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명의 책략과 위,오의 격돌 - 합비(合肥)전투

▶ <손권 VS 조조>

오군(吳軍)
- 선 봉 : 여몽(呂蒙), 감녕(甘寧)
- 중 군 : 손권(대장), 능통(凌統), 주태(周泰)
- 후 위 : 장흠(蔣欽)

위군(魏軍)
- 유인부대 : 악진(樂進)
- 기습부대 : 이전(李錢), 장료(張遼)

손권을 꼬드긴 유비

합비(合肥)는 지금의 안휘성(중국 동남부)의 중앙에 위치한다. -현재는 성도(省都)-. 안휘라는 지명은 청나라때의 안경과 휘주, 두곳의 머릿글자를 따서 합성된 것이다. 그 곳은 양자강 남부와 양자강 유역인 중앙부 그리고 회하유역인 북부, 이렇게 세군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중 중앙부에 있는 합비라는 이름은 <수경주(水經注)>의 <여름물이 넘치면 시(施)가 비(肥)에 합쳐진다(合). - 시(施)와 비(肥)는 강이름 ->에서 유래되었다.

건안 19년(214), 유비는 익주의 목(지방장관)이 되었는데 익주는 지금의 사천성으로 현재 인구는 약 1억에 다다른다. 그곳의주위가 산맥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큰 분지이다. 그리하여 옛부터 <천혜의 땅>이라 일컬어졌고 농산물을 비롯해 특산물도 풍부한 곳이어서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유비는 그곳에 본거지를 두었다. 이 말은 간단하게 그냥 본거지로 삼은 것처럼 들릴수도 있는데 사실은 그를 믿고 불러들인 유장을 배신하고 빼앗은 것이니까 음모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때는 양육강식의 시대였으므로 깨끗하기만 하여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그 이후 위나라의 조조, 촉의 유비, 그리고 오의 손권은 형주를 무대로 삼았다.

그때의 형주는 지금의 호남, 호북, 두 성의 대부분과 사천, 귀주, 광서, 광동의 일부를 포함하였다고 한다. 일찌기 오나라의 지략가인 노숙은 손권에게 '형주를 손에 넣는 일은 제왕이 되는 첫걸음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형주는 중요한 곳이었다.

유비는 신변이 늘 분주했고 조조는 한중의 양평관에서 장로를 물리치고 남하했다. 그러다가 손권의 수군의 위력을 보고 그랬는지 아니면 적벽에서의 뼈아픈 패전이 떠올랐기 때문인지 북쪽으로 돌아가 버렸다. 하지만 조조는 군대를 나누어서 합비방어만큼은 굳건히 하도록 하였다. 합비는 작파, 초, 업의 서북지역 제1전선으로서 위나라 본국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선상에 놓여져 있다.

그러던 중 이윽고 합비전투가 일어났다.

그 시초는 익주에 본거지를 확보했던 촉나라의 사정으로 인하여 일어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촉은 조조가 남하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그래서 공명과 의논하여 이적을 오나라로 파견시켰던 것이다. 그리하여 손권을 만난 이적은,

"지난번에는 장사의 삼군을 돌려줄 기회를 놓쳤습니다. 조만간 서류와 함께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조조한테 사천의 동쪽을 빼앗겨서 형주가지 돌려드린다면 관우가 머무를 곳이 없어집니다. 그러하오니 귀국이 조조의 합비를 공격해 주신다면 저희는 사천의 동쪽을 되찾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형주를 돌려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손권은 유비가 조조를 철수시키려는 것이라고 판단하면서도 합비를 손에 넣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군을 동원하여 양자강을 건너 우선 환성을 노렸다.

그 곳은 조조가 노강 태수인 주광을 책임자로 삼아 둔전을 실시시키고 수전을 개간하며 합비에 식량을 공급했던 곳이다.

손권의 군대는 우선 그곳을 공격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손권은 여몽, 감녕을 선봉으로 삼고 장흠에게는 후위공격을 명령했으며 자신은 주태, 진무와 함께 중군을 담당했다. 그 후 양자강을 건너 맨처음 당도한 곳이 화성이었다. 그곳을 맡고 있던 주광은 합비로 지원군을 요청했는데 지원하러 달려온 장료가 도착하기도 전에 환성은 함락되어 결국 장료는 합비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오나라의 10만대군은 합비를 향해 나아갔다. 그때 환성이 함락되어 몹시 괴로워하고 있던 장료에게 조조가 보낸 작은 상자가 도착되었다. 열어보니 그것은 군령서(진중의 명령서)였다. 이미 조조의 10만대군이 합비를 향했다는 급보도 전해져 왔다.

'손권이 도착하면 장료, 이전, 두 장군은 나아가 싸우고 악진장군은 성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긴급회의가 열렸는데 장료는 '곧바로 공격하여 초장에 기세를 꺾어야 한다.'라는 파였고 악진은 '적수가 많다. 성안에서 농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파였다. 그리고 장료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전은 잠자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장료가 딱 잘라 말했다.

"여러분은 자기자신의 일만 걱정하고 나라일은 돌보지 않고 있소. 그러니 나는 혼자서라도 내 생각대로 싸우겠소."

그 말을 듣고 이전도,

"알겠습니다. 장료장군의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라며 순순히 동의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장료가 군대를 이끌고 소요진 북쪽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소사교라는 다리가 있는데 오나라 군대가 그 곳을 건너면 악진의 군대가 물러나는 것처럼 위장했다. 이를 본 오나라 군대가 그 뒤를 쫓으면 악진과 이전의 군대가 협공한다. 그 후 혼란한 적의 중군을 장료의 군대가 공격한다.' 라는 말하자면 악진의 군대는 미끼용으로서 먼저 오나라 군대와 접전한다는 작전을 세웠다.

용맹한 장군 장료앞에 무릎꿇은 오나라의 대군

앞에서 말한 작전대로 장료군과 이전군, 악진군은 군대를 이끌고 나아갔다. 상대 적인 오나라 군대의 선봉은 여몽과 감녕이 맡았다. 그리고 손권은 능통과 함께 중군을 지휘하여 합비를 공격하려 하였다.

그래서 여몽과 감녕은 악진과 맞붙게 되었는데 악진은 작전대로 도망치는 척했다. 그러자 선봉이 승리했다는 보고를 받은 손권이 소요진 북쪽으로 향했는데 그 때 갑자기 신호탄이 울려 퍼졌다. 연이어 오른쪽에서는 이전이, 왼쪽에서는 장료가 군대를 이끌고 밀려왔다. 손권은 아연질색하여 여몽과 감녕군을 구원하러 나섰다.

그 때 능통이 손권을 향해 외쳤다.

"서둘러 소사교를 건너십시오."

그러나 이미 이천명(팔백명이었다고도 한다)에 이르는 장료의 병사들이 물밀듯이 밀려왔고 능통은 남은 삼백명을 이끌며 필사적으로 이를 막아내려 했다.

한편 손권은 말을 달려 소사교로 향했는데 다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라 안절부절할 때 부장인 곡리가 외쳤다.

"일단 말을 먼저 보내고 힘껏 뛰어건너십시오."

그 말을 받아 들여 손권은 그대로 시도해 보았고 다행히도 무사히 건널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훗날 이 곳을 <비기교(飛騎橋)>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그것은 손권이 목숨을 건 모험을 한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리하여 손권은 후위부대인 서성의 배에 겨우 오를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오나라의 중군은 필사적인 방어전을 펼쳤고 여몽, 감녕의 군대는 후퇴하는 위나라 군대를 뒤쫓았다. 그래서 중군이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그래도 급히 달려갔는데 그 앞에 이전이 가로막고 서 있었고 뒤쪽에서는 악진의 군대가 추격해 왔다.

그리하여 여몽, 감녕, 능통일행은 목숨만 부지했으나 피투성이가 되는 싸움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자연히 중군인 능통의 부대는 참담한 지경에 놓여져 단 한명의 생존자도 없을 정도였다. 이리하여 완전히 섬멸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오나라는 크게 지고 말았다. 이 전투로 말미암아 강남의 사람들은 장료의 강력함에 떨게 되었고 어린아이들까지도 그의 이름을 알게 될 정도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료래래(遼來來) 료래래(遼來來) - 장료가 온다. 장료가 온다 -> 라는 노래를 부르며 엄마들이 아이들을 달랠 정도였다고 한다.

그 후 손권은 군대를 유수로 되돌려 병선을 정비함으로써 수륙양쪽으로 공격할 수 있는 태세를 갖췄다.

한편 이 소식을 접한 장료는 한중에 있는 조조에게 지원병을 요청했고 조조는 한중의 정군산을 하후연에게 맡긴 후 대군을 이끌고 강남의 유수로 급히 달려갔다. 말하자면 위나라는 유비와 공명의 책략에 걸려든 것이다. 왜냐하면 유비측 입장에서 본다면 위나라 대군은 손권과 승패를 결정짓기 위해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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