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처세술] 조조의 최후  

끝없는 욕망을 어디에서 누르는가  

적벽의 전투가 끝난 지 수 년, 천하의 형세는 점차 굳어져 갔다. 오나라의 손권은 양자강 이남을 완전히 제압하여, 서쪽의 동정호에서 동쪽의 동지나해, 북쪽의 양자강에서 남쪽의 민(복건)과 월(광동)에 까지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손에 넣어, 판도의 크기에 있어서는 위나라와 견줄 정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한편, 유비는 위나라와 오나라의 틈을 겨냥하여 장강 상류로 진출해서 촉(사천)을 근거지로 삼고 있었다.  

어느덧 오나라와 촉나라의 동맹관계는 깨어지고, 두 나라는 호북성의 형주 부근에서 세력 다툼을 하느라, 작은 충돌을 거듭하고 있었다. 유비는 형주의 수비를 관우에게 맡기고, 자신은 제갈공명 등과 함께 사천성의 중심지인 익주(성도)에 본진을 두었다.  

촉나라와 위나라가 세력을 경합한 지역은, 하남성 남서부, 사천성 동북부, 감숙성 남부에 걸치는 광대한 범위이다. 이곳은 진나라 말기와 한나라 초기에는 중원이라 불리웠던 지역이며, 이곳을 제압하는 자가 천하를 제압한다고 하였다. 중원의 중심지가 한중(漢中)이다. 그 당시 한중에 있었던 자가 장로라고 하는 토착민의 군벌이었다.  

건안 20년(215), 조조는 손수 군대를 이끌고, 한중으로 출격하여 장로의 군대를 무찌르고, 그 여세를 몰아 촉나라의 제일선 부대를 격파하였다. 한중을 점령하는 이 전투에서, 참모로서 급속도로 두각을 나타낸 것이 성을 사마라고 하며, 이름은 의, 자를 중달이라고 하는 젊은 무장이다.  

사마의는 하남성 온현 출신의 뛰어난 인재였다. 그는 처음에 지방의 관리였는데, 인재를 초치하는 데에 열성적인 조조에게 발굴되었다. 위나라에서는 우선 태자인 조비의 무관이 되고, 그 후 조조의 막료가 된 사람이다.  

한중에서 대승리를 거둔 때를 이용하여 사마의는 조조에게 진언하였다.  

"장군님, 지금 촉군은 몽땅 무너져서 익주로 퇴각하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타서 진격하시면, 숙적인 유비의 숨통을 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익주를 공격할 명령을 내려주기 바랍니다."  

조조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사람이란 만족함을 모른다. 이미 감숙을 손에 넣었는데, 또 촉까지 욕심을 내는가."  

인간의 욕망에는 끝이 없지만, 이번에는 무리하지 않는 편이 좋으리라는 것이었다.  

이렇듯 젊은 사마의를 억제시키는 조조에게서 역사는 그의 원숙미와 노경을 보여주고 있다.


장례식이 끝나는 대로 상복을 벗어라  

건안 25년(220)의 정월, 조조는 전선을 시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옛 도읍지인 낙양에서 병이 들어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병상에서 조조는 각지에 포고문을 돌려서 명의를 찾도록 하였다.  

그런 가운데, 금성 출신의 화타라는 유명한 의사가 있었다. 당대 제일의 국수(國手 이름난 의사)라는 평판을 듣고 있던 화타는 조조의 맥을 짚어보더니,  
"유감스럽습니다마는 대왕님의 병세는 어떤 약을 써도 소용이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약으로 치유되지 않는다고?"  

조조는 병상에서 허덕이며,  

"그대는 천하에서 제일가는 명의라고 하는 사람이 아닌가. 무슨 수가 없겠는가."  

"있습니다. 우선 마취약을 드신 후에, 예리한 작은 칼로 머리를 절개하여 깨끗이 씻어 냅니다. 그렇게 하면 병은 열흘이면 완치되겠습니다."  

"뭐라고, 너는 나를 죽일 작정이냐!"  

"당치도 않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소인은 전에 관우 장군의 오른쪽 팔의 뼈를 깍아내고 독이 묻은 화살촉을 적출해 내어서 고쳐드린 일이 있습니다. 그와 비교하면 대왕님의 병은 가벼운 편입니다. 소인에게 맡겨 주십시오."  

"팔은 절개해도 목숨에 관계가 없지만, 머리는 그렇지가 않다. 그러고 보니 너는 촉나라에서 파견된 첩자로구나."  

조조는 대단히 화가 나서 화타를 죽여 버렸다.  

화타는 실재했던 인물이며, 자는 원화이고, 한방 의학의 원조라고 불리우는 명의이다. 이 일화의 진위는 고사하더라도 (화타에게 진찰을 받았던 것은 훨씬 전의 일이라는 설도 있다.) 중국에서는 2천여 년이나 전에, 이미 외과적인 수술과 마취가 행하여 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서 약을 쓴 보람도 없이, 조조는 낙양에서 객사하였다.  

"천하는 아직도 평정되지 않았는데, 여기서 쓰러지다니 애가 끊어지는 심정이다. 이것도 천명이겠지. 나의 장례식은 되도록 간소하게 하여, 요란스레 야단을 떨지 않도록 하라. 입관을 시킬 때에는 군복을 입혀주기를 바란다. 절대로 용포(황제의 옷)를 입히지 말고, 금은보화를 함께 넣지 않도록 하라. 매장이 끝나는 대로 군대는 상복을 벗고, 갑옷과 투구로 차림을 갖추어, 적의 침공에 대비하라. 전체 장수, 병사, 관리들은 평화로운 시대에도 전쟁의 대비를 소홀히 하지 마라. 또 생전에 내가 한 말을 한 마디도 잊지 말고 준수하라. 나는 하늘에 있으며, 항상 너희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리라."  

라고 유언을 하고 있다.  

임종을 할 때에는 평소 소중히 여기고 있었던 명향과 옥기류를 시녀들에게 나누어주며,  

"내가 죽은 후에는 이 보물들을 처분하여 바느질이나 하면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도록 하라."  

라고 당부하였다. 향년 66세.  

과연 천하의 패자답게, 그에게 어울리는 조용하고 담담한, 큰사람의 죽음이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을 삼국지의 조조, 손권, 유비를 통해 알아본다. 여기에 잇는 자료는 "삼국지를 읽으면 사람이 보인다 (松本一男 지음, 이주영 옮김, 이목출판, 1995년 12월 10일 초판발행, 6,000원)" 에 나오는 자료로서 독자 여러분들은 이 책을 한권 구입하여 자기의 가까운 곳에 놓아 두고 자주 읽어 봄으로써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을 익히기 바랍니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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