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조, 마침내 여포를 없애다 - 하비성 전투
  
▶  <조조 VS 여포>

조조군 - 조조(曹操), 순유(荀攸), 곽가(郭嘉), 유비(劉備), 장비(張飛), 관우(關羽)
여포군 - 여포(呂布), 진궁(陣宮), 고순(高順), 후성(侯成), 송헌(宋憲), 위속(魏續)

하비성을 둘러싼 정세

삼국시대 당시 서주는 하비군에 포함되어 있었고 서주의 남쪽 교외에 위치한 사수(泗水)와 기수(沂水)가 교차하는 지점에 '하비'라는 곳이 있었다. 하비성은 아마도 그 곳에 있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후한 초평 3년(192) 4월, 동탁은 장안에서 보디가드였던 여포에게 살해당했다. 극악무도한 동탁을 죽인 여포는 그 공적의 용맹성만 본다면 어느곳에 가든지 환영받았을텐데 실제로는 어떤 영주도 상대해 주지 않았다. 의부와 주군을 죽일 정도로 절개가 없어서 각지의 영주들이 모두 다 정나미가 떨어진 것이다.

그러한 여포가 애첩인 초선과 몇 안되는 병사를 이끌고 마지막으로 신세지러 들어간 곳이 유비가 영주로 있던 서주였다. 그런데, 과연 유비답게 이 절개라고는 눈씻고 찾아볼 수 없는 여포에게 서주를 점령당하고는 할 수 없이 허도(許都)에 있는 조조에게 의지하게 된다.

후한의 건안 3년(198), 조조는 수춘(지금의 회남시 부근)에 있는 원술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키고 첫번째로 서주를 점령했다. 그리고 그는 하비성을 본거지로 삼고있는 여포를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렇게 절개없는 남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살려두면 해를 입을 뿐이다.'

원래부터 조조는 여포를 싫어했던 것이다.

당시에 여포는 하비성에 가족을 두고 본거지로 삼았다. 하비성은 사수를 요충지로 끼고있어 공격하기 어렵고 성안에는 많은 군량과 말을 모아두고 있었다. 잔꾀에 능한 진궁을 오른팔로 삼고 여포는 하비성에서 두 다리를 쭉 펴고 있었던 것이다.

진궁은 조조측의 원정군이 피로를 풀기전에 일제히 공격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권유했으나 여포는 가족과 애첩인 초선과의 정에 푹 빠져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편 성을 포위하고 있던 조조는 조조대로 여포가 전투에 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쉽사리 공격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약 두 달도 넘게 그냥 시간만 흘러갔다.

맹호(猛虎)의 포박(捕縛)

조조가 하비성을 에워싸고서는 공격하지 못하고 있자 부근의 소영주들은 동용하기 시작했다. 조조는 작전회의를 열고 "지금 북쪽에는 원소, 서쪽에는 유표와 장수, 그리고 남쪽에는 원술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순서대로 치자면 하비성을 점령하는데 애쓸 필요는 없다.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다."

그러자 순욱과 곽가가 기수, 사수를 이용해 수공전술을 펼칠 것을 제안했다. 조조는 그 작전을 받아들여 두 개의 강둑을 무너뜨렸다. 그로 인해 사수가 성벽까지 차올랐고 성은 점점 고립되어 갔다.

일이 이 지경에가지 미치자 여포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너무나도 수척해진데 놀라 술을 끊기로 결심하고 병사들에게도 금주령을 내렸다.

여포에게는 후성(侯成)이라는 부하장수가 있었다. 열다섯필의 훌륭한 말을 키우고 있었는데 졸병 하나가 말을 훔쳐 성밖으로 달아나려 해서 쫓아가 목을 베어 죽이고 말을 몽땅 다 되찾았다.

그 일을 축하하는 연회를 열기위해 총대장인 여포에게 허가를 받으려 했다. 그래서 우선 술을 좋아하는 여포에게 술을 선물했다. 여포로서는 막 금주령을 내린 직후여서 체면이 서지 않았다.

"넌 내 명령을 듣지 않겠다는 거냐. 용서할 수 없다!" 하고 소리치며 화를 냈다. 후성은 송헌, 위속 등의 도움으로 겨우 죽음만은 모면하고 채찍으로 50대를 맞은 후에 풀려났다. 한편 여포는 선물받은 술을 마시고는 취해 코를 골며 잠들었다.

여포의 이러한 안하무인격인 행동은 부하장수들의 큰 불만을 사게 되었다. 특히 후성, 송헌, 위속 세 사람은 만만치 않았다. 결국은 탈출을 결심하고 여포의 애마인 적토마를 훔쳐내 성밖에 주둔하고 있던 조조에게 달려갔다.

그날 밤, 조조는 일제히 공격할 것을 결심하고 덜 차오른 동문으로 해서 침투했다. 조조군을 앞에서 이끌던 송헌과 위속은 병사를 이끌고 여포의 침실을 습격, 술에 취해 곯아 떨어진 여포를 꼼짝 못하도록 묶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설이 있다. 한가지는 술속에 특수한 수면제가 들어 있었다는 설. 또 한가지는 힘이 센 여포가 정신을 차리고 날뛰면 밧줄이 풀릴 염려가 있으므로 특수제작한 비단으로 만든 얇은 줄로 묶고나서 그 위에 굵은 밧줄로 칭칭 동여 매었다는 것이다. 그렇게하면 여포가 굵은 밧줄은 끊더라도 얇은 줄이 살갗에 파고 들어가 고통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두 가지 다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여포(呂布)의 최후

성 안으로 들어온 조조는 유비와 함께 동문의 성루에 앉아 포로를 심문했다.
여포의 부하장수들이 한명씩 끌려나와 목이 베이거나 혹은 용서받기도 하였다.

진궁의 차례가 되었을때, 천하의 조조도 동정심을 느꼈다. 진궁과는 동탁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함께 이리저리 도망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조는 완전히 변해버린 옛친구를 향해 말했다.

"자네는 머리가 좋다며 뽐내오더니만 오늘 이 꼴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러자 진궁은 턱으로 여포를 가리키며, "이 자가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너같은 사람에게 질 리가 없다. 자 여러말 하지 말고 빨리 죽여라."
하는 수 없이 조조는 진궁을 참수시켰다.

이윽고 여포의 차례가 되었다. 그에 대해서는 눈꼽만큼의 동정심도 없었다. 여포가,
밧줄이 너무 꽉 조이니 좀 느슨하게 해주지 않겠는가." 라며 사정해도 조조는,
호랑이를 묶은 것인데 오히려 너무 느슨할 정도다."라고 비웃으며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포박당한 여포가 조조옆에 있는 유비를 향해, "유비, 한마디 쯤 거들어 주게나."라며 매달렸다.

그리고는 조조를 향해 아부를 떨며, "당신같은 지도자가 나를 부하로 쓰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천하를 얻는 것은 어려운일이 아니다." 라고 애원했다. 조조는 묵묵히 유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유비가 차갑게 내뱉었다.

"조조 전하, 정원과 동탁의 일을 잊지 마십시오."

정원과 동탁도 여포가 배신하고 살해한 사람이다. 유비의 말에 여포는 발갛게 상기되면서 화를 냈다.

"이런 배은망덕한 놈! 소패에서 내가 구해 주었던 일도 잊었느냐!"

조조는 여포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여포, 꼴사납구만.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다 죽는 법이라네!."

조조의 명령을 받은 형리는 여포를 일으켜 세워 목을 베웠다. 이리하여 여포는 그의 생을 마쳤다.

월간 '삼국지' 중에서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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