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처세술] 공명이기에 할 수 있는 공성지계  

어째서 소수 정예의 조직을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제1차 기산 원정에서 실패하고, 가장 아끼던 부하 마속을 잃은 후, 공명은 잠시 한중에서 부대를 정비하는 데에 노력을 쏟았다.  

공명은 패전의 원인을 분석하였다. 병력, 장비, 훈련도라는 측면에서는 촉군 쪽이 우수했는데도 패퇴한 것은, 가정에서의 실패라는 국지적인 전투의 성패뿐만이 아니라, 총대장인 자신이 군대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여, 모처럼의 대군을 유효하게 운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원정을 함에 있어서는 쓸데없이 대군을 동원하기보다는 소수 정예의 기동부대를 구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공명은 특수 훈련을 쌓은 부대를 조직하였다.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레인저 부대이다. 그리고 이 정예 부대의 지휘관에는 공명의 뒤를 이어, 촉나라의 최고 사령관이 된 용맹한 장수 강유를 임명하였다.  

그해 가을, 위나라의 형주 방면 사령관인 조휴가 오나라의 육손과 싸워 참패를 당하고 조휴까지도 전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좋아한 것은 오나라의 손권이었다. 즉시 유선에게 서신을 보내와, 자기네 군대의 대승을 선전하는 동시에 촉나라에서도 위나라를 공격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한중에서 이 정보를 얻은 공명은, 당장에 성도으 유선에게 출진의 상주문을 보냈다. 이것이 세칭 '후 출사표'이다. 이 상주문에서 공명은, 당시 촉나라 국내에서 번지고 있던 원정 반대론을 비판하고, 지금이야말로 선왕 이래의 숙적인 위나라를 쳐야만 할 때라고 역설하였ㄷ라. 공명에게 머리를 못 드는 유선이 반대할 리가 없다. 출진은 곧 허락되었다. 이렇게 해서, 공명은 세번째로 기산에 진주하게 된다.  

건흥 7년(229년), 공명은 10만의 정예부대를 거느리고, 위나라 영토로 진공하였다. 국경의 방위선을 간단히 돌파한 촉군은, 거기서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주력 부대는 강유를 지휘관으로 하여 기산으로 향하고, 공명은 5천의 별동대를 인솔하여 양평관으로 진주하였다. 거기는 장안으로 가는 지름길을 억누르는 요충지로, 위나라 군대의 동태를 살피기 좋은 곳이었다.  

공명이 또다시 진격해 왔다는 소식을 듣자, 위나라에서는 방위사령관을 다시 사마중달로 바꾸었다. 공명은 오나라의 육손과는 다르다. 일찌감치 총력을 기울여 두들겨 놓지 않으면, 장안은 물론이고 도읍인 낙양까지 위협을 받게 되었다.  

명제의 신뢰와 백성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게 된 사마중달은 불과 3일만에 출진 준비를 갖추고 곧 전선으로 향했다.  

출진함에 있어서 사마중달은 촉군의 진격 상황의 정보를 세밀히 분석했다.  

분명히 적은 기산을 돌아 장안으로 쇄도해올 작전인 모양이다. 기산에서 위수를 건너는데 성공한다면, 나중에는 무인지경을 가듯이 곧장 장안으로 들이닥칠 수가 있다. 따라서 요격하는 위나라 병력은, 위수의 남쪽 연안에 진을 치고 물가에서 적을 공격하는 방법이 가장 좋을 것이다.  

거기까지 계산하고 나서, 사마중달은 팔짱을 끼고서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가만...'  

전선에서 들어온 정보 중의 하나에, 촉군의 소수 부대가 양평관을 점령했다는 것이다. 사마중달은 이 정보에 구애받고 있었다.  

이 별동대는 분명히 정찰과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 부대로서, 절대 주력 부대가 아닐 것이다. 혹은 속임수일지도 모른다. 촉군의 장군 가운데에서도 신진이며 감각이 날카로운 강유는, 특히 야전에 능통한 사람이다. 전술적인 밀고 당김은 당대에 드물게 보는 용장이며, 공격부대의 지휘관으로서는 다시 없는 인물이다. 강유는 양평관에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공명은 정보 수집을 중시한다. 평범한 총사령관 같으면 주력 부대에 있겠지만, 그 사람은..., 여기까지 생각하자, 사마중달은 손으로 무릎을 쳤다.  

'공명이란 작자는 필시 양평관에 있을 것이다.'  

사마중달은 전 부대를 동원하여, 양평관으로 급히 달려갔다. 막료가,  

"사령관님 위험합니다. 양평관에 있는 적은 우리를 유도하기 위한 속임수일지도 모릅니다."  

"속임수라도 상관없다. 제갈량만 처치하면, 그 후에도 두려울 것이 없다."  

"그렇지만 과연 제갈량이 양평관에 있을지, 그것도 알 수 없습니다."  

"아니다. 반드시 있다."  

사마중달은 부하의 반대를 물리쳤다.


'공성지계'-어떠한 난국도 임기응변에 따라 극복할 수 있다  

열흘 후, 사마중달이 이끄는 위나라의 대군이 양평관으로 밀려들었다. 그 도착 직전에 정찰대로부터 위나라의 병력이 전방 2킬로 지점에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공명에게는 그것이 위나라 군대의 주력 부대라고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공격군의 주력이 기산에 있다는데, 방위군의 주력이 이곳으로 올 리가 없다. 정찰병이 적의 병력을 과대하게 본 것일 게다.'  

그러나 계속하여 들어오는 보고는 똑같은 것이었다.  

"분명히 위나라 군대의 주력 부대이며, 구름 같은 대군입니다. 동그라미 안에 '毅'라고 쓰인 깃발을 든 기마부대가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동그라미에 '의'라는 글자가 쓰인 깃발이라면, 사마중달의 친위대가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공명은 사태의 중대성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사마중달이 손수 출동한 것으로 보아 적의 병력은 수 만이 넘을 것이었다. 이쪽은 비전투원을 합해도 5천이 안되고, 기산의 본대에 지원군을 요청한다 해도 급한 상황이라 제때에 맞추어 질 수가 없다. 이래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  

"정승님, 중과부적이라 맞수가 안 됩니다. 얼른 철퇴하도록 하시지요."  

하고 막료와 참모들이 떠들었지만 공명은 침착한 목소리로,  

"당황하지 말라. 이제부터는 도망도 갈 수가 없다."  

공명은 성 밖에 있던 모든 부대를 즉시 성 안으로 돌아오도록 하고, 크고 작은 깃발들을 모두 거두어 들이며 성문과 망루에 있던 병사들을 내려오도록 하였다. 사방의 성문을 활짝 열어 놓고, 도로를 깨끗이 청소하였다.  

이윽고 저 앞쪽의 길에 위나라의 기병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공명은 성문 위에서, 좌우에 시동을 거느리고 앉아 유유히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성문이 보이는 곳까지 달려온 사마중달은, 이 이상한 마중 광경에 깜짝 놀라 병력을 멈추게 하였다.  

"아버님, 성문 위에서 거문고를 타고 있는 자는 분명히 공명이올시다. 저자는 어차피 이길 수 없는 것으로 각오를 한 것일까요."  

하고 옆에 있던 차남인 사마소가 하는 말을 들으며,  

"음..."  

하고 사마중달은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공명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아니다. 제갈량은 무의미한 짓은 하지 않는 사람이다. 성을 빈 집처럼 하고 있지만, 반드시 어떤 복병이 숨어있음에 틀림없다. 지금은 후퇴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사마중달은 낮은 소리로 아들에게 말하고는 급히 발길을 되돌렸다.  

그날 밤, 촉군은 어둠을 타고 뒷문으로 하여 철퇴하였다.  

이 '공성지계'는 제갈공명과 사마중달이라는, 당대 두 명장의 허허 실실의 밀고 당김으로 유명한 이야기이다. 스토리가 약간 공명을 두둔하고 있는 감이 없지 않으나, 통신 수단이 원시적이며, 정보 수집의 방법이 유치했던 시대의 일이고, 특히 상대가 제갈공명이다 보니, 사마중달로서도 신중한 위에 더욱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전쟁에 오산은 따르게 마련인 것과 진퇴양난에 처했을 때에도, 일군의 우두머리가 된 자는 당황하지 말고, 냉철히 대처하면 반드시 길은 열린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에피소드인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을 삼국지의 조조, 손권, 유비를 통해 알아본다. 여기에 잇는 자료는 "삼국지를 읽으면 사람이 보인다 (松本一男 지음, 이주영 옮김, 이목출판, 1995년 12월 10일 초판발행, 6,000원)" 에 나오는 자료로서 독자 여러분들은 이 책을 한권 구입하여 자기의 가까운 곳에 놓아 두고 자주 읽어 봄으로써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을 익히기 바랍니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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