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대 진성여왕(眞聖女王)

[참고] 중국:당(唐)

서기 887년, 진성왕이 즉위하였다. 헌강왕의 누이동생으로 이름은 만(曼) 이다.

2년(서기 888년) 왕이 각간 위홍(魏洪)에게 명하여 대구화상과 함께 향가를 수집하여 책으로 엮게 하니, 그 책 이름을 삼대목(三代目)이라 하였다.

임금이 평소 각간 위홍(魏洪)과 간통하였는데 그가 죽자 혜성대왕(惠成大王) 으로 봉했다. 그 후 임금이 은밀히 미소년을 궁에 끌어들이니 음탕 문란하게 되었다.

3년(서기 889년) 국내의 여러 주군이 공부를 바치지 않아 재정이 궁핍했다.

5년(서기 891년) 10월 북원(北原)의 양길(梁吉)이 궁예(弓裔)에게 1백여 명의 기병으로 북원(北原) 동부락과 명주(溟州) 관내를 습격했다.

6년(서기 892년) 완산(完山)의 견훤(甄萱)이 주를 점령하고 후백제(後百濟)라 자칭하니 무주 동남의 군현이 항복하여 그에게 소속되었다.

8년(서기 894년) 10월에 궁예가 북원에서 아슬라(지금의 강릉)로 침범해 오니, 그 무리가 6백여 명에 달하고, 궁예는 스스로 장군이라 하였다.

9년(서기 895년) 8월 궁예(弓裔)가 저족(猪足), 성천의 두군을 취하고 철원 (鐵圓)등 10여 군현을 쳐서 공취하였다. 10월 임금이 헌강왕의 서자 요(嶢)를 태자로 봉했다.

11년(서기 897년) 6월, 왕이 좌우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이 몇 해 동안 백성들이 어렵게 살고 사방에 도적이 일어나니, 이것은 내게 덕이 없는 까닭이다."

하고 왕위를 태자 요에게 물려주었다.

그 해 12월 왕이 북쪽 궁궐에서 돌아가니, 시호를 진성이라 하고 황산(黃山)에 장사 지내었다.


【거타지 설화】

진성여왕 때, 왕의 막내 아들 양패(良貝)가 당나라 사신으로 가려고 할 때, 백제의 해적들이 길을 막는다는 말을 듣고 활을 잘 쏘는 군사 50여 명을 뽑아 호위시켜 호위하도록 했다. 배가 893년 12월 22일곡도(鵠島)에 이르니 풍랑이 크게 일어 그곳에서 10여 일을 보냈다.

양패공이 점을 치게 하였더니 점장이가 말하기를 "이곳에 신지(神池)가 있어 그곳에 제사를 지내면 좋겠다."고 하였다.

이에 못위에 음식을 차려 놓으니 못물이 한 길이 넘게 치솟았다. 그 날 밤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활을 잘 쏘는 사람을 하나만 남겨 두면 바람을 자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일행들이 숙의한 결과, 나무조각 50개에 이름을 써 물 위에 띄우고 가라앉는 사람이 남기로 하여 거타지가 남게 되었다. 그러자 배는 순행을 하게 되었다. 거타지가 조심스럽게 섬 위에 서있었는데, 그 때 한 노인이 연못에서 나와 이르되

"나는 서해의 용신(龍神)이다. 날마다 하늘에서 요괴(어린 중)가 내려와 주문을 외우며 이 못을 세번 도는데, 그러면 우리 부부와 자손들은 물에 뜨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어린 중은 우리 자손들의 간과 창자를 빼 먹는다. 그리하여 이제는 우리 부부와 딸만 남았다. 활로 어린 중을 쏘아 죽여 달라."고 하였다.

거타지는 노인(龍)의 부탁대로 사미승을 쏘아 죽인다. 그러자 어린 중은 늙은 여우로 변하여 죽었다. 그리고 거타지는 그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는데 거타지는 당나라를 거쳐 귀국하여야 하므로 용은 자기의 딸을 꽃으로 변하게 하여 거타지에게 주었다.

그리하여 당나라를 갔다가 귀국하여 소매 속에 감추어 온 꽃을 도로 내놓으니 어여쁜 처녀로 변하였다. 둘은 결혼하여 함께 여생을 마치게 되었다. 더불어 당나라로 가는 길에 두 마리의 용이 거타지와 사신들의 배를 호위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출전] 삼국유사 권2 '진성여대왕 거타지'


【연권녀 혹은 효녀 지은】

'설씨녀' 바로 앞에 있는 설화. 주인공 지은이 연권(連權)의 딸리기 때문에 '연권녀' 설화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한다. '삼국유사' 권5에는 '빈녀양모 (貧女養母)'라 하여 약간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효녀 지은(知恩)은 연권의 딸로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봉양하느라고 32세가 되도록 시집을 가지 못했다.

그는 품팔이 뿐만 아니라 걸인 노릇도 하면서 정성을 다해 어머니를 섬겼다,

그러나 어는 해 큰 흉년이 들어 동냥도 할 수 없게 되자 지은이 양곡 30석에 남의 집 종이 되었다.

종일 일하고는 밥을 얻어다가 어머니를 봉양하게 된 후로 이상하게도 어머니는 밥맛을 잃었다. 어머니가 딸에게 따지자 지은은 종이 된 사실을 고백하고 모녀는 붙들고 울었다.

마침 화랑 효종랑(孝宗郞)이 집 앞을 지나다가 듣고는 들어가 사정을 묻고 조[粟] 100석과 의복을 보냈다.

후에 진성왕(眞聖王)이 알고 다시 조 500석과 집 한 채를 하사하고, 군사를 보내어 그 집을 호위하도록 했다. 그 동리를 표창하여 효양리(孝養里)라고 하게 하였다.

이 설화는 [심청전]의 근원설화가 된다.

[출전] '삼국사기' 열전 [nssillak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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