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환인(桓因 불교와 관련된 용어. 여기서는 하느님) -제석(帝釋)을 이름-의 서자(庶子 맏아들이 아닌 둘째아들 이하를 가리키는 말) 환웅(桓雄)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몹시 바랐다.
【박솔민씨의 의견 (2000.12.14)
여기서 단군왕검의 아버지가 [환웅]이라고 나오는데 [환웅]이 아니라 [한웅]입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세종대왕 때 부터 한글이 만들어지고 사용되었습니다. 모르시는 분은 없을실거라고 생각됩니다.
단군신화는 한글이 사용되지 않을 때 쓰여진 것이라서 한자 즉 중국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웅]이란 이름을 중국말로 하니까 [환웅]이 되었던 것입니다. 중국사람들은 [한] 이란 글자를 신성시 여기고 우상하기 때문에 우리같이 조그만 나라에 그런 글자 이름을 가진 민족의 아버지의 이름을 하지 못하게 하려다 보니 [한] 과 비슷한 [환] 이 되었던 것입니다.
만드신 분은 고쳐주신다면 이 한국의 역사에 크게 기여하신 걸로 감사 드리겠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 태백(三危太白 세 개의 높은 산. 태백산은 그 증의 하나)을 내려다 보매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홍익인간 弘叢人間) , 이에 천부인(天符印 신의 위엄과 영험의 상징물. 주로 거울, 칼, 방울 등이 있다. 혹은 신계, 인간계, 자연계를 다스리기 위한 표징이 되는 물건) 세 개를 주어 내려가서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그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白山 지금의 묘향산) 꼭대기의 신단수(神檀樹 신성한 지역을 가리킴) 아래에 내려와서 이곳을 신시(神市 고대 사회에 있어서 제정(祭政)의 집회지)라 불렀다. 이 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 농경과 관계된 바람, 비, 구름을 다스리는 주술신)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壽命)· 질병(疾病)· 형벌(刑罰)· 선악(善惡) 등을 주관하고, 인간의 삼백예순 가지나 되는 일을 주관하여 인간 세계를 다스려 교화시켰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늘 신웅(神雄, 곧 환웅)에게 사람되기를 빌었다. 때마침 신(神:환웅)이 신령한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곰과 범은 이것을 받아서 먹었다. 곰은 몸을 삼간 지 21일(삼칠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능히 삼가지 못했으므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熊女)는 그와 혼인할 상대가 없었으므로 항상 단수 (壇樹) 아래에서 아이 배기를 축원했다. 환웅은 이에 임시로 변하여 그와 결혼해 주었더니, 그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단군 왕검이라 하였다.
【환웅(桓雄) : 청동기 시대의 무문토기(무늬없는토기) 문화】
【웅녀(熊女) : 신석기 시대의 즐문토기(빗살무늬토기) 문화】
【단군왕검(檀君王儉): 제정일치 시대의 군장을 의미】
단군(檀君)은 요(堯) 임금이 왕위에 오른 지 50년인 경인년(요임금의 즉위 원년은 무진이니 50년은 정사이지 경인은 아니다. 아마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 같다)에 평양성 (지금의 서경)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朝鮮)이라 불렀다.
또다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 '아침 해가 비추는 곳'이라는 뜻. 혹은 '조선'의 의미)로 옮겼다. 그곳을 궁(弓)-혹은 방자(方字)로도 되어 있다 -홀산(忽山), 또는 금미달(今미達)이라 한다.
그는 1천5백 년 동안 여기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의 무왕(武王)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매, 단군은 장당경(황해도 구월산 아래의 땅이름)으로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는데 그때 나이가 1천9백8세였다.
[출전] '삼국유사(三국유事)' 권1 기이(紀異),고조선(古朝鮮) 에서
【참고】건국신화 수록집 :
[삼국유사] [제왕운기(帝王韻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응제시주(應製詩註)]
【참고】단기(檀紀)의 근거
[삼국유사]에는 단군 개국이 중국의 요(堯)임금 즉위 50년인 경인년(庚寅年)에 이루어 졌다고 하였다. 그러나 일연 자신이 주석을 달아놓은 바와 같이, 요 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년(戊辰年)이므로 즉위 50년은 정사년(丁巳年)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반면 이승휴의 [제왕운기], 권람의 [응제시주], [동국통감(東國通鑑)] 에는 '무진년(戊辰年)' 으로 되어 있다.
모두 단군이 요 임금과 같은 해에 즉위하였으며, 그해는 '무진년'이라는 것이다. 이 요 임금 즉위 연도인 '무진년'을 연대로 환산해 보면 B.C. 2333년이 된다. 오늘날 단기(檀紀), 즉 '단군 기원(檀君紀元) 몇 년'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하 2011.10.02 첨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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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지리지 / 평안도 / 평양부 에서】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Tree=0&id=kda《단군고기(檀君古記)》에 이르기를,
“상제 환인(上帝桓因)께 서자(庶子)가 있으니, 이름이 웅(雄)인데, 세상에 내려가서 사람이 되고자 하여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 가지고 태백산(太白山)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강림하였으니, 이가 곧 단웅천왕(檀雄天王)이 되었다.
손녀(孫女)로 하여금 약(藥)을 마시고 인신(人身)이 되게 하여, 단수(檀樹)의 신(神)과 더불어 혼인해서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단군(檀君)이다.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니, 조선(朝鮮), 시라(尸羅), 고례(高禮), 남·북옥저(南北沃沮), 북부여(北扶餘), 동부여(東扶餘), 예(濊)와 맥(貊)이 모두 단군의 다스림이 되었다.
단군이 비서갑 하백(非西岬河伯)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으니, 부루(夫婁)이다. 이를 곧 동부여 왕(東扶餘王)이라고 이른다.
단군이 당요(唐堯 - 요임금)와 더불어 같은 날에 임금이 되고, 우(禹)가 도산(塗山)의 모임을 당하여, 태자(太子) 부루(夫婁)를 보내어 조회하게 하였다.
나라를 누린 지 1천 38년 만인 은(殷)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에 아사달(阿斯達)에 들어가 신(神)이 되니, 지금의 문화현(文化縣) 구월산(九月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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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檀君古記》云: 上帝桓因有庶子, 名雄, 意欲下化人間, 受天三印, 降太白山神檀樹下, 是爲檀雄天王。 令孫女飮藥成人身, 與檀樹神婚而生男, 名檀君, 立國號曰朝鮮。 朝鮮、尸羅、高禮、南北沃沮、東北扶餘、濊與貊, 皆檀君之理。 檀君聘娶非西岬河伯之女生子, 曰夫婁, 是謂東扶餘王。 檀君與唐堯同日而立, 至禹會塗山, 遣太子夫婁朝焉。 享國一千三十八年, 至殷武丁八年乙未, 入阿斯達爲神, 今文化縣九月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