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대 진평왕(眞平王)

[참고] 백제:위덕왕, 혜왕, 법왕, 무왕 고구려:평원왕, 영양왕, 영류왕 중국:남북조(南北朝), 수(隨), 당(唐)

서기 579년, 진평왕이 즉위했다. 왕의 이름은 백정(白淨)으로 진흥왕의 태자 동륜의 아들이다. 왕은 나면서부터 용모가 특이하게 생긴데다가 몸집이 컸다. 또 의지가 굳고 아는 것이 많아 사리 판단에 밝았다.

7년(서기 585년) 3월에 가뭄이 심하여 왕은 정전을 피하여 다른 곳에 기거 하면서 음식을 줄이고 남당(정사를 보는 곳)에 나아가서 친히 죄수들을 보살폈다. 7월에는 덕망이 높은 중 지명이 진나라로 들어가서 불법을 연구하였다.

9년(서기 587년) 7월에 대세와 구칠 두 사람이 바다로 도망쳤다. 대세는 내물왕의 7대손으로 이찬 동대의 아들이다. 그는 아는 것이 많고 머리가 뛰어나 일찍부터 해외 진출에 뜻을 두고 있었다. 또한 중 담수와 함께 사귀고 놀면서 항상 말하기를,

"신라의 골짜기에서 평생을 보낸다는 것은 연못에 노는 고기나 장에 갇힌 새가 끝없이 펼쳐 있는 푸른 바다와 넓고 한가로운 산 속의 숲을 알지 못하고 지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장차 뗏목을 타고서라도 넓은 바다로 나아가서 오나라, 월나라 지방(중국 대륙에 있음)에 이르러 훌륭한 스승을 만나고, 또한 이름난 산을 찾아 도를 닦는 것이 소원이다.

이렇게 하여 만약 속세의 탈을 벗고 신선의 도를 깨우치게 된다면 훌쩍 바람을 타고 끝없는 하늘 밖으로 날아갈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기이한 유람이며 큰 일이 아니겠는가? 그대는 능히 나의 뜻을 따를 수 있겠는가?"

하였다. 그러나 담수가 그의 뜻을 따르기를 거부하므로 대세는 그를 물리치고 다른 친구를 구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만난 것이 구칠이었다. 구칠은 성품이 결백하여 지조가 있고, 굳은 절개가 있어 마침내 그와 함께 남산의 절에서 만나 점점 깊이 사귀었다.

어느 날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쳐서 나뭇잎이 떨어지고 빗물이 뜰에 가득 괴었다. 대세가 구칠에게 말하였다.

"나는 자네와 함께 멀리 서쪽으로 여행하고 싶네. 우리가 지금 각기 나뭇잎으로 배를 만들어 띄워 놓고 누가 먼저 가고 누가 뒤에 가는지 점을 쳐 보세."

두사람은 나뭇잎을 빗물에 띄웠다. 그러자 대세의 나뭇잎이 먼저 닿았다.

"내가 먼저 가게 되었구나!"

대세가 웃으면서 말하자 구칠은 발끈하여 일어나면서,

"나 역시 사나이다. 나라고 혼자서 가지 못할 줄 아느냐?"

하고 말하였다. 이것을 본 대세는 비로소 그가 자기와 뜻을 같이할 수 있음을 믿고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말하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마침내 벗이 되어 남해에서 배를 타고 떠났다. 그뒤 그들이 간 곳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1년(서기 589년) 3월에 원광 법사가 진나라에 들어가서 불법을 연구했다. 7월에는 나라의 서쪽에서 큰 홍수가 져 백성들의 집 3만 3백 60호가 물에 잠기고 2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왕은 신하들을 보내어 수재민을 구호하였다.

24년(서기 602년) 왕은 대내마 상군을 사신으로 수나라에 보내고 공물을 바치게 하였다. 8월에 백제가 군사를 일으켜 아막성(阿莫城)을 침공하였다. 왕은 군사를 파견하여 적을 크게 이겼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귀산(貴山), 추항 (추項) 등이 전사하였다.

9월에 덕망 높은 중 지명이 수나라에 갔던 사신 상군을 따라 돌아왔다. 왕은 지명의 불덕을 크게 존경하여 대덕으로 삼았다.

25년(서기 603년) 8월에 고구려가 군사를 일으켜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침범했다. 왕은 몸소 군사 1만명을 이끌고 출전하여 이를 물리쳤다.


30년(서기 608년) 왕은 고구려가 빈번히 국토를 침범하자 이를 걱정하여 수나라 군사의 도움으로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원광법사에게 걸사표(군사를 청하는 글) 을 지으라 하였다. 원광이 말하였다.

"자기가 살려고 남을 멸망시키는 것은 승려의 할 짓이 아닙니다. 그러나 소승이 대왕의 땅에 살고 대왕의 물과 곡식을 먹으면서 어찌 명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원광은 곧 글을 지어 바쳤다. 2월에 고구려가 북쪽 변두리로 쳐들어와서 백성 8천명을 사로잡아 갔다. 4월에는 고구려의 군사가 유명산성(지금의 춘천짐방)을 공격하여 차지했다.

33년(서기 611년)에 왕은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군사를 청하였다. 수나라 양제는 그 청을 허락하였다. 이 사실은 고구려의 기록에도 적해 있다. 10월에 백제가 군사를 일으켜 가잠성을 공격하여 백일 동안 포위를 풀지 않았다. 현령 찬덕(贊德)이 굳게 지켰지만, 힘이 다하여 끝내 전사하고 성은 함락되었다.

37년(서기 615년) 2월, 왕은 3일 동안 신하들에게 술과 밥을 베풀어 주었다. 10월에 지진이 있었다.

38년(서기 616년) 10월에 백제가 군사를 일으켜 모산성(충북 진천)을 공격하였다.

40년(서기 618년) 북한산주의 군주인 변품이 가잠성을 탈환하기 위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서 백제와 싸웠다. 이 싸움에 해론이 종군하여 적진으로 달려가서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해론은 찬덕의아들이었다.

43년(서기 621년) 7월에 왕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바쳤다. 당 고조는 친히 신라의 사신을 위로하고 통직물을 바쳤다. 당 고조는 친히 신라의 사신을 위로하고 통직산기상시라는 벼슬의 유문소를 사신으로 신라에 보냈는데 국서와 그림 병풍, 비단 3백필을 함께 보내 왔다.

46년(서기 624년) 정월에 시위부에 대감 6명과 상사서에 대정 1명, 대도서에 대정 1명을 두었다. 10월에는 백제가 군사를 일으켜 침공을 했는데 속함(함양)과 앵잠, 기잠, 봉잠, 기현, 혈책 등 6개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다. 이 때 봉잠(烽岑), 앵잠(櫻岑), 기현(旗懸) 세 성은 함락되거나 항복했다. 그러나 급찬 눌최는 봉잠, 애잠, 기현, 혈 책 등 6개성의 군사를 맘께 모아 굳게 지키다가 끝내 힘이 모자라 전사하고 말았다.

47년(서기 625년) 11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가 당나라로 통하는 길목을 막고 있기 때문에 왕이 친히 가지 못하고 또 자주 고구려의 침범을 당하는다고 호소하였다.

48년(서기 626년) 7월에 당나라 고조는 주자사를 보내어 고구려와 서로 화목하게 지래라고하였다.8월에 백제가 군사를 일으켜 주재성(主存城)을 침공하므로 성주 동소(東所)는 군사를 이끌고 적을 맞아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이 때 고허성을 쌓았다.

49년(서기 627년) 3월에 세찬 바람이불고 흙비가 5일간 계속 내렸다. 7월에 백제의 장군 사걸(沙乞)이 군사를 거느리고 침공해 왔는데, 서쪽 변경의 두성을 빼앗고 남녀 3백여 명을 사로잡아 갔다. 8월에 서리가 내려 농작물의 피해가 심했다.

51년(서기 629년) 8월에 왕은 대장군 용춘, 서현, 부장군 유신을 보내어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 청주)을 공격하였다. 고구려는 군사들을 성밖에 늘어세우고 진을 쳤는데, 그 군세의 위풍이 자못 당당하였다. 이때 신라군은 이것을 보고 겁에 질려 감히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것을 본 유신은,

"내가 들으니 옷깃을 떨쳐야 옷이 바르고 벼리를 들어야 그물이 펴진다고 하였다. 내가 바로 벼리와 옷깃이 되겠다."
하고는, 곧 말에 올라 칼을 빼어 휘두르면서 적진으로 뛰어들어 세번이나 싸웠다. 한번씩 뛰어들때마다 적장의 목을 베거나 적의 대장기를 빼앗아 가지고 왔다.

이것을 본 군사들은 크게 기세를 돋우어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면서 적진으로 돌진하여 1천여 명의 적을 베고 성을 함락시켰다.

53년(서기 631년) 2월에 흰 개가 궁궐의 담장 위로 올라갔다.

5월에는 이찬 칠숙, 아찬 석품이 함께 반역을 꾀하다가 음모가 탄로나서 칠숙을 잡아 베어 죽이고 일가 친척 모두를 잡아 죽였다. 아찬 석품은 몰래 도망하여 백제의 국경까지 갔다가 아내와 자식들이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낮에는 숨고 밤에는 걸어서 돌아왔다. 그는 총산에서 한 나무꾼과 의복을 바꿔입고 나무꾼으로 변장하여 나뭇짐을 지고 몰래 집으로 돌아왔다가 잡혀서 처형되었다.

54년(서기 632년) 정월에 왕이 세상을 떠났다. 시호를 진평이라 하고, 한지 (漢只)에 장사하였다.


【선도산 성모(仙桃山 聖母) 이야기】
진평왕 시절에 한 비구니가 있었는데, 그 이름을 지혜(智惠)라 하였으며 어진 행실이 많았다.

그는 자신이 거처하는 안흥사(安興寺) 불전(佛殿)을 새로 수리하려고 했으나 힘이 모자랐다. 그 때 꿈에 모양이 예쁘고 구슬로 머리를 장식한 한 선녀가 와서

"나는 선도산 성모인데, 네가 불전을 수리하려는 것을 기뻐해서 금 10근을 주어 그 일을 돕고자 한다. 내 자리 밑에서 금을 꺼내어 주불삼상(主佛三像)을 장식하고, 벽 위에는 53불(觀樂王樂上二菩薩經에 나타나는 53분의 부처)과 6류성중 (六類聖衆) 및 여러 천신(天神)과 오악(五岳)의 신군(神君)을 그리고 해마다 봄과 가을 두 계절의 10일에 남녀 신도들을 많이 모아 널리 모든 중생을 위해 점찰법회(占察法會)를 베풂으로서 일정한 규정을 삼아라."

고 말했다. 지혜는 졸라 깨어 무리들을 데리고 선사(仙祠)의 자리 밑으로 가서황금 160량을 파내어 불전 수리를 이루었는데, 모두 성모가 한 말에 따랐던 것이다.

[출전] '삼국유사' 권 5 감통(感通) 제7 선도성모수희불사(仙桃聖母隋喜佛事)

【설씨녀 가실】

경주에 사는 설씨(薛氏)는 늙은 홀아비로 오직 딸 하나만 데리고 살았다. 설씨의 딸은 재색을 겸비하였다.

그런데 진평왕 때에 이 늙은 홀아비도 병역의 의무는 치르게 되었다. 국방 경비를 위한 소집 영장이 나왔다, 늙고 병든 아비를 보내느니 차라리 자기가 나가고 싶지만 여자의 몸으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사량부(沙梁部)에 설씨의 딸을 좋아하느 가실(嘉實)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가실은 설씨의 집에 딱한 사정을 알고 뛰어 와서, 자기가 대신 군대에 나가겠다고 제의했다.

설씨 부녀는 이 기적같은 원조에 당황하기도 했으나 무척 반가웠다. 설씨는 가실에게

"나를 대신하여 군대에 나가겠다니 기쁘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네. 그대의 은혜를 갚을 생각이니 만약 그대가 내 어린 딸이 어리석다고 생각지 않으면 아내로 맞아주면 어떨지 ?"

라고 운을 떠 보았다. 이것은 가실이 원하던 바였다. 딸은 거울 하나를 꺼내어 반을 갈라 한 조각은 가실에게, 마머지 한 조각은 자기의 품에 넣고 뒷날 혼인할 때의 신표(信票)로 삼았다. 가실은 설씨녀에게 말 한 필을 주며

"이것은 천상(天上)의 좋은 말이니 내가 없는 동안 맡아서 기르시오."

하고 의젓이 전쟁터로 나갔다. 3년이면 돌아오게 되어 있는 가실은 기한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나이는 아흔에 가깝고 딸의 나이도 혼기(婚期)를 넘기게 되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다른 신랑감을 찾아서 가기를 강요한다. 그럴 때마다 딸은

"신의를 저버리고 언약(言約)을 어기면 어찌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 모르게 이웃 청년과 혼약을 맺었다. 딸은 항상 가실이 두고 간 말을 쓰다듬으며 외로움을 달랬다. 그 말과 함께 집을 떠나 버리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실이 돌아왔다. 그러나 몰골은 해골처럼 마르고 옷은 남루하여 집안 사람들은 그가 가실인 줄을 몰랐다. 배고픔과 싸움에 지친 가실은 전혀 딴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가실은 거울을 내던졌다. 딸이 그것을 주워 자기의 것과 맞추어 보니 꼭맞았다. 가실이 분명했다. 기뻐하며 그들은 정식으로 혼례를 치렀다.

[출전] '삼국사기' 열전 [nssillak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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