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대 보장왕(寶藏王)

[참고] 신라:선덕여왕, 진덕여왕, 무열왕, 문무왕 백제:의자왕 중국:당(唐)

왕의 이름은 장(臧) 혹은 보장(寶藏)이다. 후에 나라를 잃은 까닭에 시호가 없다. 그는 영류왕 아우의 아들인데, 연 개소문(淵蓋蘇文)이 영류왕을 시해한 서기 642년에 그를 추대하였다. 연호를 개화(開化)라 하였다. 이 해에 신라가 백제를 치려고 김춘추를 고구려에 보내어 원군을 청했으나 왕은 응하지 않았다.

2년(서기 643년) 3월, 연개소문이 왕에게 말하기를,

"유교와 불교와 도교는 솥의 세 발과 같아서 어느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유교와 불교는 성하나 도교는 그렇지 못합니다.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어 도교를 구해서 나라 사람들을 가르치게 하소서."

하였다. 왕이 당나라에 국서를 보내니, 당 태종은 도사 숙달 등 8명과 노자의 도덕경을 보내 주었다. 9월에 신라가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어 말하기를, 

"백제가 신라의 40여 성을 쳐서 빼았고 또 고구려와 힘을 합쳐 당나라로 가는 사신의 길을 막으려 합니다." 
하고 구원을 청하였다.

3년(서기 644년) 7월, 당(唐) 태종(太宗)은 고구려 정벌을 위해 4백여 척의 배를 만들어 군량을 수송하게 하고, 글안과 말갈, 그리고 각 주의 군사를 모아 요동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10월에 평양에 내린 눈이 붉은 색이었다. 모든 신하들이 고구려 침공을 말렸지만 당태종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었다.

"요동은 본래 중국의 땅인데, 수나라가 네 번 군사를 출동시켰으나 찾지 못했다. 내가 지금 동쪽을 정벌하려는 것은 중국을 위하여 원수를 갚고 수치스러움을 씻으려 함이다. 지금 천하가 평정되었는데. 오직 고구려만이 평정되지 않았다. 내가 늙기 전에 이 일을 이루리라."

당태종은 친히 활과 화살을 차고 비옷을 말안장 뒤에 매고 요하를 건너 현도성에 이르렀다. 고구려 백성들은 크게 놀라 성으로 들어가 굳게 지켰다. 당나라 군대는 여러 갈래로 진군하여 신성을 치고 건안성에서 고구려군을 격파하고 개모성을 함락하였다.

한편 당나라 수군은 바다를 건너 오다가 요동 반도의 끝에 있는 비사성을 함락시켰다. 당 태종과 장군 이세적은 요동성(遼東城)을 공격하기 위해 성주 위에 흙을 쌓고 12일간 밤낮으로 공격하였다. 마침내 요동성이 떨어지고 백암성도 견디지 못하여 항복했다.

당나라 군은 드디어 안시성(安市城)을 공격하게 되었다. 그러나 안시성 성주 (城主) 양만춘(楊萬春)과 사람들이 굳게 지키니, 여러 날 공격해도 성을 함락시킬 수없었다. 당군은 성 앞에 밤낮 60일간 토산을 쌓으니 연인원 50만이 동원되었다. 토성이 성벽보다 높아지자 당나라 장군 도종이 성 안을 굽어보며 지켰다.

이 때 갑자기 토성이 무너지면서 성벽 한 쪽을 덮쳐 성벽도 무너졌다. 그러자 고구려군 수백 명이 무너진 성벽을 넘어 토산을 점령하였다. 당 태종이 노하여 3일간 치열하게 공격했지만 이기지 못했다.

요동 지방은 추위가 빨라 어느 새 풀이 마르고 물이 얼어 병마가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그래서 당 태종은 한쪽 눈을 잃고 군사를 거두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 싸움에서 당과 고구려의 사상자가 많았다.

(이후 당 태종은 크고 적은 군사를 내어 수없이 고구려를 치게 하였지만, 한두 개의 성만 빼앗았다 잃었다 했을 뿐 고구려를 굴복시킬 수가 없었다.)
 
6년(서기 647년) 당의 이세적이 요하를 건너 침공하니 고구려 성들이 이에 대항하였다.

8년(서기 649년) 정월, 고구려가 백제, 말갈과 힘을 합쳐 신라를 침범하여 33개의 성을 빼앗았다. 신라 왕 김춘추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구원을 청하였다. 
2월에 당나라 고종이 장군 정명진, 소정방 등에게 명하여 고구려를 침략케 하였다. 5월이 되어 당나라 군사가 요하를 건너왔다. 고구려는 적군이 적음을 얕보고 성문을 열어 맞아 싸웠다. 그러나 크게 패해 1천여 명이 죽고, 성 외곽과 촌락이 불탔다. 
 
13년(서기 654년) 10월 장군 안고(安固)로 하여금 말갈(靺鞨)과 함께 돌궐 (突厥)을 쳤으나 신성(新城)에서 대패하였다.
 
14년(서기 655년) 정월 고구려군이 백제, 말갈과 더불어 신라 북변의 33성을 공취하니 신라왕 김춘추(金春秋)가 당에 원병을 청하였다. 2월 당 고종(高宗) 이 정명진(程名振)과 소정방(蘇定方)을 보내 공격하였다. 
 
17년(서기 658년) 6월 당나라 장군 정명진, 설인귀 등이 쳐들어왔으나 물리쳤다. 
 
19년(서기 660년) 11월 당의 설필하력(契苾何力), 소정방(蘇定方), 유백영 (劉佰英), 정명진(程名振)이 길을 나누어 쳐들어 왔다. 
 
20년(서기 661년) 정월 당이 35군대(軍隊)를 수륙으로 나누어 침공하였다. 8월 소정방이 평양성(平壤城)을 포위하였다. 9월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男生)이 정병 수만으로 압록수(鴨록水)를 지켰으나 당의 설필하력(契苾何力)이 이를 물리치고 들어오니 아군 3만의 희생을 내고 남생은 겨우 목숨을 건졌다. 
 
21년(서기 662년) 정월 당의 방효태(龐孝泰)가 연개소문과 사수(蛇水)에서 싸웠으나 전군이 몰살하였다. 소정방은 평양의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
 
25년(서기 666년) 연개소문이 죽고 맏아들 남생이 막리지가 되었다. 남생은 아우 남건(男建)과 남산(男産)에게 뒷일을 맡기고 여러 성을 순시하러 떠났다. 이 때 어떤 사람이 두 아우에게 말하기를,

"남생은 두 아우가 자기의 지위를 빼앗을까 두려워하여 제거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먼서 손을 쓰지 않으면 위태롭습니다."

하였다. 두 아우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한편 남생에게도 이런 말을 하는 자가 있었다.

"두 아우는 형이 돌아와 정권을 빼앗을까 두려워해서 성문을 닫고 들여보내지 않겠다고 합니다."

남생은 부쩍 의심이 들어 몰래 친한 자를 평양에 보내어 엿보게 하였다. 두 아우는 그를 붙잡아 두고 왕명으로 남생을 불렀다. 남생은 두려워서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자 남건은 스스로 막리지가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남생을 쳤다. 남생은 국내성(國內城)으로 달아나서, 그 아들 헌성을 당나라에 보내어 구원을 청하게 했다. 
6월이 되자 남생은 당나라로 달아났다. 
8월에 왕은 남건을 막리지로 삼고 모든 군사를 지휘하게 했다. 
 
26년(서기 667년) 9월, 당나라는 총사령관 이적과 부사령관 설인귀로 하여금 50만 대군을 이끌고 수륙 양면으로 침공케 하였다. 고구려 서쪽 변경의 요지인 신성에 이르러 공격을 하는데, 성 안의 사부구라는 자가 주동이 되어 성주를 묶어 가지고 성 밖으로 나와 항복하였다.

이적은 계속 진격하여 고구려 서쪽 변경의 16개 성을 빼앗았다. 남건이 군사를 보내어 신성을 공격하였지만, 적장 설인귀에게 패하였다. 그러나 고구려군은 금산에서 고간이 이끄는 당나라군을 물리치고,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다가 설인귀의 무리와 싸우게 되었다.

이 때 고구려군은 설인귀에게 크게 패하여 5만여 명이 죽고, 남서, 목적, 창암 등 3성을 빼앗겼다. 한편 백제에 있던 당나라 장수 유인원과 신라 김인문 등이 이끄는 27만 대군도 북진 공격하였다.

고구려는 남북으로 적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남건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잘 싸워 당군은 압록강을 넘지 못하였고, 신라군 또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27년(서기 688년) 2월에 부여성(夫餘城)이 당나라군에게 함락되었다. 남건은 5만 명을 보내어 부여성을 지원하였으나, 설하수에서 이적의 무리에게 대패하여 3만여 명이 죽었다. 무려 40여 성이 적에게 항복하였다.

이적은 압록강을 넘어 고구려군의 저항을 물리치며 평양성까지 이르렀다. 이 무렵 김유신과 김인문이 이끄는 신라군도 북진하였다. 그리하여 나당 연합군이 맹렬한 공격을 퍼 붓자, 하는 수 없이 보장왕은 9월에 이르러 남산으로 하여금 신하 98명을 데리고 나가 항복케 하였다.

그러나 남건은 성문을 굳게 닫고 저항하였다. 남건의 군사들이 자주 성 밖으로 나와 용감히 싸웠지만 번번이 크게 패하였다.

남건은 승려인 신성에게 군사지휘권을 맡겼다. 그랬더니 신성은 몰래 성 밖으로 신하를 보내어 이적의 편을 들겠다고 전하였다. 그로부터 닷새 후 성문이 열리자, 이적은 군사를 들여 보내 성안에 불을 질렀다. 남건은 자결하다가 뜻을 못 이루고 사로잡혔다. 이로써 고구려 28왕 705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nsgoguro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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