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대 진덕여왕(眞德女王)

[참고] 백제:의자왕 고구려:보장왕 중국:당(唐)

서기 647년 진덕왕이 즉위하였다. 왕의 이름은 승만(勝曼)으로 진평왕 어머니의 동생인 갈문왕 국반(國飯)의 딸이다. 승만은 아름다운 자질을 갖추었으며, 키가 7척이나 되었고, 손이 무릎 밑까지 닿았다.

즉위년 정월 17일에 비담을 잡아 죽이고 그 무리 30명을 죽여 반란을 평정하였다. 10월에 백제가 군사를 일으켜 침공해 와서 무산성, 감물성, 동잠성을 에워싸고 공격을 했다. 왕은 김유신에게 군사 1만 명을 주어 이를 막게 하였다.

그는 군사를 이끌고 나가서 싸웠지만, 군사가 적어 위급하게 되었다. 이 때 김유신의 부하인 비녕자와 아들인 거진이 적진으로 달려가서 용감히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를 본 모든 장병들이 용기를 얻어 적을 무찔러 3천여 명을 죽였다.

2년(서기 648년)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예물을 바쳤다. 3월에 백제의 장군 의직(義直)이 군사를 거느리고 변방을 침범하여 요거성(腰車城) 등 10여 성을 빼앗았다. 왕은 크게 놀라서 압독주(경산) 도독인 김유신으로 하여금 이를 되찾게 하였다. 그는 훈련된 군사를 이끌고 나갔다.

의직이 가로막으므로 김유신은 군사를 세 갈래로 나누어 몰아치게 하였다. 마침내 의직은 크게 패하여 도망하였다. 김유신은 맹렬히 적을 추격하여 대부분 죽였다. 그가 개선하자 왕은 크게 기뻐하여 모든 군사들에게 똑같이 상을 내렸다.

겨울에 사신 한질허를 당나라에 보내어 태종을 뵙게 하였다. 당태종이 묻기를,

"신라는 우리 조정을 섬기면서 어찌하여 따로 연호를 정하고 있는가?"

하였다. 한질허는,

"일찍부터 당나라 조정에서 정하여 주지 않은 까닭입니다. 그래서 법흥왕 때부터 스스로 연호를 써 온 것이나, 이제 대국이 명령을 내린다면 어찌 따르지 않겠나이까?"

하고 대답하였다. 당 태종은 그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신라 왕은 또 이찬 김춘추와 그의 아들 문왕을 당나라에 보냈다. 당 태종이 신하로 하여금 성 밖에 마중나가 그들의 수고를 위로하게 하였다.

김춘추가 도착하자, 당 태종은 그의 몸가짐이 뛰어난 것을 보고 후하게 대접하였다. 그 자리에서 김춘추가 국학에 가서 공자를 제사 지내는 것을 보고자 청하니, 당 태종은 허락을 하고, '진서(진나라 때의 역사책)'를 주었다.


어느 날 당 태종은 또 그를 불러 황금과 비단을 주면서,
"그대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듣고자 한다."

하였다. 김춘추는 꿇어 앉아 이렇게 아뢰었다.

"신의 나라는 한적한 바다 옆에 있으나, 당나라를 섬겨 온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 백제가 강성하고 교활하여 자주 우리 땅을 침범하므로 난리를 겪고 있습니다. 지난 해에는 백제가 대군을 일으켜 우리 땅 깊숙이 침공하여 수십 개의 성을 빼았아, 당나라에 들어오는 길까지 막히고 말았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군사를 보내어 악한 무리를 제거해 주지 않으시면 우리 백성은 모두 적의 포로가 될 것이며, 산 넘고 바다 건너 조공 바치는 일조차 못할 것입니다."

당 태종은 이 말을 듣고 깊이 생각한 끝에 군사를 보내어 돕기로 약속하였다. 김춘추는 신라의 관복을 당나라 제도를 본받아 고칠 수 있도록 청원하였다. 그러자 당 태종은 안에서 진귀한 의복을 가져다 김춘추와 그의 수행원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당나라 조정의 명령으로 김춘추에게는 특진 벼슬을 주고, 문왕에게는 좌위 장군의 벼슬을 주었다. 김춘추가 귀국할 때는 3품 이상의 관리들을 모아 송별 잔치를 베푸는 등 예의를 극진히 갖추었다.

김춘추는 감격하여,

"신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습니다. 바라건데 한 아들로 하여금 폐하의 곁을 떠나지 않고 모실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라고 청하여, 당 태종이 허락하자 아들 문왕을 머물게 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김춘추 일행은 바다에서 고구려 순찰병과 만났다. 이 때 그의 수행원 온군해가 재빨리 높은 관을 쓰고 예복을 갖추어 김춘추로 가장하였다. 김춘추는 미리 작은 배로 무사히 달아나고, 온군해가 대신하여 죽었다. 고구려 군사들은 온군해를 김춘추로 알았다.

돌아온 김춘추로부터 그 말을 들은 왕은 온군해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그에게 대아찬의 벼슬을 추증하고, 그의 자손에게도 후한 상을 내렸다.

3년(서기 649년) 정월에 처음으로 중국식 의관을 착용하도록 했다. 8월에 백제의 장군 은상이 군사를 이끌고 침범하여 석토성 등 7개 성을 함락시켰다. 왕은 대장군 김유신과 장군 진춘, 죽지, 천존 등으로 하여금 적을 물리치게 하였다.

김유신 등은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서 10여 일 동안 곳곳에서 적과 싸웠지만 적은 물러가지 않았다. 김유신은 도살성 밑에 진을 치고 군사들에게 말하기를,

"오늘 백제의 첩자가 올 것이니 너희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체하고, 누구냐고 묻지도 말라."

하였다. 그러자 과연 백제의 첩자가 왔다. 그러자 김유신은 모든 군사들에게 명령하기를,

"성벽을 굳게 지키며 조금도 움직이지 말고 내일 구원군이 오게 되면 일제히 적군을 들이치자."

라고 하였다.

백제의 첩자는 이 말을 듣고 은상에게 보고하였다. 은상은 신라군이 증가된다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고 있을 때 김유신 등은 적진으로 진격하여 적병 1백 명을 사로잡고, 8천9백80명을 베었다. 또한 적의 말 1만 필을 노획하고 병장기와 같은 것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맣이 얻었다.

4년(서기 650년) 비단에 태평송(太平頌)을 지어 김춘추의 아들 법민(法敏)을 보내어 당(唐) 고종(高宗)에게 올리고 당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5년(서기 651년) 정월 1일에 왕은 조원전에 나와서 백관들의 신년 하례를 받았다. 신년 하례 의식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8년(서기 654년) 3월에 왕이 돌아가니, 시호를 진덕이라 하고 사량부(沙梁部) 에 장사 지냈다. 신라 사람들은 시조 혁거세로 부터 진덕왕까지 28왕은 성골이라 말하고 무열왕부터 혜공왕에 이르기까지를 진골이라 했다. [nssillak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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