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적 배경(歷史的 背景)
  
▶ 漢 제국의 성립과 발전 (前漢:BC.206-AD.8)

건국 : 농민 출신의 한고조 유방이 건국하여, 군국제 실시를 실시하였으며 피폐해진 백성들을 위해 덕치주의를 채용하였다.

전개 : 유방은 제후세력의 억압 및 군현제실시, 오초 칠국의 난(BC.154)을 평정하여 강력한 황제권을 확립하였다.

무제 : 한무제는 흉노토벌(127년 한의 무제(武帝) 흉노공격을 시작) 등 대외정복을 하였다.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균수법 및·평준법, 염철전매를 실시하여는데 이는 물가 상승과 사회적 불안을 초래하였다. 한대부터 유교정치이념을 확립하였다.<오경박사, 향거리선(鄕擧里選)>, 장건을 파견하여 아시아와 유럽(로마까지)을 잇는 비단길을 개척하였다.

신(新 AD. 8-23: 왕망)

정책: 전 토지를 국유(정전제)로 하였으며, 노비매매를 금지하였다.

결과: 호족세력의 반발과 경제 정책의 실패로 "적미적의 난" 및 민란이 발생하였다. 왕망, 유수(劉秀)에게 패하여 사망. 신(新) 멸망.

후한(後漢 AD. 25-220)

성립: 호족세력의 추대로 광무제 후한의 초대 황제로 즉위(25년)하여 유교정치이념을 확립하였다.

발전 : 왜노국(倭奴國)이 광무제에 조공, 명제 왜노국에 왜노국왕인(倭奴國王印) 하사하였다. 채음 등이 서역에서 중국에 불전을 전래(~67)하여, 중국불교의 전개되었다. 중국 최고(最高)의 자전 《설문해자(說文解字)》 완성, 채륜(蔡倫)이 종이를 발명하였다.

쇠망: 외척과 환관, 관료의 당쟁과 부패로 "당고(黨錮)의 옥(獄)"시작, "황건적의 난" 및 민란이 발생. 호족세력이 발호하여 후한은 춘추전국시대의 혼란기로 접어든다.

후한 말의 상황.

당시 후한 말에는 전형적인 왕조 말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이는 조정의 부패와 황실의 권위 하락, 민란의 발생이다.

후한 말에는 황제의 권위가 환관과 외척에 의해 도전을 받았는데 이는 후한시대에 어린 황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12대 영제가 등극하면서 환관과 외척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전국은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당시 환관과 외척은 어린 황제를 이용해서 많은 부패를 일삼았으며, 나라의 모든 대소사를 그들이 처리하였다.
조정의 타락은 많은 부조리를 양산했으며, 모든 피해와 고통이란 짐은 백성들의 몫이었다. 나라의 근간이 되는 농민은 관리와 조정의 부패로 갈수록 피폐해져갔으며, 이런 조정의 폭압, 폭정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은 자신들의 농지를 버리고 방랑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때에 장각의 태평도는 빠르게 민중속으로 전파되기 시작한다.

장각의 태평도란?

중국에서 후한(後漢) 말기에 생겨난 최초의 도교적(道敎的) 교단(敎團)으로 2세기 전반 우길(于吉)이 창시하고, 후에 그 가르침을 계승한 장각(張角)이, 우길의 저서인 《태평청령서(太平淸領書)》(170권)를 소의(所依) 경전으로 삼고, 병의 치유와 함께 태평세(太平世)의 초래를 교법(敎法)의 중심으로 하였다. 신자에게 신 앞에서 죄를 반성케 하고 참회하게 하며, 영력이 있다는 부록(符짖:符水)을 마시게 한 다음 기도를 하였다.

장각은 포교로 얻은 많은 신자를 조직하여 황허강[黃河] 하류를 중심으로 하는 일대 종교왕국을 이룩하여, 한때는 후한왕조를 위협하는 세력을 과시하였으나, 장각의 죽음과 함께 급속히 세력이 쇠퇴하여 진압되었다. 신자는 황색의 천을 표지로 삼았기 때문에, 이들을 황건(黃巾)의 적(賊)이라 하고, 이들이 일으킨 난을 황건의 난이라고 한다. (두산세계대백과 인용.)

당시 초기 태평도는 민심을 안정시키고, 당시로서는 꿈같은 평등사상을 주장했던 것을 봐서는 태평도가 단순한 신흥 사이비 종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필자의 주.)

후한말 농민의 반란.

후한말 중앙에서의 환관.외척.관료의 대립이 격화되자 농민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에 빈궁농민의 봉기가 끊이지 않았고, 삶의 터전을 버리고 방랑을 하기 시작한 농민들은 장각의 태평도를 만나면서 모이기 시작했다. 조정은 이 모임을 위험한 집단으로 간주해서 탄압하여 해산시키려 하였으나, 굶주린 백성들의 태평도에 대한 믿음은 더욱 견고해졌고 급기야 반권력적 성격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장각은 이러한 농민들을 이용해 자신을 스스로 천공(天公)장군이라 하고, 두 아우를 지공(地公) ·인공(人公) 장군으로 임명한 후 한(漢)나라를 대신하여 제위(帝位)에 오른다고 예언하고 황건을 표지로 거사를 기도하였다.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자 184년 격문을 전교단에 띄워서 36방이 일제히 봉기하였다. 사태가 중대한 데 놀란 조정에서는 권력싸움을 중지하고 무장(武將)을 파견하여 진압하려고 하였다. 장각이 죽자 황건의 주력은 쇠퇴하였으나, 이에 호응하여 각지에 흑산(黑山) ·백파(白派) 등 농민군이 봉기하고, 서북으로부터는 이민족의 침입이 계속되어 후한 통일왕조의 멸망은 재촉되었다.

난세에 떠오른 영웅들.

조조는 황건란(黃巾亂) 평정에 공을 세우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세력확장에 근간이 될 군력을 확충한다. 유비는 황건란(黃巾亂)이 일어나자 무리를 모아 토벌에 참가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그 뒤 서주와 형주, 익주의 목을 거치면서 황제로서의 기틀을 다진다. 손견도 황건의 난에 사공 장온(司空張溫)의 부하로 토벌에 공을 세워 오정후(烏程侯)로 봉해졌고 이어서 동탁(董卓) 토벌의 군사를 일으 키자 원술(袁術)의 부하장수로서 낙양(洛陽)으로 진격하여 동탁이 약탈한 후한 황제(後漢皇帝)의 제릉(諸陵)을 수복하고 우물 속에서 전국새(傳國璽)를 얻었다. 형주목(荊州牧) 유표(劉表)와 싸워 크게 이기는 등.. 후에 손권이 오를 건국할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난세에 이 3영웅들이 등장하여 후세 사람들이 말하는 삼국지가 탄생하게 된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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