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천과해(瞞天過海)
  
▶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너가다 - 눈을 속여 상대의 판단을 흐리게 하라>

원문에 보면 '군사적 방비가 지극히 주도면밀하고 철통같은 경우 오히려 병사들의 투지는 해이해져서 적을 업신여기기 쉽고 평상시 늘 보는것에 대해서는 쉽게 의심하지 않게된다.'고 적혀 있다.

암암리에 수행하는 작전이지만 공개적인 작전속에 포함되어 있어서 언뜻 보기에 공개적인 작전과 서로 모순 상치되지 않는다. 이는 역리에서 음과 양이 서로 조화롭게 작용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몰래 수행하는 작전일수록 큰 성과를 얻어야 하니 지엽적인 문제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몰래 처리한다고 해서 밤중에 물건을 훔친다든지 궁벽한 마을에서 사람을 죽이는 따위의 뻔히 눈에 보이는 어리석은 짓은 모사(謀士)가 할 일이 아닌 것처럼 사기꾼의 수법은 대단히 엄밀하여 만천과해의 일종처럼 보인다. 즉 상대가 이쪽을 절대적으로 믿게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특성이 있다. 자연스럽게 믿도록 해놓고 상대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즉 큰 목적을 위해 작은 속임수를 완벽하게 사용한다는 것이 이 계책의 핵심이다.

아래의 글은 만천과해의 계략에 대한 실례를 두가지 들고 있다.


(1) 철벽같은 적진의 포위망을 돌파한 명장 태사자의 속임수

<삼국지> 시대에 오나라의 손책을 섬기는 명장으로 태사자라는 인물이 있었다. 자는 자의(子義)로 동래군 황현 출신이다. 이것은 그 태사자의 젊은날의 일화이다.

후한제국의 말기 북해국(北海國)의 재상인 공융(孔融)이 주둔지인 도창(都昌)에서 황건적의 대군에 포위되어 섬멸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때 태사자는 예전에 공융으로부터 은혜를 입은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갚기위해 노모의 명을받고 즉시 도창으로 달려가 몰래 성내로 잠입하여 공융과 만났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긴급히 서둘러야 한다. 가까운 평원현에 구원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으나 포위망이 워낙 삼엄하여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 때의 평원현 현령은 훗날 촉나라를 일으킨 유비였다.

공융의 탄식에 태사자는, 지금이야말로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어려운 밀사의 역할을 자처하였다. 이 일은 불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태사자에게는 그 나름대로의 승산이 있었다.

우선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날이 밝기를 기다린 태사자는 부하 2명을 데리고 성문을 열었다. 탈출을 도모한 것이라고 생각한 황건적의 병사는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다. 이 사이를 태사자는 유유하게 말에서 내려 성의 참호속으로 들어가 표적을 지면으로 돌출시킨 다음 한가로이 활쏘기 연습을 시작하였다. 적병들은 수상하게 여기어 주목을 하고 있었지만, 태사자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준비한 화살을 전부 쏘고 총총히 성내로 되돌아 갔다.

다음날 아침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태사자는 사격 연습장에 나타났는데, 황건적 중에는 "아아, 또 사격연습이구나"라고 생각하고 경계심을 늦추고 크게 신경쓰지 않는 병사도 있었다. 3일째가 되었다. 적군의 병사들은 대부분 태사자의 사격연습에 주의하지 않고 오히려 오랜 포위작전에 싫증이 난듯 잡담이나 하고 있었다. 경계의 빛을 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태사자는 이렇게 적이 방심한 틈을 타 돌연 말에 올라타고 단숨에 포위망을 뚫고 멀리 달아났다. 그리고 평원현으로 달려가 유비에게 원군을 요청하여 관우, 장비 이하 3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 훌륭한 역할을 한 것이었다.

이 일화는 수비에 있어서 만전을 기한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반드시 허점이 있다는 것, 어떠한 경우에도 완벽한 수비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 유비의 속마음을 찌른 육손(陸遜)의 책략

황건적의 난 이후 의형제 관우, 장비를 잇달아 잃은 유비는 , 사사로운 복수전은 안된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동맹관계였던 오나라를 공격하기위해 대군을 직접 이끌고 성도를 떠났다. 장무 2년(222) 7월의 일이었다.

오로지 복수심에 불타는 유비는 오나라의 최전선인 무성(巫城)을 공략하고, 자귀성까지 진격하였다. 이러한 정세를 보고있던 형주 남부의 호족들도 군사를 일으켜 유비군과 합류하였다. 동정벌은 일시에 촉군의 일방적인 승리의 연속이었다. 이릉(夷陵), 효정의 성을 점거한 유비는 확장된 전선을 유지하기위해 무성에서 효정까지 실제로 700리에 이르는 울타리를 쌓아 수십개에 이르는 진영을 감시하였다.

한편 이러한 유비의 공격에 대해 오나라에서는 당시만해도 무명에 가까운 육손이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유비를 맞아 싸우게 되었다. 육손은 후한의 성문(城門)교위 육우(陸紆)의 손자이며, 구강(九江)군의 도위인 육준(陸駿)의 아들이다. 오나라 손권과도 인척관계인 명문가의 사람으로 신장은 8척, 용모가 수려한 대장부였으나 이때까지는 두드러진 무공이 없었다. 따라서 함께 출진한 오나라의 노장들도 육손을 걱정스럽게 생각하였으며, 마찬가지로 유비도 육손을 대수롭지않게 생각하여 병사들로 하여금 온갖 심한 욕설을 퍼붓도록 하였다. 육손이 흥분하여 쳐들어오면 복병을두어 일시에 잡는다는 전략으로 역전의 명수인 유비가 기다리고 있었으나 육손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육손의 진영에서도 혈기가 왕성한 병사들이 공격할 것을 간청하였으나, 육손은 "산간(山間)에 살기가 있다. 아직 시기가 아니다"고 간청을 만류하고 만류하였다. 매일 육손을 매도한 촉군의 병사들도 언제부터인가 유비와 마찬가지로 적의 총대장 육손을 단순히 겁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자기 최면에 걸렸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복병들도 긴장감을 늦추기

시작하였으며, 장기간의 포진에 의한 피로도 누적되었다.

"이때야 말로 좋은 기회이다!"

육손은 여러 병사들을 모아 일시에 40개의 유비의 진영에 화공(火功)으로 공격할 것을 명령하였다. 불에 의한 공격으로 촉군은 순식간에 무너졌으며, 이 일전으로 유비는 수명을 단축하는 불운을 맛보게 되었다.

어떠한 속셈을 가지고 꾀를 부리면 그 꾀에 빠지게 된다. 병법의 묘미는 이러한 저급한 술책에 의한것이 아니라 변통의 이면에 있다. 이러한 신변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섣불리 수를 쓰면, 오히려 역으로 적의 절묘한 계략에 빠지게 되는 결과가 된다. 인간관계에 이를 적용하면, 대인관계에 있어서 '익숙함'과 '습성'에 따라 섣부르게 상대방을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차피 저놈은...", "그 사람은 지금도..."라는 식의 단순한 생각이 중요한 실책이 된다. 상대방을 자기의 생각대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고정관념이 가지고 있는 허점을 노리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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