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대 문성왕(文聖王)

[참고] 중국:당(唐)

서기 839년, 문성왕이 즉위하니, 이름은 경응(慶膺)이며 신무왕의 태자이다.

왕은 8월에 죄수를 크게 풀어주고, 교서를 내리되,

"청해진 대사 궁복(弓福)은 일찌기 군사를 내어 적을 섬멸하였으니, 그 큰 공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하고, 그를 진해장군으로 삼고 특별히 입는 옷을 상으로 주었다.

7년(서기 845년) 3월, 왕이 청해진 대사 궁복(弓福)의 딸을 두번째 왕비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나 신하들이 모두 궁복(弓福)은 섬 사람인데 어찌 그 딸을 왕비로 삼을 수 있느냐며 반대하니, 왕도 마침내 신하들의 말을 들었다.

8년(서기 846년) 봄, 청해진 대사 궁복(弓福)은 왕이 자기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이지 않는 일을 원망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조정에서는 그를 치려고 하였으나, 이길수 없을까 두려워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때 용감한 장사로 이름난 무주(지금의 광주)사람 염장(閻長)이 와서 말하기를,

"만약 저의 말을 들어주신다면, 저는 단 한 명의 병졸도 필요 없이 맨주먹으로 궁복의 목을 베어 바치겠습니다."

하였다. 왕은 이 말을 듣고 허락하였다.

염장(閻長)은 궁복에게 가서 나라를 배반한 것처름 말하고 의지하기를 청하였다. 궁복은 본래 용감한 장사를 사랑하였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염장(閻長)을 맞이하여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즐거워하였다.

이윽고 궁복이 취하여 잠이 들자 염장(閻長)은 궁복의 칼을 빼어 목을 베었다. 그리고 궁복의 부하들을 불러 궁복이 반역자임을 이야기하니, 그들은 모두 땅에 엎드리어 감히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13년(서기 851년) 2월에 청해진을 없애고, 그곳에 살던 백성들을 벽골군(지금의 김제군)으로 옮겼다.

19년(서기 857년) 9월에 왕이 병환으로 눕더니 17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시호를 문성이라 하고, 경주 서쪽에 있는 산 남쪽(孔雀趾)에 장사 지내었다.


【장보고의 난 張保皐(?∼846) 문성왕7년(845)】

신라 시대의 장군. 일찍이 당나라에 건너가 무령군 소장이 되었으나, 당시 신라에서 당나라의 해적들에게 잡혀 간 노비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자 관직을 버리고 귀국하였다.

이 사실을 왕께 보고하고 청해진 대사가 되어 군사를 길러 해적을 소탕하였으며, 신라와 당나라, 일본 사이의 무역을 하여 큰 세력을 이루었다.

그 무렵 그는 왕위 계승 싸움에서 밀려 난 김우징(신무왕)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민애왕을 죽이고, 김우징을 왕위에 앉혔다. 그러나 그 뒤 그를 시기하는 신하에게 암살당하였다. [nssillak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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