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식(曹植) 자건(子建) 192~232
  
▶ 조조(曹操)의 네째아들로 재사가 민첩하여 거보 성장(擧步 成章)하여 조칠보(曹七步)라고 불렸다. 조조가 무척이나 아꼈는데 부(賦), 송(頌), 시(詩), 잡론(雜論) 등 백여 편을 남겼다. 진왕(陳王)에 책봉되나 후계자 자리를 다투던 조비(曹丕)와 불화하여 외지로 떠돌아다녔다. 동작대부의 작자로 유명하며 시호는 사(思)이다.

▶ 조조의 세째 아들. 자는 자건(子建). 술을 즐기고 성실치 못하여 아비도 크게 촉망하지 않았다. 아비가 죽었을 때 분상(奔喪)하지 않은 죄로, 조비(曹丕)가 허저(許?)를 보내 잡아 올려 다스릴 때, 현장에서 칠보시(七步詩)를 지어 대답할만큼 형민하였다. 외지로 나돌 다 뜻을 펴지 못한 채 병들어 죽었다.

▶ 출신지 : 패국 초현, 직위 : 평원후 - 안향후 - 진사왕

위나라의 시인. 자는 자건(子建). 안휘성 사람. 조조의 세째 아들이며, 문제 조비의 아우이다.

그들 세 사람을 삼조라 하며, 함께 건안 문학의 중심적 존재로서 중국 문학사상의 주공, 공자라 칭송되었다. 맏형 조비와 태자 계승 문제로 암투를 하다가 29세 때 아버지가 죽고 형이 위의 초대 황제로 즉위한 뒤 시인 정의 등 그의 측근자들은 죽임을 당했고, 그도 평생 정치적 위치가 불우하게 되었다. 그의 재우와 인품을 싫어한 문제에 의하여 그는 거의 해마다 새 봉지로 옮겨 살도록 강요당하였고 엄격한 감시하에 신변의 위험을 느끼며 불우한 나날을 보내다가, 마지막 봉지인 진에서 죽었다. 그는 공융, 진임 등 건안 칠자들과 사귀어 당시의 문학적 중심을 이루었고 오언시를 서정시로서 완성시켜 문학사상 후세에 끼친 영향이 크다. 위, 진을 거쳐 당나라의 두보가 나오기까지 그는 시인의 이상상이기도 하였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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