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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2333년 고조선 ~ 1945년 광복 ~ 현재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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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년표 - B.C. ~ A.D. 1 ~ 600 ~ 1000 ~ 1500 ~ 1800 ~ 1900 ~ 1945 [TOP10 - 등록순, NEWS, 한국, 축제, 세계, Sports(스포츠), Soccer(축구), Baseball(야구), Baduk/Go(바둑), Golf(골프), 테마별 ] ~ 금년 TopNEWS [ 국내, 축제, 해외, 토픽, 축구, 바둑, 골프, 야구, 부동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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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2,734
2024.4.19 11:13:16
조회 수 : 1210
2021.08.24 (22:32:34)
■ 1919년 3·1(삼일) 운동 三一運動 1919년 3월 1일에 일본의 강압적인 식민 통치에 맞서서 일어난 온 겨레의 항일 민족 독립 운동. 기미 독립 운동이라고도 한다. 엄밀한 뜻에서는 불법으로 빼앗긴 나라의 주권을 되찾으려는 ‘국권 회복 투쟁’이었다. 배경과 동기 우리 나라는 1904년에 한·일 의정서가 협정된 이래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 정책에 끊임없이 시달려 오다가 1910년에 마침내 일본의 강압으로 주권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그로부터 일본은 우리 겨레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무단 정치로써 탄압과 착취를 일삼았다. 교육 정책면에서는 우민 정책을 써서 민족 의식이 싹트는 근원을 없애려 하였다. 일본의 탄압이 날로 심해지자 수많은 애국 지사들이 해외로 망명하였다. 한편, 국내에서는 국내대로 지식인과 종교인을 비롯해 학생, 농민, 노동자에 이르기 까지 반일 감정이 날로 더해 가고 있었다. 마침 그 무렵 제1차 세계 대전이 독일의 패망으로 끝나고, 1918년 1월에 있은 파리 강화 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윌슨은 평화 14개조 가운데서 ‘민족 자결 원칙’을 내놓았다. 이 민족 자결 원칙은 항일 독립 투사들에게 크게 용기를 복돋우어 주는 바가 되었다. 그와 같은 세계 조류 속에서 1919년 1월 22일에 고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그것이 일본인에 의한 독살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온 국민의 분노는 극도에 이르렀다. 경과 민족 자결의 원칙이 제창되고부터 국권 회복 문제가 국제적으로 유리한 처지에 놓인데다가 고종의 독살설로 국민의 항일 감정이 극도에 이르렀을 즈음, 일본 도쿄에 유학 중이던 우리 유학생들에 의해 항일 투쟁의 횃불이 올랐다. 1919년 2월 8일(이팔)에 유학생 600여 명이 조선 기독교 청년 회관에서 학우회 총회라는 모임을 갖고 독립 선언서와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그들은 독립 선언서와 결의문을 일본 의회에 보내고, 한편 주일 외교 기관과 언론 기관 등에도 두루 보내었다. 이 사실은 사전에 국내 각계 지도자들에게 이미 알려져 있었으며, 국내에서는 국내대로 종교계, 교육계 지도자들 사이에 은밀히 구체적인 거사 계획이 진행 되고 있었다. 1919년 2월 초 이미 권동진, 오세창, 최인 등이 손병희와 독립 선언에 관한 의논이 있었고, 다시 송진우, 현상윤, 최인, 최남선 등이 독립 선언의 진행 방법을 검토하였다. 한편 이승훈이 크리스트교측에서, 최인이 천도교측에서 많은 동지를 모았고, 불교측에서 한용운과 백용성이 가담하게 되었다. 결국 크리스트교측 16명, 천도교측 15명, 불교측 2명의 33인이 민족 대표로 선정되고, 총대표로 손병희를 추대하였다. 마침 고종 황제의 인산(因山 : 국장)이 3월 3일로 결정되자,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을 예상하고 그 기회를 이용하려고 거사일을 3월 1일로 결정하였다. 학생들은 3월 1일 정오에 탑골 공원(파고다 공원)에서 만세를 부르기로 하였고, 민족 대표들은 인사동에 있는 태화관을 독립 선언 장소로 결정하였다. 드디어 3월 1일 학생과 시민들이 탑골 공원에 모여들었고, 하오 2시에 정재용이 팔각정에 올라가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낭독이 끝나자 2만여 명의 학생과 시민 들이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시위로 들어갔다. 한편 하오 2시에 태화관에서도 민족 대표들이 모인 앞에서 한용운이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를 부른 뒤, 일본 경찰에 취지를 통고하고 자진해서 체포되었다. 이에 앞서 그들은 일본 정부에 독립 선언서와 독립 통고문을 보내고, 미국 대통령과 파리 강화 회의에도 독립 탄원서를 전달했다. 파고다 공원에서 시작된 시위 운동은 불길처럼 전국으로 번져 갔다. 독립 선언문의 내용 최남선이 기초하고 한용운이 공약 3장을 붙인 이 글은 세계적인 명문으로 평가받고 있다. 선언문의 내용은 독립 선언의 취지, 독립 선언의 정당성, 우리 민족의 피해 상황, 독립 쟁취의 신념과 의의, 민족의 결의 등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공약 3장에는 배타적 감정 억제, 정당한 의사 발표, 광명 정대한 비폭력적 행동 자세를 떳떳하게 밝히고 있다. 운동의 확대 3월 1일 당일로부터 전국적으로 시위와 만세 소리가 끊임없었고, 서울은 고종의 국장 당일인 3월 3일만 삼갔을 뿐, 날마다 가두 시위를 벌이며 총독부의 총칼에 맞섰다. 거족적인 운동은 3월과 4월에 걸쳐 절정에 이르렀으며, 나중에는 중국 동북 지방과 하와이 등지로까지 퍼져 나갔다. 탄압 일본 총독부는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여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거나 투옥시켰다. 그 대표적인 예가 수원 제암리에서 있은 학살이다. 주민들을 교회에 몰아 넣은 다음 출입구를 막아 놓고 석유를 뿌려 불을 질러 그 작은 마을에서 1,00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그 밖에도 화수리, 정주, 맹산, 강서, 대구, 밀양, 합천 등지에서의 집단 학살과 유관순의 참살 등은 우리 겨레가 영원히 잊지 못할 참혹한 만행이었다. 결과 이 운동이 시작된 지 3개월 동안 211곳에서 200여 만 명이 참가하였다. 모인 횟수만도 154회에, 총이나 칼을 맞고 죽은 동포가 7,509명이고, 다친 사람은 1만 5,961명이나 되었다. 또 이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은 4만 6,948명이었다. 집 715채가 타고, 교회 47개, 학교 2개, 면사무소 47개소도 타 버렸거나 크게 부서졌다. 특히 다친 사람은 눈이 빠지거나 다리, 귀, 코가 잘린 경우가 많았다. 온 겨레가 떨치고 일어선 국권 회복 운동은 일본 헌병 경찰과 군대의 무자비한 총칼 앞에서 수많은 희생자만 낸 채 실패로 끝났다. 3·1 운동의 실패 원인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① 평화적인 시위 운동에 그친 점에 있고, ② 하나의 뚜렷한 지도 체계가 없어서 통일된 투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3·1 운동을 계기로 일본은 세계 여러 나라의 눈총을 의식하여 이전까지의 탄압 정책에서 이른바 문화 정책이라는 위장 술책으로 탈바꿈하였다. 의의 ① 3·1 운동을 계기로 온 겨레가 우리도 독립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② 3·1 운동을 통하여 일제의 가혹한 무단 통치 아래서도 꺾이지 않는 자주민의 저력을 국내외에 떨쳤다. ③ 민족의 강한 의지와 저력을 과시함으로써 세계 여러 나라에게 한국의 국권 회복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④ 3·1 운동은 중국, 인도 그 밖의 중동 지역에서의 식민지 해방 운동의 선구자적 구실을 하였다. ⑤ 3·1 운동을 계기로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국권 회복 운동으로 발전 시키려는 의지가 싹텄다. 그리하여 1919년 4월에는 상하이에 대한 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어 국권 회복 운동의 지도 기관이 되었다. ⑥ 삼일 정신은 이후 국권 회복 투쟁의 정신적 전통으로 계승되었고, 오늘 날에는 민족 정신, 자유 정신, 평화 정신으로 승화해 영원한 민족의 지표가 되었다. ■ 3·1 정신 三一精神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났던 거족적인 3·1 운동의 정신. 침략자인 일본의 무력적 탄압에 맞서 일어났던 3·1 운동의 근본 정신인 자주적 민족 정신, 자유 정신, 평화 정신을 말한다. 곧 다른 민족의 침략과 지배를 용납하지 않는 자주적 민족 정신, 강압으로 빼앗긴 국권과 자유를 되찾으려는 자유 정신, 평화적인 행동으로 우리의 뜻을 편 평화 정신이 곧 3·1 정신이다. [nsilje19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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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별/테마별 각종 10대뉴스 [국내, 국제, 스포츠] / 한반도의 역사(왕계표) | cyber |
2019-02-02 | 28929 | |||
2733 | 대한민국 (大韓民國. 1945-현재)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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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4 | 2306 | ||||
■ 대한민국 (大韓民國 1945-)
년도별/테마별 1945-현재 10대뉴스 제1공화국 .이승만 (제1~3대 1948.8-1960.4) -> 허정 (권한대행 1960.4-1960.8) 제2공화국 -> 윤보선 (제4대 1960.8-1962.3) -> 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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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2 | 일제침략시대(1910 ~ 1945) | |||||
cyber |
2021-08-24 | 1197 | ||||
일제침략시대(1910 ~ 1945) 1919년 2·8(이팔) 독립선언 1919년 3·1(삼일) 운동 1926년 6·10(육십) 만세운동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2년 윤봉길의사 처형 1942년 조선어 학회사건 [kknsil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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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1 | 6·10 만세 운동 (六十萬歲運動) | |||||
cyber |
2021-08-24 | 1163 | ||||
■1926년 6·10 만세 운동 六十萬歲運動 1926년 6월 10일(육십)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의 인산일을 기해 일어난 항일 만세 운동. 본래 이 날은 전국적인 항일 만세 운동을 일으킬 계획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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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0 | 2·8(이팔) 독립선언 (二八獨立宣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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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4 | 1118 | ||||
■ 1919년 2·8 독립 선언 二八獨立宣言 1919년2월8일(이팔)에 일본의 도쿄에서 우리 나라의 유학생들이 선포한 독립선언. 일본의 도쿄에 있던 조선 기독 청년 회관에서 유학생 600여 명이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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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삼일) 운동 (三一運動) 기미독립운동 | ||||||
cyber |
2021-08-24 | 1210 | ||||
■ 1919년 3·1(삼일) 운동 三一運動 1919년 3월 1일에 일본의 강압적인 식민 통치에 맞서서 일어난 온 겨레의 항일 민족 독립 운동. 기미 독립 운동이라고도 한다. 엄밀한 뜻에서는 불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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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8 | 조선어학회사건 (朝鮮語學會事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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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4 | 1070 | ||||
■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 朝鮮語學會事件 1942년 10월에 우리말의 말살을 꾀하던 일제가 조선어 학회의 회원을 민족주의 자로 몰아 검거 투옥한 사건. 일제는 조선어 학회를, 학술 단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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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7 | 윤봉길, 尹의사는 끝내 굽히지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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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4 | 1075 | ||||
■ 1932년 尹의사는 끝내 굽히지 않았다 [윤봉길의사 처형장면 사진 공개= 동아일보 2002년04월10일 18:28 = ]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된 매헌 윤봉길(梅軒 尹奉吉·1908∼1932)의사의 처형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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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6 | 광주학생운동 (光州學生運動) | |||||
cyber |
2021-08-24 | 1088 | ||||
■ 1929년 광주학생운동 光州學生運動 1929년 11월에 전라 남도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항일 운동. 일본인 학생이 우리 나라의 여학생을 희롱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일어난 운동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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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5 | 을미사변(乙未事變) - 민비 시해 | |||||
cyber |
2021-08-15 | 995 | ||||
을미사변 乙未事變, 고종32년(1895) 민비 시해. 1895년(고종 32년)에 일제가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일본 세력의 강화를 꾀했던 정변. 삼국 간섭후 조선에서의 정치적 세력이 크게 줄어든 일본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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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4 | 조선 | |||||
cyber |
2021-08-14 | 2720 | ||||
조선
시조 태조(1392-1398) -> 2대 정종(1398-1400) -> 3대 태종(1400-1418)
-> 4대 세종(1418-1450) -> 5대 문종(1450-1452) -> 6대 단종(1452-1455) 이징옥의 난, 단종의 혼령
-> 7대 세조(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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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3 | 26대 고종 | |||||
cyber |
2021-08-14 | 1722 | ||||
26대 고종 1863-1907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12세에 즉위.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제1대 황제. 안동 김씨의 60년 세도 정치는 왕권을 극도로 약화시켰으며, 그것은 곧 사회의 혼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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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2 | 헤이그 특사사건(Hague特使事件) | |||||
cyber |
2021-08-15 | 941 | ||||
헤이그 특사사건 Hague特使事件, 고종44년(1907) 1907년(광무 11년)에 고종 황제가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이상설, 이위종, 이준을 비밀리에 보내어 을사조약의 불법성과 일본의 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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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1 |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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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5 | 931 | ||||
국채보상운동 國債報償運動, 고종44년(1907) 일본에 진 빚을 국민의 힘으로 갚아 경제적으로 독립하자는 운동. 1907년에 서상돈, 김광제 등이 대구에서 금주와 금연으로 나라의 빚을 갚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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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0 | 용암포사건(籠岩浦事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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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5 | 1264 | ||||
용암포사건 籠岩浦事件, 고종40년(1903) 1903년(광무 7년) 러시아가 한·만 국경의 요지인 용암포를 불법으로 점령한 뒤 조차를 강요한 사건. 압록강 상류에서의 삼림 벌채권을 획득한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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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9 |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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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5 | 941 | ||||
만민공동회 萬民共同會, 고종35년(1898) 1898년 3월에 독립 협회 주최로 열린 민중 대회. 이승만, 홍정하 등이 주동이 되어 러시아 사람인 탁지부 고문과 군부 교련 사관의 해고를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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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8 | 아관파천(俄館播遷)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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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5 | 958 | ||||
아관파천 俄館播遷, 고종33년(1896)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겨 1년을 지낸 사건. 일본은 청·일 전쟁이 끝난 후 명성 황후가 친러적인 태도를 취하자, 1895년에 명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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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7 | 청일전쟁(淸日戰爭) | |||||
cyber |
2021-08-15 | 917 | ||||
청일전쟁 淸日戰爭, 고종31년(1894) 1894년에서 1895년에 걸쳐 청나라와 일본과의 사이에 벌어진 전쟁. 이전부터 우리 나라에 대하여 종주권(지배권)을 주장해 오던 청나라와, 메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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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6 | 동학운동(東學運動) | |||||
cyber |
2021-08-15 | 803 | ||||
동학운동 東學運動, 고종31년(1894) 1894년에 전라도 고부군에서 동학 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민중 운동. 갑오 농민 전쟁 또는 동학 혁명이라고도 한다. 우리 역사상 외국의 세력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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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5 | 교조 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 | |||||
cyber |
2021-08-15 | 854 | ||||
교조 신원운동 敎祖伸寃運動, 고종29년(1892) 조선 말기에 동학 교도들이, 억울하게 처형당한 교조 최제우의 죄명을 벗겨 줄 것을 정부에 요구한 운동. 2세 교조 최시형의 노력으로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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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4 | 방곡령 사건 | |||||
cyber |
2021-08-15 | 950 | ||||
방곡령 사건, 고종26년(1889) 1889년(고종 26년)에 내려진 곡식 수출 금지령, 방곡령(防穀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후 경제적 침투에 주력한 일본은, 온갖 방법을 다하여 우리 나라의 곡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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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3 | 거문도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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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5 | 905 | ||||
거문도 사건, 고종22년(1885) 1885년 4월부터 약 2년간 영국의 동양 함대가 전라 남도 거문도(巨文島)를 불법 점령한 사건. 1860년 블라디보스토크를 점령한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아 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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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2 | 갑신정변(甲申政變) | |||||
cyber |
2021-08-15 | 958 | ||||
갑신정변 甲申政變, 고종21년(1884) 1884년(고종 21년)에 김옥균, 박영효 등 급진 개화파가 일으킨 정변. 일본 세력을 이용하여 청나라의 간섭을 물리치고, 근대적인 혁신 정부를 세우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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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1 | 우정국 사건 | |||||
cyber |
2021-08-15 | 850 | ||||
우정국 사건, 고종21년(1884) 조선 말기의 체신 관청(郵政局). 1884년(고종 21년)에 여러 항구 사이에 오가는 서신과 국내의 우편 사무를 맡아 보기 위해 설치하였는데, 우정국 낙성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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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0 | 임오군란(壬午軍亂)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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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5 | 806 | ||||
임오군란 壬午軍亂, 고종19년(1882) 1882년(조선 고종 19년) 6월에 일본식 군제(軍制)와 민씨 정권에 반항하여 일어난 우리 구식 군대의 병란. 신식 군대의 양성과 군제 개혁에 불만을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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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9 | 만인소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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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5 | 1035 | ||||
만인소 사건, 고종18년(1881) 많은 유생들이 상소를 올려 정부의 시책을 비판한 사건 (萬人疏事件). 당시 김홍집이 일본을 다녀오면서 <조선책략>을 가지고 와 그것을 토대로 국정을 개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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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8 | 영선사 파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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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5 | 990 | ||||
영선사 파견, 고종18년(1881) 조선 말기에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청나라에 파견된 사절(領選使). 고종 18년(1881년)에 청나라의 신식 무기의 제조 및 사용법을 배우기 위해 김윤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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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7 | 신사유람단 파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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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5 | 980 | ||||
신사유람단 파견, 고종18년(1881) 1881년(고종 18년)에 일본에 파견하여 새로운 문물 제도를 보고 오게 한 시찰단 (紳士遊覽團). 강화도 조약 체결 후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김기수와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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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6 | 수신사 파견 | |||||
cyber |
2021-08-15 | 936 | ||||
수신사 파견, 고종13년(1876) 조선 말기에 일본에 보내던 외교 사절. 본래 통신사라고 하던 것을 강화도 조약 이후 양국이 대등한 처지에서 국교를 행한다는 뜻에서 수신사(修信使)로 고쳐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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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5 | 강화도 조약 | |||||
cyber |
2021-08-15 | 787 | ||||
강화도 조약, 고종13년(1876) 1876년(고종 13년)에 우리 나라가 일본과 맺은 불평등 조약(江華島條約). 병자 수호 조약(丙子修好條約)이라고도 한다. 1875년에 강화도에 침입한 일본의 군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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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4 | 운요호 사건 | |||||
cyber |
2021-08-15 | 872 | ||||
운요호 사건, 고종12년(1875) 1875년(고종 12년)에 일본의 군함 운요호(雲揚號)가 경기만에 불법으로 침입함으로써 일어난, 강화 수비군과 일본군과의 충돌 사건. 강화도 사건이라고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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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3 | 병인양요(丙寅洋擾) | |||||
cyber |
2021-08-15 | 914 | ||||
병인양요 丙寅洋擾, 고종3년(1866) 1866년(고종 3년)에 프랑스의 함대가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 병인양요가 일어나기 전에 대원군이 카톨릭 교도들을 박해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 9명의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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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2 | 오페르트 도굴사건, 고종5년(1868) | |||||
cyber |
2021-08-15 | 967 | ||||
오페르트 도굴사건, 고종5년(1868) 독일의 상인, 항해가 Oppert, Ernst Jacob(1832∼?). 1866년에 영국의 모리슨과 함께 로나호를 타고 상하이를 떠나 충청남도 해미 (海美)의 조금진(調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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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1 | 신미양요(辛未洋擾) | |||||
cyber |
2021-08-15 | 863 | ||||
신미양요 辛未洋擾, 고종8년(1871) 1871년(고종 8년)에 미국 군함이 우리 나라 강화도 일대에 쳐들어온 사건. 1866년(고종 3년)에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무역을 하자고 대동강으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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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 | 27대 순종 | |||||
cyber |
2021-08-14 | 885 | ||||
27대 순종 1907-1910 26대 고종의 둘째 아들. 조선의 마지막 국왕
[nsjosunk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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