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대 태조대왕(太祖大王)

[참고] 신라:유리, 탈해, 파사, 지마, 일성 백제:다루왕, 기루왕, 개루왕 중국:후한(後漢)

서기 53년 태조대왕(국조왕이라고 함)이 즉위하니, 이름은 궁(宮)이라 하고, 어릴 때 이름은 어수라 하였다. 왕은 유리명제(琉璃帝)의 아들인 고추가 (古鄒加 벼슬이름) 재사(再思)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부여사람이다.

모본왕이 돌아간 후 태자가 어리고 똑똑하지 못하여 나라를 다스릴수 없겠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궁을 맞이하여 왕으로 세운 것이다. 왕은 나면서부터 눈을 뜨고 볼줄 알았고, 어려서도 나이보다 숙성하였다. 왕으로 죽위할때 나이가 7세였으므로 왕의 어머니가 대신하여 나라일을 맡아 보았다. 연호를 융무(隆武)라 하였다. 
 
3년(서기 55년) 요서(遼西)에 10성을 쌓아 한군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4년(서기 56년) 7월 동옥저(東沃沮)를 쳐서 토지와 성읍을 취하였다. 그 지경이 동으로는 창해에 이르고 남으로는 살수(薩水)에 이르렀다. 
 
16년(서기 68년) 8월 갈사왕(曷思王)의 손자 도두(都頭)가 나라를 들어 항복하자 그를 우태(于台)에 명하였다. 
 
20년(서기 72년) 2월 관나부패자(貫那部沛者) 달가(達加)를 보내어 조나(藻那) 를 쳐서 그 나라 왕을 사로잡았다. 
 
22년(서기 74년) 10월 왕은 환나부패자(桓那部沛者) 설유(薛儒)를 보내어 주나(朱那)를 쳐서 그 나라 왕자 을음(乙音)을 사로잡아 고추가(古鄒加)를 삼았다.

46년(서기 98년) 왕은 동쪽의 책성(柵城)에 행차하였다.

53년(서기 105년) 왕이 군사를 보내어 요동(遼東)에 쳐들어 가 6현을 탈취하였으나 요동태수 경기에게 결국 패하였다. 
 
66년(서기 118년) 예맥(濊貊)과 같이 한나라의 현도(玄도)를 쳐서 화려성 (華麗城)을 공취하였다.

69년(서기121년) 봄에 한나라 유주 자사 풍환, 현도 태수 요광, 요동태수 채풍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침입하여, 예맥의 장수를 죽이고 병사와 말과 재물을 모두 빼앗아 갔다.

왕은 아우 수성에게 군사 2천여명을 이끌고 풍환, 요광 등을 맞아 싸우게 하였다. 수성은 먼저 한나라 진영에 사람을 보내어 거짓으로 항복하니 그들이 믿었다. 
그러자 수성은 험한 곳에 군사를 숨기고 한나라 군사를 막으면서 몰래 군사 3천명을 보내어 현도와 요동을 공격케 하였다. 군사들은 성곽을 불지르고 2천여 명을 죽이거나 포로로 하였다. 
 
12월 마한(馬韓), 예맥(濊貊)의 1만여명의 기병을 이끌고 현도성(玄도城)을 포위하자 부여왕이 아들을 파견하여 한의 군사와 더불어 대항하니 패하였다. 
 
86년(서기 138년) 3월에 왕의 동생 수성이 질양에서 사냥을 하며 7일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 놀기만 하였다. 
 
7월에는 또 기구라는 곳에서 사냥을 하며 5일만에 돌아왔다. 그러자 동생 백고는, 
 
"화와 복은 들어오고 나가는 문이 따로 없습니다. 오직 사람이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지금 형님은 왕의 친아우로서 모든 신하의 으뜸이 되고 지위와 공이 이미 가장 높습니다. 마땅히 충성과 의리를 지켜야 하며 예의와 양보로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위로는 왕의 덕을 베풀고 아래로는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만 오래도록 부귀를 누릴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형님께서는 이런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저 놀기만 하면서 어려움을 피하려고만 하니, 형님을 위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 충고하였다. 수성이 대답하기를, 
 
"사람이라면 누군들 부귀와 즐거움을 원하지 않겠느냐? 그러나그것을 얻는 자는 만명에 하나도 없다. 지금 내가 즐기며 놀만한 자리에 있음에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면 장차 어떻게 하겠느냐?"
하고는 동생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94년(서기 146년) 7월, 왜산아래에서 사냥을 하던 수성이 부하들에게 말하기를, 
 
"대왕이 늙어도 돌아가시지 않고 나 역시 속절없이 늙어가고 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너희들은 나를 위해, 내가 왕이 되도록 힘써 주겠느냐?" 
 
하였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모든 부하들이 함께 대답했다. 그라나 오직 한 사람만이 반대하여, 
 
"좀전에 왕제께서 옳지 못한 말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부하들이 모두 바른말로 반대하지 않고 명령만 따르겠다고 하니, 이것은 간사하고 아첨하는 말입니다. 저는 바른말을 하고 싶습니다. 왕제의 뜻은 어떠합니다?" 
 
라고 하였다. 
 
"그대가 바른말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좋은 약이 되지 않겠느냐? 망설이지 말고 말하라." 
 
"지금 대왕께서는 나라를 잘 다스려 안팎으로 나쁜 마음을 품는 자가 없습니다. 왕제께서 비록 큰 공을 세우셨다 하지만 간사한 부하들을 데리고 밝은 임금을 쫓아내려 하시니, 이것은 한 가닥 실로 큰 바위를 매어 끌어 당기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그것이 불가능 하다는 걸 알 것입니다. 만일 왕제께서 나쁜 마음을 버리고 어진 마음으로 계속 대왕을 섬기신다면, 대왕께서도 왕제의 착한 마음을 아시고 왕위를 물려 주실 것입니다." 
 
이말을 들은 수성이 얼굴을 찌푸리며 싫어하는 표정을 보이자, 그의 바른말을 시기하던 부하들이 
 
"왕제께서 댕왕이 너무 연세가 많아 왕위가 흔들릴까 염려하셔서 그 뒤를 이으시려고 함입니다. 그런데 저 사람이 되지도 않은 말을 하는데, 만약 이일이 탄로난다면 큰 화가 미칠까 두렵습니다. 저 사람을 죽여서 입을 막으소서." 
 
하고 말하였다. 왕제 수성은 그들의 말을 듣고, 바른말 하던 사람을 죽였다. 
 
8월 서안평현(西安平縣)을 습격하여 대방령(帶方令)을 죽이고 낙랑태수의 처자를 사로잡아 왔다. 
 
10월에 우보 벼슬에 있던 고복장이 왕에게 말하였다. 
 
"왕제 수성이 왕위를 탐내어 반란을 꾀하고 잇습니다. 어서 그를 죽여야 합니다." 
 
그러자 왕은, 
 
"나는 이미 늙었소. 또 수성은 나라에 공을 많이 세웠으므로 그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이니, 그대는 걱정하지 마시오." 
 
하였다. 
 
"수성의 사람됨이 잔인하고 어질지 못합니다. 만일 대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면 뒷날 대왕의 자손들을 해칠 것입니다. 대왕게서는 어질지 못한 아우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만 알고, 죄 없는 자손들에게 해가 미칠것은 생각지 않으시니 한번 더 깊이 생각하소서." 
 
하고 복장이 말했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 
 
12월에 왕은 수성을 불러, 
 
"내가 이미 늙어서 나라일에 게을러졌다. 이제 하늘의 운세를 보니 너에게 운이 있구나. 너는 안으로 나라일을 보살피고 밖으로는 군대를 잘 다스리며 오랫동안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러니 신하와 백성들이 원하는 걸 채우게 할수 있으리라. 내가 물러날 테니 네가 즉위하여 길이 나라를 번성시키거라." 
 
이와 같이 말하고 왕위를 물려 주니, 후에 시호를 태조대왕이라 하였다.
[nsgoguroek]
.


한국 Korea Tour in Subkorea.com Road, Islands, Mountains, Tour Place, Beach, Festival, University, Golf Course, Stadium, History Place, Natural Monument, Paintings, Pottery, K-jokes, UNESCO Heritage, 중국 China Tour in Subkorea.com History, Idioms, UNESCO Heritage, Tour Place, Baduk, Golf Course, Stadium, University, J-Cartoons, 일본 Japan Tour in Subkorea.com Tour Place, Baduk, Golf Course, Stadium, University, History, Idioms, UNESCO Heritage, E-jokes, 인도 India Tour in Subkorea.com History, UNESCO Heritage, Tour Place, Golf Course, Stadium, University, Paint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