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d.gif 한(漢 BC 202~ AD 220년) 사자성어 , 인물사전


한민족 최초의 통일국가 진(秦)의 뒤를 이어 건국된 한민족 두번째 통일국가. 


진승, 오광의 난을 필두로 진나라에 대항하여 일어난 수많은 저항 가운데 가장 두각을 나타낸 것은 항우와 유방으로, 마침내 초한전(楚漢戰) 끝에 BC 202년에 한나라(漢)의 고조(高祖) 유방은 숙적 항우를 해하(垓下)에서 격파하고 장안 (長安)에 도읍을 정하여 통일된 한(漢)제국을 건설하였다. 한이란 명칭은 유방이 황제가 되기 전 한중(漢中)의 왕에 임명되어 한왕이라 한 데서 유래된 것이다. 


진(秦)이 엄중한 법치주의를 채용하여 실패했던 것을 감안해, 법제를 늦추고 부분적으로 봉건제를 부활해 군현제와 병용하는 이른바 군국제(郡國制)을 실시했다. 


한나라(漢) 시대에는 유교를 정치체제의 표본으로 삼았고, 종이와 지진계를 발명하는 등 여러 가지 과학적인 진보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무제(武帝)를 정점으로 하여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여 서기 8년 외척 왕망(王莽)에게 한의 건국 후 13대 210년만에 제위를 빼앗기고 말았다. 왕망은 신(新 8~23)왕조를 건설했지만 그의 급진적인 개혁정책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23년 반란군에게 피살됨으로서 신왕조도 단명을 기록하며 멸망했다.

 

왕망(王莽)에게 빼앗긴 한나라(漢)를 부흥하려는 하남(河南)의 호족(豪族)들 에게 추대된 종실 유수(劉秀 - 光武帝)는, 기원 25년에 전국을 평정하고, 도읍 을 낙양(洛陽)에 정했다.  
  
보통 이 때 생성된 한(漢)을 후한(後漢 25~220) 또는 동한(東漢)이라고 하고, 한고조에 의해 건국된 한나라(漢)를 전한(前漢 기원전 202~ 서기 8년) 또는 서한(西漢) 라고 부른다. 


후한 말년 환관(宦官)이 득세하고 정치가 부패하여 184년 황건(黃巾)의 난이 일어나고 위(魏), 촉(蜀), 오(吳)로 천하가 삼분된, 220년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曹丕)가 헌제(獻帝)를 폐위시키고 제위에 오르면서 완전 멸망했다.


brd.gif 후한(後漢)말기 사람들(168~220)

 

brd.gif 삼국시대(三國時代 220~280) 


조조의 위(魏), 유비(劉備)의 촉(蜀), 손권(孫權)의 오(吳)나라가 대립하는 삼국시대가 시작된다. 이 시기에는 유명한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출사표 (出師表)가 등장하는 때이기도 하다. 


brd.gif 진(서진 西晋 265~316) 


263년 위에 의해 촉이 멸망하고 280년 진(晋)의 사마염(司馬炎)에 의해 오가 멸망하면서 삼국시대가 끝이 나고 진나라(晋)가 천하를 통일하게 된다. 그러나 제권(帝權)을 강화하기 위해, 일족의 왕들에게 병력을 가지게 한 일은 이민족의 침입을 부른 결과가 되었다. 


316년에 진나라(晋)는 흉노(匈奴)에게 망하게 되지만(5호16국 316~439), 진나라의 일족으로 강남을 다스리고 있던 사마예(司馬睿)는 호족(豪族)의 지지를 받아 진왕조(晋王朝)를 재건했다. 전자를 서진(西晋 265~316)이라 하고 후자를 동진(東晋)이라 한다. 서진은 4명의 황제에 의해 52년간 지속됐고, 동진은 송(宋)의 유유(劉裕)에게 멸망되기까지 11명의 황제에 의해 104년간 지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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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d.gif 위(魏)나라 : 중국 삼국시대(三國時代) 3국의 하나(220∼265)로 조조(曹操)가 세웠다. 조조는 후한(後漢) 말기 군웅의 한 사람으로 연주(山東省)에 할거하면서 헌제(獻帝)를 낙양(洛陽)에서 예주(豫州) 허(許; 河南省 許昌縣)에 맞이하여 옹립했다. 


200년 관도(官渡)의 싸움에서 원소(袁紹)를 격파하고 화베이(華北)를 통일하여 기주(冀州)의 업성을 근거지로 삼았다. 


208년 승상(丞相)이 되었다. 형주(荊州)로 남하하려 했으나 적벽(赤壁)의 싸움에서 손권(孫權)과 유비(劉備)의 동맹군에 패했다. 뒤에 관중(關中)을 평정하고 헌제로부터 위공(魏公)의 칭호를 받았다. 한편 외척(外戚) 하후연(夏侯淵)을 보내 양주(凉州)를 평정했으며 황후 복씨(伏氏)를 폐하고 자신의 딸을 헌제의 황후로 삼았다. 한중(漢中;陝西省)에서 오두미도(五斗米道)라는 종교로 국가를 세운 장로(張魯)를 직접 정벌하였으며, 216년 작위가 위왕(魏王)에 이르렀다. 조조는 환관(宦官)의 양자(養子)의 아들로 기반이 없었지만 허를 비롯한 각지에 대규모 둔전(屯田)을 개발하여 식량을 확보하고, 모병(募兵), 유적(流賊), 강졸(降卒), 강민(降民), 유우(流寓)의 무리를 병호로 편성하여 전속군대로 삼았다. 신하 중에는 순욱(筍彧), 진군, 종요(鍾繇) 등 법가사상(法家思想)이 발달한 영천(潁川; 河南省) 출신들이 많았다. 


220년 조조가 죽은 뒤 조비(曹丕)가 뒤를 계승했으며, 관리등용방법을 향거리선(鄕擧里選)에서 구품관인법(九品官人法)으로 바꾸었다. 이것은 인재등용이 본래의 목적이었으나 귀족제도를 성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220년 헌제의 선양(禪讓)을 받은 조비가 즉위하여 문제(文帝)라 칭함으로써 후한이 멸망하고 위나라가 성립되었다. 도읍을 업성에서 뤼양으로 옮겼으며, 서역(西域)의 언기(焉耆), 선선, 구자(龜玆), 우전 등도 종속시켰다. 


명제(明帝)는 낙양궁을 정비하고 태극전(太極殿)과 소양전(昭陽殿)을 건립했으며, 사마의(司馬懿)를 보내 요동(遼東)의 공손연(公孫淵)을 격파했다. 


제왕(齊王) 방(芳) 때에는 관구검(毋丘儉)이 고구려를 쳐 영토를 확장했고, 야마타이국(邪馬合國)의 비미호(卑彌呼)는 조공을 바쳤다. 


명제가 죽은 뒤 제왕 방, 고귀향공(高貴鄕公) 모, 진류왕(陳留王;元帝) 환(奐) 등 삼소제(三少帝)가 계승했고 조상(曹爽)과 사마의가 보필했다. 


사마의는 종실(宗室)인 조상과 외척인 하안(何晏), 하후현(夏侯玄) 등을 제거하고 실권을 장악했으며, 아들 사마사(司馬師)가 제왕을 폐했고, 사마사의 동생 사마소(司馬昭)는 고귀향공을 살해했다. 

265년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司馬炎)이 진류왕의 선양을 받고 즉위하여 진(晉;西晉)나라를 건국함으로써 위나라는 멸망했다. 문화면에서는 조신(朝臣)이 귀족화되고, 문학, 음악, 서화 등 예술이 발달했으며, 노장사상(老莊思想)과 역학(易學)이 청담(淸談)의 주제가 되었다. 


ball.gif 조조(曹操) :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 초대 왕. 조조(曹操)는 자는 맹덕(孟德). 패국(沛國) 초(安徽省 毫縣) 출신. 할아버지 조등(曹騰)은 후한(後漢) 환제(桓帝)의 환관이며, 아버지인 태위(太尉) 조숭(曹嵩)은 조등의 양자이다. 


조조는 20세에 효렴(孝廉)에 천거돠었고, 낭중(郎中)이 된 뒤부터는 무직(武職)과 현령국상(縣令國相)을 지냈다. 강대한 군사력을 거느린 동탁(董卓)이 소제(少帝)를 폐하고 헌제(獻帝)를 옹립하자, 

189년 연주 기오(己吾)에서 군사를 일으켜, 원소(袁紹)를 맹주로 삼는 동탁토벌군에 참가했다. 그러나 전황이 불리했고 도망하는 병사도 많았다. 동탁이 죽자 원소와 원술(袁術) 등 군웅들이 할거하면서 대립했다. 


192년 청주(靑州)의 황건군(黃巾軍)이 연주에 침입하자 조조는 이때를 틈타 연주목(牧)을 삼고, 이들을 맞아 싸웠으며, 황건군의 정예부대 30만을 수하에 편입시켜 연주 견성을 거점으로 군벌을 형성했다. 또 도겸(陶謙)과 여포(呂布)를 격파하여 동방의 서주(徐州)로 세력을 뻗쳤고, 원술과 황건군의 지배 아래 있었던 서쪽 예주(豫州)의 일부를 지배했다. 청주의 황건군을 비롯하여 각지에서 투항한 황건군과 모병한 군인, 그리고 유민 등을 흡수하여 직속군대로 편성했고 병(兵)과 민(民)을 신분상으로 분리했다. 


195년 헌제가 연주목으로 임명했고, 196년 헌제를 예주의 허(許)에 맞이하고 조지(棗祗)의 헌책을 받아들여 허 등의 주군(州郡)에 전관(田官)을 두고 둔전(屯田)을 시작하여 군량 확보에 힘썼다. 이렇게 하여 조조가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추자 기주(冀州), 청주, 병주(幷州), 유주(幽州)에서 군벌을 형성하고 있던 원소와 대립하게 되었다. 


200년 관도(官度)의 싸움에서 원소를 대파하고 화베이(華北) 전체를 거의 통일한 조조는 기주목(冀州牧)을 영유하고 업으로 옮겨서 근거지로 삼았다. 이 무렵에 시행한 전조(田租)와 견면(絹綿)을 징수하는 세제는 서진(西晉) 세제의 선구가 되었다. 


208년 후한의 승상이 된 조조는 계속해서 순욱(荀彧), 진군(陳群), 종요(鍾繇) 등을 속관(屬官)으로 임명했다. 그의 심복에는 법가형명학(法家刑名學)의 전통이 뿌리깊게 남아 있는 영천(潁川) 출신이 많아 신상필벌(信賞必罰)과 육형(肉刑) 등에 그 영향이 나타나 있다. 


형주목(荊州牧) 유표(劉表)가 죽고 그 아들 유종(劉琮)이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자 조조는 양양(襄陽) 등 형주 북부를 합병했고, 다시 남하하여 강릉(江陵)으로 진격했다. 그리고 유비(劉備), 손권(孫權)의 연합군과 적벽(赤壁)에서 회전(會戰)했으나 패하여 천하가 삼분(三分)된 형세를 이루었다. 

조조는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관중(關中)을 평정하고 위공(魏公)에 올랐으며, 셋째딸을 헌제의 후궁으로 삼게 했다. 이어서 외척 하후연(夏侯淵)에게 양주(凉州)를 평정케 하여 영토의 확장을 꾀했고, 황후 복씨(皇后伏氏)를 폐한 다음 둘째 딸을 헌제의 황후에 오르게 했다. 또 그는 한중(漢中)에서 세력을 가진 오두미도(五斗米道)의 수령 장로(張魯)를 직접 정벌하고 216년 위왕(魏王) 자리에 올라 사실상 황제가 되었다. 그는 박식하고 예능에도 능했으며 시부(詩賦), 초서, 음악, 바둑, 방술(方術)도 잘했고, 병서와 병법 등 문무 양면에 매우 뛰어났다. 시호는 무제(武帝). 


ball.gif 사마의(司馬懿) : 중국 서진(西晉)왕조의 사실상의 창시자. 사마의(司馬懿) 자는 중달(仲達). 하내온(河內溫; 河南省 溫縣) 출신. 위(魏)나라의 황태자 비(丕;후의 文帝)를 섬겼는데, 위나라의 창시자 조조(曹操)가 죽고 황태자가 승상위왕(丞相魏王)이 되자, 상서(尙書)에 올랐다. 그 후 촉(蜀)나라 제갈공명(諸葛孔明)의 북벌(北伐)을 막고 공손씨(公孫氏)를 요동(遼東)에서 토벌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 249년 반란을 일으켜 조상(曹爽)을 죽이고 위나라의 실권을 잡았으며, 상국(相國;재상)이 되었다. 시호는 선제(宣帝).


ball.gif 곽가(廓嘉) : 위(魏)나라의 모사로 조조가 가장 아꼈던 선비였다. 곽가(廓嘉) 관직은 군제주에 머무르면서 원소를 토벌하는데 큰 공을 세우지만 천명이 다하지 못하여 39세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조조가 사흘을 통곡하며 식음을 전폐했다고 한다. 양척사람으로 자는 봉효이고 시호는 정후이다. 


ball.gif 순욱(筍彧) : 위(魏)별의 왕좌의 자리를 타고났으며 조조를 따라 수차례 출병하여 계략을 펼쳤다. 순욱(筍彧)은 훗날 구석을 받아야 하는 조조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나서 통분한 나머지 음독 자살을 한다. 영천 영음사람으로 자는 문약이었음


ball.gif 정욱(程昱) : 위의 모사로 주로 진을 치는것과 전략에 대해서 조조에게 진언을 했다. 정욱(程昱)은 머리가 뛰어난 수재로 수차례 출정하여 많은 공을 세운다. 개인적으로 제갈량을 존경했으며 병사한다. 동군 동아 사람으로 자는 중덕이며 시호는 숙후임


ball.gif 조비(曹丕) : 조조의 장자로 아버지인 조조가 죽은 뒤에 뒤를 이어 한의 황제를 내쫓고 자신이 황제가 되어 실질적인 위나라의 기틀을 세움.나이 38세에 병에 걸려 죽음. 조비(曹丕) 자는 자환이며 시호는 문무황제임.


ball.gif 조식(曹植) : 조조가 원래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했던 셋째 아들로 학문에 깊고 시를 짓는 것이 뛰어나 건안칠자의 한사람이다. 재사가 민첩하여 조비의 앞에서 심금을 짜내는 칠보시를 지어 조비로 하여금 원한을 가시게 하였다. 후에 외지를 떠돌아 다니며 많은 시를 지어냈으며 부, 송, 시, 잡론등등 많은 문학책을 집필하였다.조식(曹植)는 후에 진왕에 책봉되었으며 자는 자건 시호는 사임


ball.gif 조인(曹仁) : 조조의 종제로써 많은 공훈을 세웠으며 후에 대장군이 되어 진후에 책봉되었음. 조인(曹仁) 자는 자효 시호는 충임 


ball.gif 양수(楊修) : 조조 휘하의 주부로 생각하는것이 매우 민첩하고 박학하여 상대방과 대화를 해도 절대 끝기는 법이 없었으며 사람의 심리를 잘 간파하였다. 양수(楊修)는 지나치게 자신의 재주를 자랑하다가 한중의 전투에서 조조의 시기심으로 인해 죽게된다. 한 태위 양표의 아들임. 화흠사람으로 자는 덕조


ball.gif 왕랑(王朗) : 위의 대신으로 박식했으며 한의 구신이다. 조조에게 일평생 진언을 하여 학교, 법조등을 편찬, 설립했다. 왕랑(王朗) 동해군 사람으로 자는 경홍임 시호는 낙평향후임 


ball.gif 공융(孔融) : 공자(孔仔)의 직계후손으로 그의 주위엔 항상 손님의 발길이 끊인적이 없었고 술잔이 빌 때가 없었다. 공융(孔融) 북해상에 임명되어 제자양성에 힘썼으나 결국엔 조조의 시기심때문에 죽임을 당한다. 노국사람으로 자는 문거임.


ball.gif 등애(鄧艾) : 위(魏)조비(曹丕)의 모사로써 모사 종회와 함께 촉(蜀)을 공략할때 가장 큰 공훈을 세웠으나 강유의 계략에 빠져 성도로 압송되는 도중 분사한다. 의양 자양 사람으로 자는 사계

 

ball.gif 방덕(龐悳) : 위(魏)원래는 마초의 부장이었으나 후에 마초와 헤어진 후에 조조에게 투항한다. 후에 관우가 양양을 치러 오자 비장한 각오를 한채로 싸움에 임했으나 관우의 부장 주창과의 싸움에서 지게되어 사로잡히게 된다. 관우가 회유하려했지만 대장부답게 거절했다. 서량사람으로 자는 중사임 


ball.gif 왕찬(王餐) : 위의 문사로써 선비의 기질을 지니고 있었으며 학문을 논할때는 그 묘미가 극에 달했다고 한다. 건안칠자의 한명으로 관직은 조조의 시중을 맡았다. 산양 고편사람으로 자는 자균

 

ball.gif 장료(張遼) : 위의 맹장임 조조를 따라 많은 공을 세웠으며 무술이 뛰어나고 도략에도 능해 매사를 잘 처리했음. 부상당한 몸으로도 불구하고 합비에서 단신으로 뛰어들어 분전했으나 격전중에 상처가 터져 죽게된다.안문 마읍사람으로 자는 문원임 시호는 강후로 본래 성은 섭임.

 

ball.gif 장합(張哈) : 위의 맹장으로 수차례 정벌에 출동하여 벼슬이 전장군에 이러렀으며 하변에서 장비와 일대일로 겨루어 촉에 이름을 떨쳤다. 후에 단신으로 싸우는 모습을 제갈량이 보고 촉에 해가될 장수로 보고 목문도로 유인한후 궁병으로 장합을 죽이게 된다. 하간 정사람으로 자는 준예이며 시호는 장후임 


ball.gif 조상(曹爽) : 위의 장수 조진의 아들로 공훈을 세워 대사마가 되었으며 후에 모반할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미 알아챈 사마의에 의해 죽임을 당함. 자는 소백임. 


ball.gif 조예(曹叡) : 위 조비의 아들로 용모가 준수하고 머리회전이 빨랐다.과묵한 성격으로 방림원에서 향략만을 추구하다가 병사함. 자는 원중으로 시호는 원제임 


ball.gif 진림(陣淋) : 원래는 원소의 문관이었으나 조조에게 정벌당한뒤 그의 휘하로 들어가니 그의 재주를 높이 산 조조가 그에게 나라의 국가, 법, 군사등에 관한 모든 글과 격문을 그에게 맡긴다. 광릉사람으로 자는 공장임 


ball.gif 최염(崔琰) : 위나라의 인재등용관으로 천하의 인재를 잘 가려내어 전형의 중임을 맡게됨. 훗날 조비의 시기로 옥에 같혀 자살을 함. 자는 계서임 


ball.gif 하후연(夏侯淵) : 위의 맹장으로 개국공신임. 조조의 젊을 시절부터 생사고락을 같이 해오며 공훈을 세웠으며 타도계를 가장 많이 썼다.후에 촉의 오호장군인 황충의 대도에 목을 잃게 된다. 자는 묘재로 시호는 정서황임 


ball.gif 하후돈(夏侯惇) : 위의 맹장중에 맹장.무예가 매우 뛰어났으며 이름을 천하에 울린 장수이기도 하다. 전투에서 화살이 눈에 박혔으나 화살을 뽑아내고 세장수의 목을 베니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후에 병에 걸려 죽게됨. 자는 원양으로 시호는 충후임.  


ball.gif 가후(賈珝) : 위(魏)나라 조조의 모사(謀士)로써 관직은 태위였다. 아버지인 마등(馬藤)의 복수를 위해 남하하던 마초(馬超)를 한수(漢手)와 이간질시켜 격파 시킨다. 무위 사람으로 자는 문화(文和)이다. 


ball.gif 두습(杜襲) : 위(魏)조조의 문사로 수화에 능하여 조조가 항상 곁에 있게 할 정도 였다. 관직은 정중대부로 관학(학교)을 많이 세워 인재양성이 힘쓴 사람임. 영천 정릉 사람으로 자는 자서라함

 

ball.gif 만총(滿寵) : 위(魏)여러차례로 쳐들어오는 오군을 선봉이 되어 물리쳤으며 관직은 태위였음. 산양 창읍 사람으로 자는 백영이다. 


ball.gif 문빙(文聘) : 위(魏)지략/무력을 겸비한 장수로 수년간 강하에 주둔하면서 동오에 이름을 떨쳤다. 합비에서 손권의 진으로 뛰어들어 손권의 간담으로 서늘케 할정도로 뛰어난 무력을 지니고 있던 장수이다.후장군으로써 남양완 사람 자는 중업, 시호는 장후이다.

 

ball.gif 사마사(司馬篩) : 위(魏)사마의의 장자로 병서에 능통하였다. 부친의 뒤를 이어 위의 승상을 맡았으며 후엔 아우인 사마소와 위의 정권을 잡고 뒤 흔들게 된다. 후에 문제라 추존됨. 북관사람으로 자는 자원이었음

 

ball.gif 사마소(司馬沼) : 위(魏)사마의의 둘째 아들로 형인 사마사가 죽자 스스로 위의 대장군이 되어 정권을 취득한다. 그의 아들인 염이 정권을 찬탈해 진을 세운다. 진왕으로 추대되며 자는 자상

 

ball.gif 서황(徐黃) : 위(魏)에서 알아주었던 맹장으로 한자루의 대도(大刀)를 잘 썼다. 관직은 우장군이었고 여러싸움에서 용맹을 떨쳤지만 위를 배신한 맹달이 쏜 화살이 이마에 박혀 죽고만다. 하동 양군 사람으로 자는 공명 시호는 장후이다.

 

ball.gif 순유(荀硫) : 위(魏)순욱의 아들로 아버지와 달리 야망이 컸으며 조조의 신임을 받아 많은 계책을 장막안에서 폈다. 관직은 상서령에 이르렀으며 자는 공달


ball.gif 신비(辛毗) : 지식과 도략을 모두 겸비했으며 처음에는 원소의 휘하에 있었으나 원소가 조조에게 망한뒤 조조의 휘하로 들어가 많은 전투에서 계략을 내어 조조를 돕는다. 영천 양적 사람으로 자는 좌흡 시호는 숙후임

 

ball.gif 악침(樂琛) : 악진의 아들로 제갈탄과 함께 사마형제를 토벌하고 정권을 잡으려고 했으나 군사들의 배신으로 자기의 진에서 피살당했다. 동영 중천 사람으로 자는 윤군 시호는 민후이다.

 

ball.gif 악진(樂進) : 위나라의 무장으로 수 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워 조조에게 절충장군의 벼슬을 받았다. 양평 위국 사람으로 자는 문겸 시호는 위호이다.

 

ball.gif 왕쌍(王雙) : 위의 맹장으로 조진이 추천한 장수이다. 제갈량이 기산으로 장안을 넘보려고 할때 위의 학소와 함께 진창땅에서 제갈량의 선봉을 막아내어 제갈량을 다시 촉으로 돌아가게한다. 뛰어난 무예를 지녔지만 제갈량의 치밀한 계략에 넘어가 위연에게 일격에 죽임을 당한다. 적도 사람으로 자는 자전임.

 

ball.gif 우금(于禁) : 위의 맹장으로 정벌에 출정하여 30년을 전장터에서 보낸 장수이다. 조조에게 편장군의 시호를 받고 훗날 관우가 양양을 치려고하자 방덕과 함께 출정했지만 관우의 손에 사로잡혔다가 다시 위로 돌아왔으나 조비의 농간으로 부끄러움을 이기지못하고 홧병으로 죽게된다. 태산 거평사람으로 자는 문측

 

ball.gif 이전(李典) : 위의 장수로 많은 싸움터에서 적을 맞아 싸웠으며 오의 선봉군을 격파하는데 항상 공을 세웠다. 파로장군으로 제수되었으나 병사함. 사로 평군사람으로 자는 상형 시호는 민후임 


ball.gif 장간(張幹) : 위의 모사로 웅변을 잘했으며 적벽대전에서 주유를 달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나중엔 방통의 계략에 빠져 그를 데려왔으나 결정적으로 위가 패하는 길을 마련해주게됨.오나라의 군사손에 죽는다. 구강사람으로 자는 자익

 

ball.gif 전위(典韋) : 위의 장수로 팔의 힘이 대단하여 무거운 쌍철극을 주무기로 싸웠다. 조조의 후군을 맡았으며 수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후에 장수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맨몸으로 조조의 장막으로 보호했으나 궁병의 공격으로 피를 한말이나 토하고 죽었다.후에 그 사실을 안 조조가 위령제를 세우고 사흘을 통곡하며 위했다고 한다. 진류 파병사람으로 자는 후양임 


ball.gif 조진(曹眞) : 조조의 족질로써 수 차례 공훈을 세워 대사마에 오르게되고 후에 중원을 넘보는 제갈량과의 싸움에서 번번히 패하다가 제갈량이 글을 써서 조진을 조롱하니 분함을 삭이지못하고 죽게됨. 시호는 원후로 자는 자단

 

ball.gif 조창(曹彰) : 조조의 둘째 아들로 무예가 뛰어났다. 훗날 북방 오랑캐를 평정하고 그들을 정벌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임성왕에 책봉되었으며 자는 자문

 

ball.gif 조휴(曹休) : 조조의 족질로 도략이 높아 조조를 옆에서 보좌함.그 뒤 제갈량과의 싸움에서 연이어 패하자 통분함으로 참지 못하고 등창이 터져죽게됨. 자는 문렬

 

ball.gif 종요(鐘繇) : 위의 종령장으로 형옥을 현명하게 처리했다.영천 장부사람으로 자는 원상

 

ball.gif 종회(鐘會) : 위의 태부 종요의 아들로 등애와 함께 촉을 정벌하고 강유의 계략에 동조하고 위에 반역을 일으켰지만 휘하 장수들의 배반으로 죽게됨. 영천 장사람으로 자는 사계

 

ball.gif 하후패(夏厚覇) : 위의 하후연의 아들로 아버지를 닮아 무예가 뛰어났으며 사마의가 제거하려고 하자 촉에 투항하여 기회를 엿보았으나 조양의 공격으로 난전중에 전사했다. 자는 중권임.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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