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권처세술] 관우의 장렬한 죽음   전략 방침을 180도 전환할 때  

이윽고 시대는 각 영웅들의 즉위 러시로 돌입한다.  

건안 21년(216년), 조조는 위나라의 무왕이 되었다.  
건안 24년(219년), 유비는 촉나라의 한중왕을 칭하였다.  
건안 25년(220년), 헌제는 선양의 형태로 제위를 조비에게 물려줌으로써, 4백 여년을 이어온 한나라 왕조는 멸망하고 말았다. 조비는 위왕조의 문제라고 창하고 연호를 황초로 고침과 동시에 망부인 조조에게 위나라의 무제라는 시호를 부쳤다.  

건안 26년(221년), 한나라 왕조가 멸망하고, 조비가 즉위하여 문제라고 칭한 데에 자극을 받아, 유비는 성도에서 황제 즉위의 전례를 올리고 한나라의 전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하였다. 장남인 유선을 황태자로 지명하고, 연호를 장무로 고쳤으며, 유비는 소열제라고 칭하였다.  

위나라와 촉나라가 각각 독립해서 그 우두머리가 즉위하여, 황제가된 것을 보고, 오나라에서도 손권이 제위에 오르도록 청하는 하부에서의 요망이 일어났다. 229년 손권은 제위에 오르고 대제라고 칭하였다. 즉위를 한 것은 가장 늦었으나, 손권의 재위기간이 23년간으로 가장 길었다.  

유비가 천부에 신천지를 구한 이후, 형주는 줄곧 관우가 지키고 있었다. 관우는 결국 8년여나 형주의 수비 사령관으로서 버티고 있었으며, 그 세력은 오나라에게 있어서나 또 위나라에게 있어서나 무시할 수 없게끔 되어져 있었다. 건안 22년(217년)에는 오나라의 전선 사령관인 노숙이 병사하고, 관우의 존재는 손권에게 있어서 더욱더 두통거리가 되었다.  

노숙의 후임으로 손권은 여몽을 임명하여 육구에 주둔시켰다. 전임자였던 노숙은 관우와 친교도 나누며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오히려 함께 협력하여 북방의 조조에게 대항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임 사령관은 생각이 달랐다. 이제 오나라의 첫째로 꼽히는 전략가가 된 여몽은 이렇게 상신했다.  

"관우는 둘도 없는 용장이며, 더욱이 영토 확장주의자입니다. 한편 조조도 천하의 효웅이오나, 그는 적벽에서의 패전 이래, 군대를 재건하는 데에 정신을 빼앗겨 지금 당장 장강 연안까지 남하해 올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이 기회에 조조와 손을 잡아 남북에서 관우에게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군사와 외교 방침의 180도 대전환이었다.  

건안 24년(219년), 관우는 3만의 병력을 이끌고 하구에서 북상하여 위나라 영내로 침입해, 조인이 지키고 있는 번성을 공략하려 노리고 있었다. 허도의 조조는 당황하여 우금에게 병력을 주어 구원병으로 보냈다. 관우는 북벌에 즈음하여, 남방에 있는 오나라의 태도를 경계하여 병력의 일부를 하구에 남겨둘 작정이었다.  

이것을 알아챈 여몽은 손권에게 전선 사령관의 교체를 제기하였다.  

"관우는 우리 군대를 경계하느라 다수의 경비 부대를 남길 작정으로 있습니다. 이 기회에 나는 병을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전선 사령관을 사임한 것으로 합니다. 관우는 단순한 사람이므로 제가 없으면 안심이라고 생각하여, 경비부대를 남겨두지 않고 전체 병력을 투입하여 북방정벌에 나설 것입니다. 그때에 이쪽에서 총동원하여 급속히 장강을 건너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오나라와 위나라가 남북에서 협공하면 승리는 틀림없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손권은 걱정스레 물었다.  

"그대 대신에 전선에서 군대를 지휘하여 관우와 맞겨룰 장수가 있겠는가?"  

그러자 여몽은 주저하지 않고, 젊은 무장 육손을 추천하였다. 그 이유로서,  

1. 육손은 이름이 알령져 있지 않으니 관우가 경계하지 않을 것이다.  
2. 육손은 작전상의 통찰력이 깊으므로 중임을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이다.  
3. 육손은 성격이 온화하지만, 부내의 지도력이 우수하다.  

는 등의 점을 들었다.  

육손은 손권과 인척 관계도 되며, 아직 젊어서 국외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국내에서는 그의 능력이 높이 평가되고 있었다. 손권은 여몽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육손을 후임의 전선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충신은 불사이군 - 어째서 관우는 무신이라 계속 불리우고 있는가

한편 관우 쪽에서는 여몽이 건업으로 돌아갔다는 일이 알려지자, 완전히 안심하고 당초의 계획을 변경하여 경비 부대도 남기지 않은 채, 북으로 대거 진출하였다.  

때마침 가을의 강우기에 들어서 장마가 계속되었다. 관우군은 번성을 포위하고 물로 공략을 하며 위나라의 군대를 괴롭히고 있었다. 우금이라는 장군은 장료, 하후돈, 악진 등과 함께, 조조의 신임이 두터운 노련한 장군이었으나, 홍수와 성 안의 전염병 발생으로 말미암아 뜻대로 전투를 계속하지 못하고 드디어 관우에게 투항하고 말았다.  

번성을 빼앗긴 것은 위나라로서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관우가 수행하는 질풍 신뢰의 작전 상황을 보아,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이 있는 허도도 위험하겠다고 걱정한 조조는 도읍을 낙양으로 옮길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사마중달의 반대로 중지하고, 그 대신에 사신을 오나라로 파견하여 손권에게 남쪽으로부터 출병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손권은 여몽에게 출병을 명령하였다. 신병으로 인해 은퇴한 것으로 되어 있던 여몽은, 3만의 정병을 인솔하고 전선인 육구에 도착하자, 육손과 협력하여 장강을 건너 병력이 적은 형주의 남부를 제압하였다. 그리고 관우의 가족이 살고 있는 성인 남군을 점령하고 그 가족들을 포로로 삼았다.  

사태가 급변한 것을 알고 깜짝 놀란 관우는 번성에서 철수하여, 곧바로 남하해서 남군으로 향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위나라 군대의 장군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서황에게 추격하도록 하였다.  

위와 오, 양쪽 군대로부터 남북에서 협공을 당하는 형태가 돼버린 관우군은 남군으로 입성하려던 것을 단념하고, 그 서부인 맥성에 진을 쳤다.  

보름 후, 맥성은 위와 오나라의 양쪽 군대에게 이중, 삼중으로 포위되었다. 작은 성이라서 양식도 떨어지고, 지원군이 올 전망도 없었다. 이대로 수수방관만 하며 죽음을 기다리기보다는, 깨뜨리고 나가서 피로 물든 길이라도 열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 관우는 각오하였다. 때마침 막료인 주창과 아들인 관평이 장강으로 빠져나가는 샛길을 발견하고, 관우에게 그곳을 통하여 도망가서 권토중래(捲土重來 한번 패했다가 세력을 회복하여 다시 쳐들어옴)를 기할 것을 권하였다. 그러자 관우는,  

"대장부라는 자가 샛길로 살금살금 도망쳐 가는 야비한 짓을 해서야 되겠는가. 이렇게 된 이상은 정문으로 당당히 나아가 싸울 뿐이다."  

라며 거절하였다.  

다음 날, 불과 2백의 기마병을 이끌고 나선 관우 부자는 오나라 군대의 번장이 이끄는 병력에게 말과 함께 붙잡히어 손권 앞으로 끌려 나갔다.  

손권은 관우의 무술과 용맹을 아깝게 생각하여 항복할 것을 권했다. 그러자 관우는 가슴을 펴고 대답하였다.  

"나는 유황숙님과 도원에서 결의를 맺은 이후, 그 분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몸이다. 잔소리말고 죽여라!"  

손권은 그래도 설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막료들이 입을 모아 반대하였다.  

"늑대는 절대로 사육해서 길들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조조도 이 사람을 체포했을 때 죽이지 않았었기 때문에 극심한 일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관우는 늑대와 같습니다. 살려 두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이리하여 관우 부자는 침착한 태도로 죽음에 임하였다. 손권은 관우의 목을 조조에게 보냈고, 시신은 제후의 예를 갖추어 정중히 매장하였다. 건안 25년(220년) 정월, 조조는 낙양에서 관우의 목을 인수하였다. 생각 탓인지 관우의 목은 조조를 향해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였다. 그 보름 후인 정월 23일에 조조가 죽었다.  

관우는 58세로 떠났는데, 그의 생애는 전부가 유비를 위해 바쳐진 것이었다.  

'충신은 불사이군'이라는 삶은 한편에서는 무사도의 도덕이지만, 중국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다. 중국의 역대, 특히 전란 시대의 무인들은, 포로가 되어 상대가 섬길만한 인물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두 군주라도 섬기고 있다. 그런 속에서 끝내 의리를 지킨 관우의 생애는 한층더 빛이 나는 것이다. 관우가 지금도 '관제사당'에 모셔지고 있고, 무예의 신, 상업의 신으로서 숭배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을 삼국지의 조조, 손권, 유비를 통해 알아본다. 여기에 잇는 자료는 "삼국지를 읽으면 사람이 보인다 (松本一男 지음, 이주영 옮김, 이목출판, 1995년 12월 10일 초판발행, 6,000원)" 에 나오는 자료로서 독자 여러분들은 이 책을 한권 구입하여 자기의 가까운 곳에 놓아 두고 자주 읽어 봄으로써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을 익히기 바랍니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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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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