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시대 [三國時代]
  
▶ 184년 황건적(黃巾賊)의 난이 일어나자, 후한 왕조의 권위는 붕괴하여 동탁(董卓)이 뤄양[洛陽]으로 입성하여 환관(宦官)을 주멸하고, 황제의 폐위를 감행하려고 하였다. 이 때문에 동탁 토벌의 군이 각지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산둥[山東]에 있던 조조(曹操)도 189년에 군사를 일으켜 황건적을 격파하고 동탁을 토멸하여 후한의 헌제(獻帝)를 옹립해서 기주목사(冀州牧使) 원소(袁紹)와 화북지방을 양분(兩分)하였다. 양자(兩者)는 202년 관도(官渡)에서 자웅을 결하였으나, 이 싸움에서 승리한 조조는 화북지방의 지배권을 거의 확립하였다.

한편, 형주목사(荊州牧使) 유표(劉表)에게 식객(食客)으로 있던 유비(劉備)는, 현신(賢臣) 제갈량(諸葛亮)의 협력을 얻어 형주를 빼앗아 손에 넣고 오(吳)의 손권(孫權)과 동맹하여 조조의 남하를 저지하였으며, 211년에는 익주(益州)를 공략하여 이 지방을 빼앗았다. 그 후 오(吳)의 손권은 유비와 싸워서 형주를 손에 넣었으며, 거의 양쯔강[揚子江]의 중 ·하 유역을 세력하에 두었다. 220년 조조의 아들 조비(曹丕)는 후한의 헌제를 강압하여 제위를 양위케 하고, 뤄양에 도읍하여 위국(魏國)이라 칭했다. 그 전년에 한중왕(漢中王)을 호칭하던 유비는, 한의 정통을 계승한다고 칭하여 성도(成都)에 도읍하고, 한제(漢帝) 또는 촉한제(蜀漢帝)라 칭하였다(221). 손권은 처음에 위의 오왕(吳王)으로 봉해져 있었으나, 222년에는 스스로 연호(年號)를 세우고, 또한 229년 오제(吳帝)의 제위에 올랐기 때문에, 여기에 3국의 분립이 확정되었다.

3국 가운데 화북(華北)에 있던 위는 병호제(兵戶制) ·둔전제(屯田制) ·구품관인법(九品官人法) 등을 실시하여, 군사적 ·경제적 기초를 공고히 함으로써 가장 강력한 국가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촉한은 국토도 좁고 가장 약하였으나, 한의 정통을 계승한 것으로서 중원의 회복을 뜻하여, 수차에 걸쳐 위에 도전하였다. 그 후 위에서는 사마 의(司馬懿)가 중심이 되어 이를 격퇴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사마씨가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으며, 그의 아들 사마 소(司馬昭)는 263년 촉한을 멸망시킨 공적으로 진왕(晉王)에 봉해졌으며, 265년에는 그의 아들 사마 염(司馬炎)이 위제(魏帝)를 강압하여 제위를 양위받고 진(晉)나라를 세웠다. 이 사람이 서진(西晉)의 무제(武帝)이다. 무제는 280년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재차 중국을 통일하였다.


위 [魏]

중국 삼국시대 3국의 하나(225~265).
후한(後漢) 말 당고(黨錮)의 옥, 황건의 난으로 후한의 위세는 땅에 떨어지고, 동탁(董卓)·원소(袁紹)·원술(袁術)·공손 찬(公孫讚) 등 군웅이 각지에 할거하였다. 조조(曹操)도 한 부장(部將)으로서 황건적을 토벌하여 복속시키는 등 점차 세력을 확대하더니, 196년 헌제를 허(許:河南省 許昌縣)에 받들어, 승상(丞相)이 되고 위국공(魏國公)에 봉하여 화북(華北)을 통일하였다.

당시 강남(江南)에는 손권(孫權), 쓰촨[四川]에는 유비(劉備)가 세력을 떨치고 있었으나, 208년 조조가 적벽(赤壁:湖北省 嘉魚縣 西)에서 유·손의 연합군에게 크게 패하자 천하 3분의 형세가 정하여졌다. 216년 조조는 위국왕(魏國王)으로 봉하여졌으나, 220년 조조가 죽자 아들 조비[文帝]는 헌제에게 강요하여 제위를 선양받아, 연호를 황초(黃初)라 하고 뤄양[洛陽]에 도읍하여, 위나라를 세웠다.

조조는 전란과 황폐 속의 중원을 지배하면서, 부국강병을 도모하기 위하여 대규모 둔전제(屯田制)를 실시하고, 징병제(徵兵制)를 대신한 병호제(兵戶制)를 실시하였다. 또한 징세의 단위를 호(戶)로 하는 호조(戶調)를 시작하였고, 인재를 발탁하기 위하여 9품관인법(九品官人法)을 제정하였으나, 실제로는 명문 출신자가 관계(官界)를 독점하였다. 그 중에서도 사마씨(司馬氏)의 세력은 강대하여서, 황제를 폐립(廢立)하기도 하였다. 265년 사마염(司馬炎:武帝)은 위의 선례에 따라 원제(元帝)에게 양위를 강요하여 제위에 올랐으며, 위는 멸망하였다.

촉한 [蜀漢]

중국 삼국시대에 정립(鼎立) 상태에 있던 한 나라(220∼263).

전한(前漢) 경제(景帝)의 후손 현덕(玄德) 유비(劉備)가 촉(蜀:四川省)에다 창건하였다. 정식 명칭은 한(漢). 계한(季漢)이라고도 하며, 촉(蜀)·촉한으로 통칭한다. 후한(後漢) 말 황건적(黃巾賊)의 대반란이 일어나 후한의 권위가 무너지자 군웅할거의 정세는 결정적이 되었다.

형주(荊州) 목사 유표(劉表)의 객장(客將)이던 유비는 유표가 죽은 뒤 그의 아들 종(琮)이 조조(曹操)에게 투항하자, 제갈량(諸葛亮)의 협력을 얻어 천하 '3분의 계(計)'를 세우고 손권(孫權)과 동맹하여 적벽(赤壁) 전투에서 조조를 격파하고 형주의 목사가 되었다. 이리하여 양쯔강[揚子江] 중류 유역을 거의 장악하자, 익주(益州:成都) 목사 유장(劉璋)을 공략하여 스스로 익주 목사가 된 뒤 219년 스스로 한중왕(漢中王)이라 칭하였다.

다음해 조비(曹丕)가 한제(漢帝)의 양위를 받아 제위에 오르자, 221년 유비도 또한 제위에 올라 수도를 청두[成都]로 정하고, 고조(高祖) 이하의 종묘를 세워 한(漢)의 정통성을 명백히 하였다.

다음해 손권도 연호(年號)를 세웠으므로 바야흐로 3국 정립의 형세가 되었다. 그러나 형주의 영유를 둘러싼 촉한·오(吳)의 대립은 해결되지 않았으므로, 유비가 친히 군대를 이끌고 오를 쳤으나 백제성(白帝城)에서 병사하고 말았다. 후사를 위임받은 제갈량은 후주(後主) 유선(劉禪)을 잘 보좌하여, 오나라와의 국교를 회복하고 산업을 장려, 민력을 기른 후 윈난[雲南]·구이저우[貴州]를 토벌하여 이를 개발하는 등 국력을 강화하였다.

동시에 중원(中原)을 회복하고자 자주 북벌을 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234년 우장위안[五丈原]에서 대전중 병사하였다. 그후 장완(蔣琬)·비위(費褘)·강유(姜維) 등이 국정을 담당하였는데, 해마다 일어난 위(魏)와의 전쟁 때문에 환관 황호(黃晧)의 전횡까지 겹쳐, 국력이 쇠퇴하여 263년 위군의 대공격에 유선이 항복함으로써 멸망하였다.


오 [吳]

중국 삼국시대 국명(222∼280).
한말(漢末) 군웅(群雄)의 한 사람인 부춘(富春:浙江省 富陽縣)의 호족(豪族) 손견(孫堅)이 원술(袁術) 밑에서 동탁(董卓)을 토벌하여 세력을 얻고, 그의 맏아들 손책(孫策)은 영자강 동쪽의 여러 군(郡)을 평정하고, 동생 손권(孫權)에 이르러 208년(건안 13) 유비(劉備)와 결탁, 조조(曹操)의 대군을 적벽(赤壁) 싸움에서 크게 무찌른 뒤, 천하를 3분(分)하여 그 하나를 영유하게 되었다. 조조의 아들 조비가 한나라 헌제(獻帝)로부터 제위(帝位)를 양도받아 위(魏)의 황제가 되자 손권도 오왕에 봉해졌으나 222년 스스로 연호를 황무(黃武)라 부르고 229년 위와 촉한(蜀漢)의 싸움이 격화하자 그 틈을 타고 무창(武昌)에서 제위에 올라 국호를 오라 하고 도읍을 말릉(□陵:현재의 南京)으로 옮겨 그곳을 건업(建業)이라 불렀다.

오는 손권 때 위세를 떨쳤으나 그가 죽자 국내의 대성(大姓)들이 서로 싸우고 내란도 자주 일어나 국력이 쇠퇴하였다. 263년 촉한이 위에게 망하고, 위가 진(晉)에게 망하자 진은 대군을 파견하여 오를 공략하였으므로 210년 건업은 함락되고 오는 멸망하였다.

문헌 : 두산세계대백과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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