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처세술] 조조의 인간 조정술
  
부하의 좋은 의견은 주저없이 채택하라.  

동탁의 죽음은, 화북지방에서 군웅활거하는 정세를 더욱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런 속에서 착실하게 실력을 키운 것은 하북, 산서, 발해를 확보하고 있던 원소와 산동, 안휘, 하남의 중간지대를 근거지로 한 조조이다.  

이 양대 세력 사이에서 달랑달랑 하니 시간을 벌면서, 조그만 영토를 서로 다투고 있었던 게, 원술, 여포, 유비, 장막, 포신, 유표, 장수... 등의 여러 군벌들이었다.  

동탁은 더없이 전횡무도하기는 했으나, 조정을 받들어 모시고 강권을 발휘하고 있었으므로,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래도 한나라 왕실의 위신이 아직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 강한 독재자가 죽자 황제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각지에서 황건적의 잔당들이 다시 날뛰기 시작하였다.  

동탁이 죽은 이듬해, 조조는 산동에서 황건적의 잔당을 토벌하고, 포로 수 만명을 영입하였다. 그의 지휘하로 들어간 이 농민부대는 '청주병'이라고 불리웠다. 농민의 장정들을 중심적인 핵으로 하여 특별히 훈련되며, 장비도 좋고 사기도 높은 이 '청주병'은 훗날 조조 휘하의 주력군이 되었으며, 각지의 전투에서 압도적인 강성을 자랑하는 정병 집단으로 성장하였다.  

조조라는 남자는 냉혹하고 자기 본위이지만, 부하의 좋은 의견은 서슴치 않고 받아들인다. 그 무렵, 청주군에서 항복해온 장군의 한 사람인 모개가 이렇게 진언하였다.  

"천하를 취하려면, 다음과 같은 원칙을 필요로 합니다.  

  첫째, 천자를 받들어 모실 것. 이로써 군병을 일으켜 거사하는 대의 명분이 섭니다.  

  두번째, 농민 출신자를 병사로 쓸 것. 이로써 인심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백성의 대부분은 농민이며, 농민이야 말로 강한 병역의 원천입니다.  

  세번째, 영내의 농업을 진흥 시킬 것. 이로써 경제력을 높이며, 군비를 강화할 수가 있습니다.  

  이 세가지 원칙에 충실하는 한, 어르신네처럼 영명한 자질과 강대한 역량을 가지신 분은 반드시 천하의 패권을 거머쥘 수 있을 것 입니다."  

조조는 즉각 이 진언을 받아 들였다. 조조가 실시한 존왕봉제, 농업진흥, 둔전병제도, 경제력중시, 부국강병, 인재등용..... 등의 제반정책은, 천하를 거머쥐기 위한 원칙의 구현책이었다.


'조삼모사(朝三募四)'에 사람이 움직이는가 
 
산동과 하남의 경계지대에 근거지를 두고, 여러 군벌들과 싸우던 무렵은 조조에게 있어서는 숨돌릴 사이도 없이 괴로운 시기였다. 매일매일이 전투와 정치투쟁의 연속이며, 전쟁터에서 적과 벌이는 임기응변의 진퇴는 별도로 하더라도, 부하들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온정이란 일체 소용이 없고, 자기 편에 대해서도 술책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때로는 냉혹 비정한 측면도 보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느 때, 조조는 거성을 적에게 포위당하였다. 성안의 식량은 날로 줄어들고 사기도 갑자기 쇠퇴하여 졌다. 조조는 군량을 관리하는 장교를 호출하여, 무슨 대책이 없겠는냐고 물었다. 그 부하가 하나의 계략을 짜 내었다.  

"되의 양을 적게 하십시다. 각 부대에 배급할 때에 그것으로 곡물을 되면, 자못 충분히 있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그렇게 하면 병사들의 불만도 적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음, 바로 조삼모사라고 하는 것이로군."  

조조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 건의를 받아들였다.  

그 옛날, 저공이라는 왕이 애완용 동물로서 원숭이를 많이 키우고 있었다. 아침에 세개, 저녁에 네개씩 칠엽수의 열매를 먹이로 주고 있었다. 매일매일 똑같은 방식이었으므로, 원숭이들은 그래가지고는 충분하지가 않다고 와글와글 떠들기 시작했다. 거기서 하나의 꾀를 생각해낸 저공은 이번에는 아침에 네개, 저녁에 세개씩 칠엽수의 열매를 주기로 하였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대우가 개선된 것으로 알고 조용해 졌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잔꾀를 써서 문외한이나 담당 외의 사람을 속이는 일을 중국에서는 '조삼모사'라고 하게 되었다.  

고전에 밝은 조조는 이 말을 상기하며 쓴웃음을 지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상했던 바와는 달리 곧 병사들 사이에서 총대장인 조조가 부하들을 속여서 양식을 줄이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조조는 제안을 했던 관리 장교를 호출하여,  

"이번만큼은 자네가 죽어줘야 하겠네. 그렇지 않고서는 병사들을 수습할 수가 없겠네."  

"당치도 않습니다.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보기 싫다. 살신성인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세."  

그렇게 말을 마치자마자, 한 칼에 베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서는 그 목을 진중의 여러 사람들 눈에 띄게 해 놓고,  

"이 군량 책임자는 고의로 되를 작게 하여서, 관용의 양식을 부정으로 유출하였으므로 군법에 따라 처형하였다. 우리 군대에서는 급식의 분배를 공평하고 적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여러 병사들은 상사를 믿고 동요하지 않도록 하라."  

그 이후, 병사들은 불평을 하지 않게 되었다.


분별력이 확실한 남자에게는 사람이 따른다.  

조조는 모개의 진언에 따라, 병사로 농촌 출신자를 채용하여, 농업진흥에 마음을 쏟고 있었으므로 행군할 때에도 부하들에게,  

"보리밭을 짙밟아서는 안된다. 위반하는 자는 엄벌에 처한다."  

라고 엄명을 내렸다. 조조 자신도 밭근처를 지날 때에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 행군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의 애마가 아차하는 순간에 보리밭으로 뛰어들어가, 수확을 목전에 둔 보리를 무참히 짓밟아 버리고 말았다. 조조는 군법관에게 자기가 범한 죄에 대해서 소견을 물었다. 난처해진 군법관은,  

"존자에게는 죄를 묻지 않는다는 옛 말이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으나 조조는,  

"그래서는 안 된다. 규칙을 만든 사람 자신이 그것을 위반했는데도, 그것을 불문에 부쳐서는 아랫사람들에게 지키도록 할 수가 없다."  

라고 말하면서, 칼을 꺼내어 자신의 머리칼을 자르고 밭 주인에게 다액의 보상을 해 주었다.  

성격적으로는 냉혹하고 비정한 조조를 부하들이 따르는 것은, 이와 같이 항상 공사를 구분하고 솔선수범했기 때문이다.  

어느 더운 여름날, 조조의 군대는 행군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음료수는 없고, 부근에는 우물도 개울도 보이지 않았다. 갈증을 호소하며 낙오하는 자가 속출하였다. 말 위에서 그것을 보고 있던 조조는 커다란 목소리로,  

"모두들 저쪽 산을 보라. 저곳에는 유명한 살구밭이 있다. 달콤한 살구가 잔뜩 열려 있어서 갈증을 풀어 줄 것이다. 기운을 내서 나아가자."  

그 말을 듣자마자 병사들은 입 안에 침이 돌고 기운이 솟아났다. 이렇게 하여 부대는 물이 있는 곳까지 다다를 수가 있었다.  

조조가 부하를 조종하는 교묘함은 대충 이러한 상태였다. 진퇴의 묘수가 비상하다는 것, 비정한 것, 농민을 소중히 여겼다는 것, 용의 주도하다는 것, 임기응변의 묘, ... 이런 점에서도 조조와 모택동은 닮아 있다.  

모택동은 철저한 실리주의자로, 흥정을 하는 데에 능숙하며 손해를 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는 사전에 충분히 조사를 하고, 주도 면밀하게 준비를 한 다음에 행동으로 옮긴다. 이 점은 그이 저서인 '중국 혁명 전쟁의 전략문제'에서 다시금 주장되고 있는 일이다. 또, 모택동이 부하를 조정하는 술수는 교묘하기는 하지만, 뷰티부르조와적인 온정은 추호도 없다.

아무리 충실한 부하라도 때로는 서슴없이 잘라버린다. 1930년 12월에 일어난 '부전사건'으로 이립삼 계열의 당원 4천여 명을 처형한 것이나 (역주;1928년~30년 이립삼이 중국 공산당의 실권을 장악하고 극좌 모험주의 정책을 취한 것이 비판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심복이었던 유소기, 팽덕회, 주은래, 임표, 주덕, 등소평 등등, 많은 장정의 동지들에 대한 냉정한 처사 등은 그 좋은 예이다.

그 위에 모택동의 정책은 때에 따라 좌우로 크게 흔들리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경우, 무원칙하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객관적인 정세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고 있다. 그가 출석한 중경 교섭에서의 천변만화하는 흥정은 바로 모택동식 임기응변의 모습을 충분히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 있어서 조조나 모택동과 같은 비정한 리더는 찾아볼수 없다.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우던 일본의 마스시타 코노스케(松下行之助)는 전에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일단 유사시에는 아끼는 부하를 해고할 수 있는 것이 참다운 의미의 훌륭한 경영자이다."  

대부분 조조나 모택동과 같은 비정한 리더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고, 오히려 의리와 인정을 주로 생각하는 온정주의 쪽이 우선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비지니스계에서 어려운 경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이처럼 온정이 넘치는 경영방식 만으로는 앞으로의 시대를 혜쳐 나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을 삼국지의 조조, 손권, 유비를 통해 알아본다. 여기에 잇는 자료는 "삼국지를 읽으면 사람이 보인다 (松本一男 지음, 이주영 옮김, 이목출판, 1995년 12월 10일 초판발행, 6,000원)" 에 나오는 자료로서 독자 여러분들은 이 책을 한권 구입하여 자기의 가까운 곳에 놓아 두고 자주 읽어 봄으로써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을 익히기 바랍니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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