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흠(華歆) 자어(子魚) 157~231 평원군 고당
  
▶ 위의 상서령에 올랐다. 오(吳)의 신하였으나 위에 사신으로 간 후 조조(曹操)의 문사가 되었다. 복황후, 헌제 폐위사건 때 등장하며 헌제의 양위에 압력을 가한 인물로 '정사'와 '연의'에서 평가가 다른 인물이다.

▶ 조조의 막하의 문신(文臣). 평원 고당(平原 高唐) 사람. 본시 예장군(豫章郡) 태수였으나, 우번(虞飜)의 권고로 동오(東吳)의 산하에 들었다. 조조에게도 신임이 두터웠던 때문에 동오의 사신으로 갔다가 눌러앉아 벼슬하였다. 젊어서부터 문장으로 이름이 있었으나 조조가 복황후(伏皇后)를 잡아내 죽일 때 손수 황후의 밀실을 습격하여, 머리채를 거머잡고 끌어내는 등 신하로서 못할 짓을 한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았다.

끝내는 미리 조칙(詔勅)을 초하여 가지고 선위(禪位)하기를 황제에게 강요하였다. 벼슬이 태위(太尉)에 이르렀으며 병으로 죽었다.

▶ 출신지 : 평원군 고당현, 직위 : 상서랑 - 의랑 - 태위

영제 사후 정태, 순유 등과 함께 하진에게 초빙되어 상서랑에 임명된다. 그후 동탁, 원술, 마일제를 거쳐 손책을 섬긴다. 손책이 죽은 후 조조의 추천으로 헌제의 소명을 받는다. 손권은 넘겨주고 싶지 않았으나, 화흠이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고 설득했기 때문에 쾌히 보내주었다.

위 건국 때에는 어사대부에 임명되고, 문제가 즉위하자 사도로 승진한다. 평소 청빈한 생활을 하고, 봉록과 하사품을 친척과 친우들에게 나누어줘 집안에 재산을 축적하지 않았다. 하사받은 여자 노예조차도 모두 신분을 해방시켜 시집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명제가 즉위하자 태위가 되고, 231년 75세로 사망. 경후라는 시호가 내려진다.

<연의>에서는 <정사>의 인물상과 정반대로 출세를 위해 서라면 어떤 일이든 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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