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속(馬謖) 유상(幼常) 190~228 양양(襄陽) 의성 사람
  
▶ 마량(馬良)의 막내동생. 제갈량(諸葛亮)이 아꼈으나 유비(劉備)는 죽을 때 언과기실(言過期失)이란 평(評)을 하였다. 관직은 참군(參軍)이었으며 사마의(司馬懿)를 거짓소문으로 한 때 물러나게 한 적도 있으나 제갈량(諸葛亮)의 가정(街亭)의 큰 싸움에서 군량의 중요한 보급로인 산을 맡는 중책을 소홀히하고 이를 빼앗겨 촉군이 후퇴할 수 밖에 없자 그 책임을 물어 죽음을 당하였다. 공명(孔明)이 눈물을 머금고 그를 참하는 모습에서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말이 나왔다.

▶ 출신지 : 형주 양양군 의성현, 직위 : 형주종사 - 월수군 태수

유비의 장수. 자는 유상(幼常). 의성 사람.
마량의 동생으로서 유비를 따라 촉에 들어가 각지의 요직을 역임했다. 228년 봄, 가정에서 위의 명장 장합과 대결했다. 이것은 촉의 중원 진출을 좌우하는 중요한 싸움이었으나, 마속은 제갈량의 지시에 반대, 남쪽의 험준한 산중에 진을 쳤기 때문에 물이 끊겨 크게 패전했다. 제갈량은 후퇴를 감행할 수 밖에 없게 되고, 전군에게 사죄하는 뜻에서 아끼던 마속을 처형했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성어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 촉한(蜀漢)의 대장. 양양 의성(襄陽宜城) 사람으로 자는 유상(幼常). 마씨 5형제 중의 한 사람으로 제갈양과 형제처럼 친하게 지낸던 마양(馬良)의 아우다. 유비는 임종에 < 저 자는 말이 실속보다 앞서니 중용하지 말라>고 하였던 것인데, 맹획(孟獲) 정벌 중에 칙사로 온 것을 만나 그의 식견을 듣고는 매사에 신임하고 부렸다. 제1차로 위(魏)를 치러 출병할 때 가정(街亭)의 요충(要衝)을 지키게 했건만, 제갈양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가 대패하게 된 죄로 군율에 의해 처형되었다. 당시 촉한으로서는 인재가 모자라 그만한 장수도 아쉬운 형편이었으나, 제갈양은 눈물을 머금고 그를 베니 39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그래, 그의 심경을 동정하여 읍참 마속(泣斬馬謖)이라는 유명한 문자가 다 생겼다.

▶ '울면서 마속을 벤다'는 '휘루참마속(揮淚斬馬謖)', 일명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주인공이다. 역시 B급 가운데 가장 유명한 축에 속하는 고사 '백미(白眉)'의 주인공인 마량(馬良)의 아우가 바로 이 마속이였다. 마속은 형주종사 신분으로 적벽대전 이후에 유비(劉備)를 따라 입촉(入蜀)을 하였는데, 평균 이상의 군사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제갈량은 그를 매우 아꼈다. 특히 제갈량의 남정(南征)시 무력이 아닌 심리전으로 싸울 것을 청해 제갈량으로부터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그 전에 유비가 임종할 때에 즈음하여 남긴 말이 있었으니,

"마속은 말이 실제보다 지나친 자이니, 크게 기용할 수 없소. 그대(제갈량)는 그를 잘 살펴보시오."

라고 했었다. 이 말이 증명된 전투가 제갈량의 제1차 북벌시 가정(街亭)에서의 싸움이었다. 촉나라의 침입으로 다급해진 위나라가 사마의를 다시 전선으로 파견하니, 사마의는 전방 요충지인 가정에서 승부를 걸기로 했다. 이때 제갈량이 마속에게 가정의 수비를 맡긴 것이다. 패전하면 목숨까지 내놓겠다는 군령장까지 쓰고 2만 5천의 병력을 지휘하여 가정으로 향하는 마속에게 보좌역으로 왕평(王平)이 할당되었다.

왕평은 가정에 도착해 지형을 살핀 후에 마속에게 산 아래 길목에 진채를 내릴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사령관인 마속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게 되면 그 기세는 대나무를 쪼갤 때와 같다.'는 병서 한 구절을 나불거리면서 끝내 길 옆에다 진채를 세울 수 없다며 산 위에다 진을 쳤다. 그러다가 포위를 당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왕평의 반론에 마속은 또다시 '사지(死地:죽을 땅)에 빠뜨린 연후에야 살아난다.'는 손자병법 구지편(九地篇)의 한 구절을 들 먹였다. 하는 수 없이 왕평은 5천의 병력만을 이끌고 산 아래에 진을 쳤다. 결과는 산을 포위한 마속군의 식수 공급을 차단한 사마의의 승리.

가정을 잃은 촉나라 군대는 기세가 꺾여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가까스로 전열을 수습한 제갈량이 한중에서 패전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곧 마속이 가정에서의 패배가 자신의 탓임을 명확하게 시인하니, 제갈량은 군령장에 따라 마속의 참수했다. 제갈량은 군율을 세우기 위해 사사로운 정을 버리고 자신이 아끼던 인재를 참수하게 된 상황, 그리고 선제 유비의 선견지명을 헤아리지 못한 상황을 책망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제갈량이 직접 마속의 목을 베지 않았음은 물론.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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