감격한다.
"설거지 다하고 빨래도 좀 걷어 오세요."
돌아가시겠다 진짜. 내가 하숙을 하는 건지, 그녀 집에서 밥 얻어 먹는 대가로 식모살이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집 말고는 밤에 밥 얻어 먹을 만한 하숙집이 없을 것 같다. 자취를 하면 굶어 죽을 것 같고.
설거지를 다하고 옥상으로 갔다. 학생들 빨래는 셀프다. 우리 하숙집 욕실에는 커다란 세탁기가 있다. 학생들 옷은 각자 빨아서 자기 방 앞에 있는 테라스에서 말린다. 옥상에는 그녀와 아줌마의 빨래들만 있다. 몇 번 내가 빨래를 걷어 다 준적이 있다. 그녀의 속 옷이 걸릴 만도 했지만 아직 그런 기회를 접해 본 적은 없다. 하기야 공주가 아무곳에나 그런 걸 내 걸리 없다. 앗! 오늘은 속 옷이 있다. 참으로 낯익은 추리닝 옆에 걸린 또한 참 낯익은 칼라 사각팬티와 허연 난닝구. 혈압이 땡긴다.

"이봐요. 나영씨."
"왜요?"
급하게 돌아 와 붉은 얼굴로 그녀에게 소리쳤지만 그녀는 참 담담한 표정이다. 언제 커피를 끓였는지 찻잔을 식탁에 놓고는 가계부를 펼치려다 나에게 아주 뻔뻔한 얼굴을 돌렸다. 빤스를 손에 쥐고는 보여 주었다.
"이거 나영씨가 빨은 거에요?"
"지금 성희롱 하는 거에요?"
"네?"
"세탁기가 빨았어요. 내가 미쳤다고 그걸 빨아요."
"그럼 빤스가 날개가 있어서 빨래 줄에 가 걸렸어요?"
"내가 가져다가 세탁기에 넣었어요. 어떻게 속 옷을 돌돌 말아 비디오 장식장에다 넣어 놓을 수 있어요? "
저렇게 대담하게 나오니 할 말이 없네요. 왜 내 옷을 빨았대요.
"제 방에 왜 들어 온 거에요?"
"비디오 보러요. 그 재밌는 비디오 있으면 혼자 보지 말고 같이 좀 봐요."
"비디오 봤어요? 제 방에 함부로 들어와도 되는 거에요?"
"이 하숙집의 주인 딸로서 전 모든 방에 들어 갈 수 있는 특권이 있어요. 모르셨나요?"
"잠금 장치 고쳐줘요. 빨리."
"직접 고쳐요. 동엽씨가 고장 낸 거잖아요."
"앞으로 제 방에 있는 물건 손대지 마세요."
"치. 기껏 빨아 줬더니... 나도 이제 아니꼬와서 그 방 안들어간다."
왜 불쌍한 표정 지으면서 날 보는데요. 그녀가 아주 귀여운 눈망울을 슬프게 위장하고 날 쳐다 보고 있다. 그 모습을 외면한 채 빨래를 들고 아무말 없이 내 방으로 들어 왔다.
내 이불은 또 언제 개어 논겨. 밖의 그녀가 괜히 떠 올랐다. 꿈 속의 그녀의 느낌은 좋았던 기억도 생각이 났다. 그녀가 내가 없을 때 내 방에 들어 와 비디오를 보곤 한다. 혼자 있는 하숙집이 심심하기도 하겠다. 그녀가 안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뭐.
"밖에 나영씨 있어요?"
개어 놓은 이불위에 앉아서 밖의 그녀를 불렀다.
"왜 부르는데요."
"딴 거 손대지 말고 그럼 비디오만 봐요. 알았어요?"
"알았어요."
괜히 말했다. 고맙다는 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에그 학원 갈 시간까지 이렇게 이불에 기대어 잠이나 자자.

잠이 들었다고 생각 될 무렵 노크 소리가 들렸다.
"쾅! 쾅! 나 지금 나갈거든요. 혹시 엄마 오면 내가 장 봐가지고 온다고 전해 주세요."
안에서 내가 뭘 하는지 전혀 생각 안하고 단지 저렇게 쾅쾅,대고는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는 그녀가 참 대견스럽다. 나는 저렇게 뻔뻔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잠 다 깨 버렸다. 씨.

그래도 그녀는 착한 여잡니다. 어머님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지요. 그녀는 어머님 걱정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공주고 나를 아주 하찮게 대하지만 착한 여자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녀는 살림도 잘 할 거 같아요. 우리 하숙집에 그녀 좋아하는 놈 들 많지요. 애인 없는 놈들은 다 그녀를 좋아 하고 있지요. 단지 연상이라는 게 흠이지만. 그녀가 밥은 참 잘하는데 요리 실력이 없어요. 요즘 아줌마가 몸이 안 좋은 관계로 그녀가 밥을 차리는 경우가 많아요. 하숙생들이 반찬을 외면하긴 하지만 불평은 안 하더라구요. 모두 그녀를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솔직히 나도 그녀를 좋아 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이상형을 들어 보면 나하고는 전혀 맞지를 않더군요. 포기를 했지요. 그리고 아웅다웅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머님 오셨어요."
"응. 총각 혼자 집에 있었어?"
"네."
학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하숙집 아줌마가 돌아 오셨다. 안색이 별로 안 좋으시다. 아줌마는 고혈압 때문에 심장 질환이 많으시다. 요즘은 나다니시는 것도 힘이 드시는지 얼굴에 땀이 고이셨다. 그녀가 발령이 나면 하숙치기가 힘들 것 같다. 내년에도 그녀가 발령이 안 났으면 좋겠다.
"나영씨가 시장 봐 온다고 하던데요."
"그래. 총각 일 봐."
아줌마는 힘없는 모습으로 방으로 들어 가셨다. 내가 괜히 걱정이 된다.

오늘도 깨졌다. 강사새끼가 씹는게 취미인가 보다. 드라마 보면서 좀 배우랜다. 요즘 드라마 어떤게 인기인지 보면서 경향을 파악하라며 날 졸라 씹었다. '씨바. 이 학원 아니면 갈 데 없는 줄 알어?' 생각해 보니 갈데가 없다. 등록금 낸 것도 아까웠다. 아직 구성작가인데 드라마 봐서 뭐하나...
드라마 작가되기 힘들다. 작가로 등록된 사람은 700여명인데 제대로 활동하는 사람은 20명 안팍이라고 들었다. 지금 심정은 이년안에 700명 안이라도 들어갔으면 좋겠다싶다. 한번 씹힐 때마다 미래의 하루 하나가 걱정으로 변한다.

3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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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이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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