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권처세술] 작은 패왕 손책  

죽마고우야말로 진짜 보배이다  

자신의 힘을 과신하고, 저돌적으로 맹진했다가 요절한 손견에게는 네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당시 특히 유명한 것이 장남인 손책과 차남인 손권이었다.  

손책의 자는 백부, 부친인 손견이 황건적을 토벌하기 위하여 출정했을 때에, 겨우 열 살이었던 손책은, 모친과 함께 서현으로 이사를 가서 우연히 그 지방의 호족인 주씨네 곁에 살게 되었다. 주씨네 집에는 같은 나이의 주유(周瑜)가 살고 있었다. 거기서 두 소년은 죽마고우가 되었다. 훗날, 손책이 죽은 후에는 손권의 군사(軍師)로써, 일생을 손씨 형제를 위하여 전력을 다했다.  

부친 손견이 뜻하지 않은 죽음을 당했을 때, 손책은 18세의 훌륭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고향인 곡아에 부친의 뼈를 묻은 후, 손책은 단신으로 장강을 건너 부친의 친구인 원술에게로 가서 몸을 의탁하였다.  

용감성이 평가를 받아 일꾼의 우두머리로 발탁되었지만, 결국은 식객 신세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원술은 도량이 좁은 사람이라. 옛 친구의 아들이라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식객 신세라도 고맙게 생각하라'는 듯이 손책을 턱짓으로 부리고 있었다.  

손책은 번민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날,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달이 밝은 안뜰에서 산책을 하던 손책이 편편차 못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을 때 뒤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 왔다.  

"도련님, 어쩐 일이십니까."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의 옛 부하로서 지금은 원술을 섬기고 있는 정보(程普)였다.  

"내가 변변치 못한 탓으로, 아버지의 뜻을 계승하지 못하고 남의 나라에서 식객 노릇이나 하고 있는 것이 한탄스럽구나."  

부친 손견의 사천왕의 하나로 손꼽히던 정보는 목소리를 낮추면서,  

"그러시다면 원술님에게서 병마를 빌려, 강남으로 진군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미흡하나마 불초 정보도 달려가겠습니다. 선친님의 부하도 꽤 있으니, 그들도 주인댁을 다시 부흥시키는 일을 위해서라면 달려올 것입니다."  

손책은 충신 정보의 말에 감격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저 인색한 원술이 쉽사리 병마를 빌려주겠느냐고 걱정하였다. 원술을 납득시킬 조건이 없겠는가 하고, 여러 가지로 생각하던 손책은 무릎을 딱 쳤다.  

"그렇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겨주신 '전국의 옥쇄'를 맡기기로 하자."  

"그것 참 좋은 생각이올시다. 그러나 원술은 교활한 인간이니까 어지간히 단단한 약속을 받지 않으면, 훗날 돌려받지 못할 염려가 있습니다."  

하고 정보가 걱정스러워 하고 있었는데, 젊은 손책은,  

"원술님도 일국의 주군인데, 아직 젊은 나를 속이지는 않을 게요."  

하며 전적으로 안심하고 있었다.  

다음날, 손책이 부탁을 하러가자 과연 원술은 싱글벙글하며 좋아 하였다.  

"그 유명한 물건을 지니고 있었는 줄 몰랐네. 나는 별로 가지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까지 말한다면 잠시 맡아 두겠네. 병사 3천과 말 5백 필을 빌려줄 테니, 그것들을 이끌고 강남으로 돌아가게. 돌아가신 아버님의 뜻을 이어 독립하는 날에는 빌려준 병마와 교환으로 옥쇄를 돌려 주겠네."  

이리하여 손책은 밀려받은 군병력을 이끌고 정보, 황개, 한당, 주치, 여범 등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부하들을 데리고 장강을 건넜다.  

마침 그 무렵, 어릴 때의 친구인 주유가, 그의 숙부인 주상이 단양의 태수가 되었으므로, 양자강 남쪽 연안인 단양에 머물고 있었다. 이웃 마을까지 진군해온 손책은 주유에게 편지를 보내어 사정을 설명하였다. 주유는 즉시 부하들을 데리고 손책을 마중하러 왔다.  

손책은 대단히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자네가 있으면, 나에게는 범에 날개를 다는 격이네."  

이리하여 손책은 주유의 협력을 얻어, 남쪽 연안의 각 도시를 하나하나 점령하여, 드디어 고향인 곡아로 입성하였다.  

이와같이 주유는 손책의 오른팔로써, 오나라의 창건에 큰 공을 세웠다. 그 후, 손책과 주유는 이교(以橋)라고 하는 유명한 자매를 아내로 맞이하여 동서지간이 되었다.


무엇이 보배인지 항상 자문하라  

장남인 손책은 아버지를 닮아 용맹스러웠다. 무사 가문의 큰 아들이므로 어려서부터 무예 십팔기에 관하여 철저한 가르침을 받았다. 강남 사람으로서는 드물게 7척이 넘는 큰 체격의 사나이로, 검술과 완력은 아버지 이상으로 강했다.  

우저성의 태수 유요를 공략했을 때의 일이다. 손책은 성문 가까이까지 말을 몰고 가서 큰 소리로 도전하였다.  

"강동의 손책이 여기 와 있다. 내로라 하는 자는 나오라!"  

즉시 성문에서 기마대가 뛰쳐나왔다. 도전에 응한 것은 우미라고 하는, 오랑캐 출신의 몸이 새카만 무술가였다. 손책은 상대에게 부딪힐 정도로 접근하자, 우미가 내미는 창을 잡아 끌었다. 그 강한 힘에 우미는 말에 탄 채로 끌려왔다. 손책은 말에 걸터서서 마치 무우라도 뽑아내듯이 적을 부둥켜 안고 그대로 말을 달렸다. 이것을 본 적의 진영에서 또 하나의 기마병이 등 뒤로 다가서서 커다란 쌍날을 가진 창을 내동댕이 치듯이 던졌다. '이젠 즉사로구나?..'  

가까이에 있던 손책의 부하는 엉겁결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과연 무예의 달인인 손책은 무난히 쌍날창을 피하며, 왼손에 잡고 있던 창으로 적장을 단숨에 찔러 죽여 버렸다. 번능이라는 무예가였다.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와서, 옆구리에 끼고 있던 우미를 땅바닥에 내동대이 치고 보니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불과 몇 분 사이에 한 사람은 목을 조여 죽이고, 한 사람은 창으로 찔러 죽인 것이었다. 우미도 번능도 이름난 무예가였었다.  

이어서 손책은 성 안으로 돌격하여, 강남에서는 비할 데가 없다는 적장 태사자(太史慈)를 생포하였다. 이 싸움으로 유요는 멸망하고, 태사자는 손책에게 항복하여 부하가 되었다.  

이리하여 손책은 강남의 주요 도시를 공략했는데, 그가 너무 강하였으므로 어느덧 '강남의 작은 패왕'이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 패왕이란 유방과 천하를 다투었던 초나라의 항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고대의 중국에서는 가장 유명한 용사로서, 그 힘은 산을 움직이고, 그 기백은 천하를 삼킨다고 칭송되었었다. 손책은 발산개세(拔山蓋世)의 용기를 가진 '초나라의 패왕'에 다음가는 호걸이라는 찬양을 들었던 셈이다.  

차남인 손권, 자는 중모이며, 형인 손책보다 일곱 살이 아래이다. 형인 손책은 체격이 크고 미남자였으나, 동생인 손권은 중간 키에 살이 알맞게 찌고, 턱이 네모지며 큰 입에 형형한 안광으로 보기만 해도 의지가 강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손권이 출생하였을 때, 부친 손견은,  

"이 녀석은 고귀한 생김새를 하고 있다. 장래에 큰 인물이 되겠구나."  

하고 기뻐하였다고 한다.  

어느날, 한나라 왕실의 칙사가 찾아왔다. 그때, 칙사인 유원은 따라온 부하에게 이렇게 감상을 말하였다.  

"손씨 집안의 네 아들들은 제각기 훌륭하게 생각되는데, 관상학적으로 헤아려 보응 한, 다소 운이 부족해 보인다. 다만 차남인 손권만은 예외이다. 그 아이는 얼굴 모양, 골격, 전체적인 분위기 등등, 보통 사람이 아니다. 왕위에 오를 관상이다. 수명도 제일 길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차치하더라도 그 아이만큼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손권은 무예 중에서 실기보다는 이론적인 병법에 능했다. 무가의 사람치고는 드물게 유학이나 문학을 좋아 했으며, 형과는 달리 만사에 신중하고 남의 의견을 존중하였다.  

형이 강동의 여러 고을을 평정했을 때, 동생은 15세의 나이가 되었으므로 손책은 손권을 자신의 곁에 두었다. 형은 자신과 성격이 다른 동생을 귀여워하며, 일찍부터 후계자로서 생각하고 있었다.  

건국의 대업이 시작되자 손책은 많은 공물과 함께 원술에게서 빌린 3천의 병사와 5백 필의 말을 돌려주면서 맡겨둔 옥쇄의 반환을 요구하였다.  

원술은 오나라의 사신을 일견하고 공물을 받은 후,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전국의 옥쇄? 그것은 너의 주군인 손책이 살려준 사례의 뜻으로 나에게 준 물건이다. 이제 와서 돌려달라니, 억지 트집도 유분수지. 썩 물러가라!"  

하며 사신을 쫓아보냈다. 역시 정보와 사람들이 걱정하던 그대로였던 것이었다. 법률도 없고, 힘 앞에서는 도덕도 무색한 전국시대이다. 이렇게 되고 보면 힘으로 탈환할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원술은 옥쇄를 가지고 있는 것을 구실로, 황제로 부를 것을 참칭하였다. 화가 난 손책은 그 행위를 비난하는 서한을 보내고 원술과의 인연을 끊었다. 마침 북동쪽에서는 조조가, 남동쪽에서는 유비와 여포가 원술과 싸움을 하고 있을 때였으므로, 손책은 주유의 건의에 따라 조조랑 유비와 동맹을 맺고, 남북으로부터 원술을 공격하였다. 원술은 곡창지대인 강북의 대평야를 영유하고, 풍부한 물자와 방대한 병력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싸움은 장기화 되었다. 2년 후, 겨우 조조와 유비에게 멸망되었으며, 대대로 내려오는 전국의 옥쇄는 원술에게서 조조의 손으로 옮겨졌다.  

건안 5년(200년), 조조가 관도의 전투에서 원소와 싸우고 있던 무렵, 손책은 전쟁터에서 자객의 습격을 받아 부상을 당했다. 그 상처는 깊었다. 죽을 때가 임박한 것을 짐작한 손책은 주유, 장초 등 측근을 불러 놓고,  

"지금 북방은 소란한 와중에 있다. 우리 강남은 차지하고 있는 땅의 위치가 유리하고, 군대는 정예함을 자랑하고 있다. 이 두가지 점을 살린다면, 언젠가는 천하를 누릴 수가 있을 것이다. 내가 죽은 후에는 모쪼록 동생을 세워서 돌보아주기 바란다."  

라고 유언을 남기고, 손권에게 인수를 넘겨주면서,  

"군대를 인솔하여 적과 대결하며, 천하를 겨루는 싸움이라면 내가 너보다 나을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신하를 중용하여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며, 나라를 지키는 일에 있어서는 네가 한 수 위이다. 내가 죽은 후에는 주유나 장초 등의 의견을 잘 듣고, 오나라를 잘 다스리도록 하라. 당부한다."  

라고 말하고, 그날 밤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아직 26세의 젊은 나이였다.  

주유와 손권은 손책에게 있어서는 양쪽 팔과 같은 존재였다. 한쪽은 죽마고우인 동시에 같은 자매와 결혼한 동서지간이기도 하고, 한쪽은 피를 나눈 동생이다. 손책이 군사를 일으킨 후,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강남의 각지를 영유하고, 오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주유의 활동이 기여한 바가 크다. 또 지방 정권의 하나에 불과했던 오나라가 이윽고 셋이서 맞서는 삼국의 하나로 성장한 것은, 천재적 전략가인 주유와 수성의 명군인 손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손책은 요절했으나, 훌륭한 가족들이 곁에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일찍부터 이 두사람의 가족을 높이 평가하여 자기의 분신으로서 대접했던 손책도 톱으로서는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을 삼국지의 조조, 손권, 유비를 통해 알아본다. 여기에 잇는 자료는 "삼국지를 읽으면 사람이 보인다 (松本一男 지음, 이주영 옮김, 이목출판, 1995년 12월 10일 초판발행, 6,000원)" 에 나오는 자료로서 독자 여러분들은 이 책을 한권 구입하여 자기의 가까운 곳에 놓아 두고 자주 읽어 봄으로써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을 익히기 바랍니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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