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엽(劉曄) 자양(子陽) 171~ 회남(淮南) 성덕(成德)사람
  
▶ 위(魏)의 모사로 고양왕 유연의 후예이다. 대홍(大鴻)려, 동향후에 책봉되었으며 시호는 일경(日景)이다. 곽가의 추천으로 조조(曹操)를섬기게 되었으며 좋은 계책을 많이 내놓았는데 원소와의 싸움에서 발석차를 고안해 낸 것도 유엽이었다. 권모술수에 능하고 계략에 밝아 삼대에 걸쳐 조씨의 위를 섬기다 병사했다.

▶ 출신지 : 회남군 성덕현, 직위 : 사공창조연 - 주부 - 태중대부

후한 초대 황제인 광무제의 아들 유연의 후예. 말년에는 군사(軍師)로 알려지지만 젊은 시절에는 모친의 유언으로 측근을 살해하고, 양주의 도적 정보를 참살해 병사를 흡수하는 등 무법자였다.

한 왕실이 점차 쇠퇴해지는 것을 보고 왕족의 후예인 자신이 병사를 갖는 것을 바라지 않고, 노강태수 유훈에게 병사를 맡긴다. 그후 유훈이 손책에게 정벌당하고 조조 밑으로 도망치자 이어 유엽도 조조에게 부름을 받고 사공창조연이 된다. 관도 전투에서는 원소군이 망루에서 공격해오자 발석거(發錫車)로 대항하고, 또 적이 지하도를 파서 진지로 쳐들어오자 땅을 파 수로를 만들어 방어한다. 또한 유엽은 사람을 보는 눈이 뛰어나 맹달이나 공손연이 모반을 일으킬 인물임을 예견했는데, 그의 예측대로였다.

유엽은 한 왕실의 일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조정 안에서는 거의 친교를 갖지 않고 232년 병 때문에 태중대부로 임명된다. 그뒤 2년 정도 대홍로로 있다가 다시 작위를 물려주고 태중대부로 재임 중 사망. 경후라는 시호를 받는다.

▶ 조조 막하의 모사(謨事). 회남 성덕(淮南成德) 사람으로 자는 자양(子陽). 광무황제(光武皇帝)의 적파 자손이라 하며, 곽가(郭嘉)의 천거로 그의 막하에 들었다. 관도(官渡)의 싸움에서는 원소(袁紹)의 토산 위 시렁을 발석거(發石車)를 만들어 쳐 부셨는데, 이에 놀란 적은 벽력거(闢靂車)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또 굴자군(掘子軍)이라고, 터널을 파고 들어오는 것을 깊은 도랑을 파서 저지하였다.

여러 차례 싸움에 공을 세우고, 뒤에 벼슬이 대흥로(大鴻로)에 이르렀으며 병으로 죽었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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