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진 문겸(樂進 文謙 159~218), 출신지 : 양평(陽平)군 위국(衛國)현, 직위 : 장하 관리 - 행유격장군 - 우장군
  
▶ 위(魏)의 장군(將軍). 일찌기 조조(曹操)를 따라다니며 싸움터에서 공이 컸다. 절풍장군을 배수 받았으며 시호는 위후다. 장료, 우금, 서황, 장합과 함께 위의 명장으로 찬사를 받았고 오대장의 한 사람이 되었다. 온갖 고초를 겪고 성공한 인물이다.

▶ 조조 수하의 장수. 양평 위국(楊平衛國) 사람으로 자는 문겸(文謙). 처음 그가 진류(진류)에서 의거(義擧)하였을 때, 맨 먼저 참여하였다. 적벽대전후 동오(東吳)와 대결하게 되자 대장으로 출전하여 단기로 손권에게 달려들어 송겸(孫權) 가화(賈華)가 가로 막는 창을 단칼에 베어 떨구고 덤벼 용명을 떨쳤다. 몸집은 작었으나 담력이 있어, 그후 여러 차례 공을 세우고 늙어서 죽었다.

▶ 처음에는 조조의 장하의 괸리(기록계)였는데, 체구는 작아도 담력이 있었다고 한다. 복양의 여포, 옹구의 장초, 고(苦)의 교유와의 전투에서는 선두에서 전공을 세워 광창정후로 발탁된다. 그후로도 안중의 강수, 사견의 휴고, 패의 유비를 모두 격파. 관도 전투에서는 원소의 부하 순우경을 쳐부수고, 여양의 원담, 원상과의 전투에서는 대장 엄경을 토벌하는 등 맹활약해 행유격장군으로 승진한다.

이후 고간 정벌, 형주 공략에도 참가해 양양에 주둔한다. 관우, 소비 등을 격파해 패주시켰기 때문에, 남군의 산간에 있었던 만민(蠻民)들도 악진 밑으로 귀순한다. 또한 유비의 부하이자 임저의 우두머리인 두보, 정양의 수령 양대까지 완전히 격멸한다. 이윽고 장료, 이전과 함께 합비에 주둔했을 때, 절(節)을 받고 손권과의 전투에서도 활약한다. 영읍은 1,200호가 되고, 너무 많은 전공을 세웠기 때문에 5백 호를 한 단위로 분할해 제후를 세우고, 자신은 우장군으로 승진할 정도였다. 218년에 사망하고 위후라는 시호를 받는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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