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弩)
  
▶ 한나라 때 노는 한국에 있는 낙랑군의 왕광묘와 석암리 제212호 분(墳)에서 출토되었고, 최근에 중국 본토의 창사[長沙] 등지에서 출토되어 그 모양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목제(木製)의 쇠뇌 자루[臂]는 칠(漆)을 하였고 여기에 청동제(靑銅製) 기계가 달렸는데, 기계인 노기(弩機)는 곽(郭) ·아(牙) ·현도(懸刀) 등의 부분품으로 이루어졌다. 시위[弦]를 당기는 방법에는 손으로 하는 것과 발로 하는 방법의 두 가지가 있었다.

《사기(史記)》의 <소진전(蘇秦傳)>에는 허난[河南]의 한(韓)에서 유행하였다 하며, 《오월춘추(吳越春秋)》에서는 후난[湖南]의 초(楚)에서 발명되었다고 쓰여 있다. 노를 사용 ·취급하는 실상(實狀)에 대해서는 산둥무씨사[山東武氏祠]의 한대화상석(漢代畵像石)이나 동진(東晉) 고개지(顧愷之)의 《여사잠도(女史箴圖)》에서 볼 수 있다. 인도로부터 남방의 만족(蠻族)을 통하여 중국 각지에 퍼졌다는 설도 있고, 유럽에서는 일반적으로 동양 계통의 무기로 보고 있어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나라에서는 노를 구별하는 데 쏠 수 있는 돌의 수로 표시하였으며, 이에는 1석에서 10석까지 8종이 있는데, 이것은 시위 탄력의 한계와 궁신(弓身)의 강도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는 단궁(短弓)보다는 우수하고, 장궁(長弓)보다는 성능이 뒤떨어진다.

그래서 유럽의 100년전쟁 때인 1346년 ‘크레시(Cr暴cy) 전투’에서 증명된 것처럼, 후에 화포(火砲)나 소총의 출현으로 무기로서 자취를 감추었다.(동아대백과사전)

노의 사정거리와 위력

최대사정거리는 대략 810m이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유효사정거리는 350m였고, 적중 가능한 거리는 150m정도였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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