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의(楊義) 위공(威公) 183~ 양양(襄陽) 사람
  
▶ 벼슬은 후군사(後軍師)였다. 군중의 잡무를 잘 처리했지만 도량이 좁은 것이 흠이었다. 공명(孔明)을 따라 여러 번 출정하여 그의 좌우에서 일을 돌보아 많은 공을 세운다. 공명 사후 앙숙인 위연(魏延)과 대립하여 위연이 반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후일 벼슬에 대한 원망의 뜻을 품어 후주가 서인(庶人)으로 폐하자 부끄러워 자결하였다.

▶ 촉한(蜀漢)의 문신(文臣). 양양(襄陽) 사람으로 자는 위공(威公). 대소사에 재치 있어 임하여, 제갈양의 출정 중에는 늘 좌우에 모시고 있어, 잔사무는 모두 그의 손에서 처리되었다. 백성과 군사의 피로를 덜고자 석달만큼씩 교대하는 제도를 건의하여 제갈양은 그것을 따랐다. 제갈양이 임종에 유언하여 위연(魏延)이 모반하였을 때에 깨칠 계교를 전하였다. 그리하여 유해를 모시고 무사히 귀국하였는데, 제갈양의 유언대로 중앙의 요직이 결정되자, 장완(蔣琬)은 자기보다 벼슬을 나중하였건만 웃자리에 앉았다고 불평을 하고, 그밖의 불미한 일들이 속속 드러나, 후주가 죽음을 줄 것이로되 감하여 관직을 뺏고 내치었다. 그리하여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스스로 목메어서 죽었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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