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기  전상편 (안함로 지음)
 
우리 한(桓)의 건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랜 옛날이었는데 한 신이 있어 사백력(斯白力:지금의 시베리아)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한 신이 되시니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비추고 큰 교화는 만물을 낳았다. 오래 오래  살면서 늘 쾌락을 즐겼으니 지극한 기(氣)를 타고 노닐고 그  묘함은 저절로 기꺼웠다. 모습 없이 볼 수있고 함이 없으면서 모두 이루고 말없으면서 다 행하였다.

어느 날인가 동남동녀 800이 흑수(黑水:흑룡강을 말하며 중국말로는 살합연오라 러시아말로는 아므르) 백산(白山:백두산 또는 중국의太白山)의땅에 내려왔는데 이에 한님(桓因)은 또한 감군(監郡:중생을 돌보는 직책)으로서 천계(天界)에 계시면서 돌을 쳐 불을 일으켜서 날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셨다.

이를 한국(桓國)이라 하고 그를 가리켜 천제한님(天帝桓因)이라고 불렀다. 또한 안파견(安巴堅 : 지금의 아버지로 고대에는 국왕을 아버지라 불렀다 한다.)이라고도 했다. 한님은 일곱 대를 전했는데 그 연대는 알 수가 없다.

뒤에 한웅(桓雄)씨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天神)의 뜻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에 내려왔다. 사람 모이는 곳을 천평에 마련하고 그곳을 청구(靑邱:중국 산동 반도의 동래지방, 동양의 고전에 자주 등장하는 나라 동이, 조선, 청구가 다우리 민족을 칭하는 말이다.)로 정했다.

천부의 징표를 지니시고 다섯 가지 일을 주관하시며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를 베푸시니 인간을 크게 유익하게 하였더라. 또 신시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를 배달이라 불렀다. 3.7일을 택하여 천신께 제사지내고 밖의 물건을 꺼리고 근신하며, 문을 걸어 잠그사 스스로 주문을 외우며 몸을 닦아 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더라.

약을 드시고 신선이 되시니, 팔괘를 그으시고 올 것을 알며 상을 잡으시고 신을 움직였다. 또 여러 영험 스러운 이들과 뭇 철인들이 보살피도록 하시더니 웅씨 (곰이라 하나 옛날의 곰이라 함은 신을 뜻하는 말이다. 풀어쓰면 "ㄱ.ㅁ"이라 한다, 일본에서는 신을 "가미"라 한다)  의 여인을 거두어 아내로 삼으시고 혼인의 예법을 정하매, 짐승 가죽으로써 폐물을 삼았다.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고 시장을 열어 교환하도록 하니, 온 세상이 조공을 바치며 새와 짐승도 덩달아 춤추었다. 뒷날 사람들은 그를 지상 최고의 신이라고 받들어 세세토록 제사가 끊임이 없었다.  신시의 말기에 치우천왕(14세 자오지한웅)이 있어 청구를 개척하여 넓혔으며, 18세를 전하여 1565년을 누리더라.

뒤에 신인왕검께서 불함산의 박달 나무 터에 내려오셨다. 그는 신의 덕과 성인의 어짐 을 겸하여 갗추었으니 이에 능히 조칙을 받들어 하늘의 뜻을 이었으니  나라를 세운 뜻과 법은 높고 넓고 강하고 열렬하였다. 이에 구한의 백성들이 마음 깊이 복종하여 그를 받들어 천제의 화신이라 하며 그를 제왕으로 모셨다. 그가 곧 단군왕검으로 신시로부터 전해지던 오랜 법을 되찾고 서울을 아사달(백두산 또는 완달산)에 설치하여 나라를 열었으니 조선이라고 불렀다.

단군은 하염없이 맨손으로 고요히 앉아서도 세상을 평정하고 깊고 묘한 도를 익혀 여러 생령(生靈)들을 두루 교화하였다. 팽우 에게 명하시여 땅을 개척하도록 하였고, 성조에게는 궁실을 짓게 하였으며, 고시에게는 농사를 장려하도록 맡기셨고, 신지에게 명하여 글자와 호적을 관리하도록 하였으며, 회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케 하고, 우에겐 군대를 관장케 하였다. 비서갑의 하백녀를 거두어 아내로 삼고 누에치기를 다스리게 하니 순방의 다스림이 온 세상에 두루 미쳐 태평치세를 이루었다

병진(B.C.425)년, 주나라 고임금(B.C.440~425)때 나라 이름을 대부여라 바꾸고 백악으로부터 또 장당경으로 옮겼다. 이에 팔조를 법으로 하고 글 읽고 활 쏘는 것을 일과로 하며 하늘에 제사 지냄을 종교로 하고 누에 기르기에 힘쓰도록 하였다. 어딜 가나 금지하는 바가 없었고 죄를 처자에게까지 미치지 않게 하며 백성과 의논하여 힘을 합쳐서 나라를 다스렸다. 사내에게는 언제나 직업이 있었고 여자에게는 좋은 짝이 있었으며 집집마다 재물이 쌓였다. 산엔 도적이 없고 들엔 굶주린 자가 없으며 거문고 노랫소리가 온 누리에 가득하였다.

단군왕검은 무진(B.C.2333)년부터 나라를 다스려서 47세를 전 하니 그 햇수가 2096년을 헤아렸다.

임술(B.C.239)년 진나라 시왕(B.C.246~206)때 신인이신 대해모수께서 웅심산에서 일어났다.

정미(B.C.194)년 한나라 혜제때 연나라 추장이였던 위만이 이를 맞아 싸웠으나 이길 수 없자 바다 길을 택해서 멀리 망명하였다. 이로부터 삼한의 무리는 거의 한수(난하)의 남쪽으로 옮겨갔으나 한때에는 여러 영웅들이 요해의 동쪽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계유(B.C.108)년 한나라의 무왕때에 한나라는 군대를 움직여 우거를 멸망시켰다. 서압록 사람인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으켜 역시 단군이라 했다.

을미(B.C.86)년 한나라 소왕(B.C.87~74)때, 부여의 옛도읍을 차지하여 동명이라고 나라 이름을 부르니 이것이 곧 신라의 옛 땅이다.

계해(B.C.58)년에 이르러 봄철 정월에 역시 천제의 아들인 고추모가 북부여를 이어 일어났다. 단군의 옛법을 되찾고 해모수를 제사하여 태조로삼고 처음으로 연호를 정하여 다물이라 하니바로 고구려의 시조이다.

 

삼성기  전하편 (원동중 지음)

인류의 조상을 나반이라 한다. 처음 아만과 서로 만난 곳은 아이사타 라고하는데 꿈에 천신이 가르침을 받아서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구한(우리민족의 옛조상을 가리키는 말)의 무리는 모두가 그의 후손 이다. 옛날 한국이 있었나니 백성은 부유하였고 또 많았다. 처음 한임(하느님)께서 천산(天山:천산산맥 동쪽의 기련산)에 올라 도를 얻으시사 오래오래 사셨으니 몸에는 병도 없었다. 하늘을 대신해서 널리 교화 하시니  사람들로 하여금 군대를 동원하여 싸울 일도 없게 하였으며, 누구나 힘껏 일하여 주리고 추위에 떠는 일이 없게 되었다. 다음에 혁서한임,고시리한임,주우양한임,석제임한임,구을리한임에 전하고 지위리 한임에 이르더라. 한임은 혹은 단임이라고도 말한다.

옛글에 말한다. 파나류산(중국 하르빈 남쪽의 완달산)밑에 한님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바이칼호 또는 북해) 동쪽의 땅이다. 파나류의 나라라고도 하는데 그 땅이 넓어 남북이 5만 리요 동서가 2만여 리니 통틀어 한국이요  갈라서 말하면,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캅차카), 일군국, 우루국, 객현 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 사납아국, 선비국 (퉁구스), 수밀 이국 (서양의 인류학계가 주목하는 슈메르 문화의 뿌리에 해당하는  나라가 바로 수밀이국이다. 사실 한국이라는 나라는 12연방국가였다. 중국에서는 12연방 국가인 한국을 숙신이라불렀다.)이니 합하여 12국이다. 천해는 지금 북해라 한다. 7세에 전하여 역년 3,301년,혹은  63,182년이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한국의 말기에 안파견이 밑으로 삼위와 태백을 내려다보시며 "모두 가히 홍익인간 할 곳이로다" 하시며 누구를 시킬 것인가 물으시니 오가 (마가. 우가. 구가. 저가. 양가) 모두 대답하기를 "서자 한웅이 있어  용맹함과 어진 지혜를 함께 갖추었으며 일찌기 홍익인간의 이념으로써 세상을 바꿀 뜻이 있사오니 그를 태백산에 보내시어 이를 다스리게 함이 좋겠습니다" 하니 마침내 천부인 세 가지를 내려주시고 이에  말씀을 내려, 

"사람과 물건의 할 바가 이미 다 이루어 졌도다. 그대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 무리 3,000을 이끌고 가 하늘의 뜻을 열고 가르침을 세워 세상에 있으면서 잘 다스려서 만세의 자손들에게 큰 모범이 될지어다"라고 하셨다.

때에 반고라는 자가 있어 괴상한 술법을 즐기며 길을 나누어 살기를  청하매 이를 허락하였다. 마침내 재물과 보물을 꾸리고 십간 십이지의 신장들을 이끌고 공공, 유소, 유수와 함께 삼위산의 라림동굴 (감숙성 돈화현 삼위산은 저 유명한 돈황학의 본고장인 돈황동굴이 있는곳이다. 480굴 정도의 굴이 있는데 그굴의 벽화에는 고구려 인의 벽화와 단군신앙 벽화가 그려져있다.)에 이르러 군주가 되니 이를  제견 이라 하고 그를 반고가한이라 했다.

이에 한웅이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밑에  내려오시니 이곳을 신시 (신시개천을 한분은 단군이 아닌 한웅님  이시다.) 라하고 이분을 한웅천왕이라 한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데리고 곡식을 주관하고, 생명을 주관하고, 형벌을 주관하며, 병을 주관하고, 생사를 주관하며, 무릇 인간의 362여 가지 일을 모두 주관하여 세상을 교화하였으니 널리 인간 세상에  유익함이 있었다.

때에 한 곰과 한 범이 이웃하여 살더니 일찌기  신단수에서 빌었다. "원컨데 변하여 신계의 한 무리(맹氓이라 함은 외래의 이주민, 외래의 백성이라는 뜻이다.)가 되어지 이다"하니, 한웅이 이를 듣고 말하기를, "가르쳐 줄지어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주술로써 몸을 바꾸고 정신을 바꾸었다. 먼저 신이 만들어  놓은  영혼을 고요하게 하는 것을 내놓았으니 즉,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라.  이에 경계하여 가로데 "너희들이 이를 먹고 햇빛을 백일동안 보지 않으면 쉽사리 인간다움을 얻으리라."하니, 곰과 호랑이 두무리가 모두 이를 얻어먹고  삼칠일 동안 기(忌)하였는데 곰은  기한을 잘지켜서 타이름을 따르며 모습을 얻게 되었지만, 범은 게으르고 참을성이 없어서 금지하는 바를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니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는 이들의 두 성질이 서로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웅녀는 더불어 혼인할 곳이 없었으므로 단수(壇樹)의 무성한 숲  밑에서 잉태하기를 간곡히 원하였다. 그래서 임시로 변화하여 한(桓)이 되고 그와 더불어 혼인하니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호적(靈籍장부) 에 실리게 되었다.

한웅천왕이 처음으로 몸소 하늘에 제사지내고 백성을 낳아 교화를 배풀고 천경과 신고를 가르치니 무리들이 잘 따르게 되었다. 이로부터 후에 치우 천황이 이 땅을 개간하고 구리와 쇠를 캐내서 군대를 조련하고 삼고 소도를 관리하고 관경을 관리하며 벌을 다스리는 것 등을 모두 다른 무리와 더불어 서로 의논하여 하나로 뭉쳐 화백(화백이라 함은 우리가 알기로는 신라 때의 제도로 알고 있으나 여기 나와 있는 말로 미루어 보아 화백제도는 신라 때 새로 생겨난 법이 아니라 신라인들이 오래전에 있었던 법을 되살린 것이라 할수 있겠다.)을 하였다. 아울러 지혜와 삶을 나란히 닦으면서 온전함을 이루었다.

이때부터 구한은 모조리 삼한(세나라가 아닌 세 임금을 뜻한다,  진辰. 번番. 막莫이라는 세 조선을 통치하는 임금을 뜻한다.)에 통솔되고 나라 안의 천제의 아들은 단군이라 불렀다.

<밀기 密記>에서 말한다. 한국의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족이 있어서 걱정 거리였다. 한웅은 마침내 삼신으로써 가르침을 만들고 전계를 베풀어 무리를 모아 서약을 시켜 선악을 상주고 벌하는 법을 갖게 하였다. 이로부터 슬그머니 토벌하여 벌할 뜻을 품었다. 이때에 무리의 이름은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고 풍속도 오히려 점점 달라졌다. 원래 살던 무리는 범 무리였으며 새로 살기 시작한 것은  곰 무리였다. 범 무리의 성질은 잔악한 짓을 즐기며 탐욕이 많아서 오로지 약탈을 일삼았고 곰 무리의 성질은 어리석으며 또 자만에 쌓여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비록 같은 굴에 산지는 오래 되었다 하더라도 날로 멀어지기만 해서 일찌기 서로 도울 줄도 몰랐고 혼인도 터놓고 한 적이 없었다. 일마다 서로 따르지 않았고 모두가 하나같이  그 길을 같이 한 적이 없었다. 이에 이르러 곰 무리의 여추장은 한웅이 신과 같은 덕이 있다함을 듣고 무리를 이끌고 찾아가 뵙고 말한다. "원컨대 한 굴에 함께 사는 저희들을 위하여 굴 하나를 내려주시고 신계의 무리로 받아 주옵소서"하니 한웅이 이를 허락하시고 저들을 받아들여 아들을 낳고 산업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범 무리는 끝내 그 성질을 고치지 못하므로 이를 사해로 내쫓았다. 한족의 일어남이 이렇게 하여 시작되었다

뒤에 갈고 한웅(신시역대기에 의하면 제10세 한웅에 해당함.)이 나셔서 염제신농 (중국의 삼황가운데 두 번째 황제. 농사 .의약의 시조라 한다. B.C 3218 ~ 3078)의 나라와 땅의 경계를 정하였다. 또 몇 대를 지나 자오지 한웅(14세 한웅, 치우천왕 이라고도 함)이 나셨는데, 귀신같은 용맹이 뛰어 났으니 동두철액을 하고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듯 온 누리를 다스릴 수 있었고, 광석을 캐고 철을 주조하여 병기를 만드니 천하가 모두 크게 그를 두려워하였다. 세상에서는 치우천왕이라 불렀으니 치우란 속된 말로 우뢰와 비가 크게 와서 산과 강을 크게 바꾼다는 뜻을 가진다.

치우천왕께서 염제신농의 나라가 쇠함을 보고 마침내 큰 뜻을 세워  여러 차례 천병을 서쪽으로 일으켰다. 또 색도(산동성 임치현 동남쪽 여수의 남쪽에 있는 성명)로 부터 병사를 진격시켜 회대의 사이에 웅거하였다. 황제헌원(중국삼황의 하나로"황제가 청구에 와서 풍산을 지나다가 자부선생을 만나 삼황내문을 받아 만신을 부르고 불렀다"라고 중국사서에 기록되있으니 그 또한 동이족 임을 증명하는 말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이 황제 헌원을 아카드왕 사루곤을 모델로한 거짓역사라 하며 중국 삼황의 존재를 거부했고, 자신들을 실크로드의 주역인양 하며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자신들의 황국사관에 꿰맞추려 하였다.)이 일어나자 즉시 탁록(하북성 탁록현의 동남에 있다.)의 벌판으로 나아가서 황제헌원을 사로잡아(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치우가 졌다하고 북애자의 규원사화 에서는 치우의 승리라 하고있음, 그리고 삼성기에서도 치우의 승리라 하고있음.) 신하로 삼고, 뒤에 오장군을 보내 서 쪽으로 계곡고신 (황제의 증손이니 극의 아들이다.) 을 쳐 공을 세우게 하더라. 한 때 천하가 셋으로 나뉘어 서로 서로 대치하고 있었으니 탁의 북쪽에 대효(아마도 요임금 즉 제요효 당을 가리키는 것 같다.)가 있었고 동쪽엔 창힐(문자의 조상이라 알려진 중국사의 전설적인 인물 황제의 신하로서 새 발자국을 보고 글자를 지었다 한다.)이 있었으며 서쪽엔 황제헌원이 있었다.

이들은 서로 군대를 가지고 승리를 차지해 보려고 했으나 아무도 이루지 못하였다. 처음 황제 헌원이 치우 보다 일어남이 조금 늦더니 싸움마다 이로움이 없자, 대효에 의존코자 했으나 이룰  수 없었고 또 창힐에 의존코자 했으나 그것도 뜻대로 안되었으니 이 는 두 나라가 모두 치우의 무리였기 때문이다. 대효는 일찌기 간지의 술을 배웠고 창힐은 부도의 글을 배웠다. 당시의 제후들이 신하로서  섬기지 않는 자가 없음이 이 때문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말하기를, "제후가 모두 다 와서 복종하여 따랐기 때문에 치우가 극히 횡포 하였으나 천하에 능히 이를 벌할 자 없을 때 헌원이 섭정 했다. 치우의 형제가 81인이 있었는데, 모두 몸은 짐승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하며,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된 이마를 가지고 모래를 먹으며 오구장, 도극, 태노를 만드니 그 위세가 천하에 떨쳐졌다.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한가지가 있습니다. 사마천은 중국 중심의 역사관을 쓰기위해 우리민족을 낮추어야 했고 그러한 이유로 탁록의 전투의 승자를 황제헌원 이라 했습니다, 위의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북애자의 규원사화의 내용이 좀더 사실에 접근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마천이 중국적 역사관을 정립하기 위하여 우리민족의 단군이신 치우천왕을 곡해했음이 여기서 단적으로 들어 나고 있습니다.)

삼성기  신시역대기

배달한웅은 천하를 평정하여 차지한 분의 이름이다. 그 도읍한 곳을 신시라고 한다. 뒤에 청구국으로 옮겨 18세 1,565년을 누렸다.

  1세를 한웅천황이라 하며 또 거발한이라 하니 재위  94년에 120세까지사셨다.

  2세는 거불리한웅이니 재위 86년 102세까지 사셨다.

  3세는 우야고한웅이니 재위 99년 135세까지 사셨다.

  4세는 모사라한웅이니 재위 107년에 129세까지 사셨다.

  5세는 태우의한웅이니 재위 93년에 115세까지 사셨다.

  6세는 다의발한웅이니 재위 98년에 110세까지 사셨다.

  7세는 거련한웅이니 재위 81년에 140세까지 사셨다.

  8세는 안부련한웅이니 재위 73년에 94세까지 사셨다.

  9세는 양운한웅이니 재위 96년에 139세까지 사셨다.

  10세는 갈고한웅 또는 독로한이라 하니 재위 100년에   125세까지 사셨다.

  11세는 거야발한웅이니 재위 92년에 149세까지 사셨다.

  12세는 주무신한웅이니 재위 105년 123세까지 사셨다.

  13세는 사와라한웅이니 재위 67년에 100세까지 사셨다.

  14세는 자오지한웅인데 세상에서는 치우천왕이라 하며 
         청구국으로 도읍을 옮겨서 재위 109년에 151세 까지 사셨다.

  15세는 치액특한웅이니 재위 89년에 118세까지 사셨다.

  16세는 축다리한웅이니 재위 56년에 99세까지 사셨다.

  17세는 혁다리한웅이니 재위 72년에 97세까지 사셨다.

  18게는 거불단한웅 혹은 단웅이라 하는데 재위 48년에  82세까지 사셨다. [nsgoz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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