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협(劉協) 백화(伯和) 181~234
  
▶ 후한(後漢)의 마지막황제 헌제(獻帝), 영제의 둘째아들로 후궁 왕미인 소생. 어려서 총명하고 사리에 밝음. 영제(靈帝)가 죽은 후 진류왕(陳留王)에 봉해졌다.

동탁(董卓)의 강압으로 황제에 오른(나이 9세)후 동탁, 이각과 곽사, 조조(曹操)등의 등쌀에 시달리며 황제 노릇한번 제대로 못한 비운의 인물.

동승(董承)에게 금포옥대(錦袍玉臺)를 내리기도 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약 20년간 처참한 꼴을 많이 경험함.

흥평(興平)연호를 쓰다가 건안(建安)으로 바꿔 25년간 사용하다 조비(曹丕)가 대를 이어 위왕(魏王)에 오른 후 이에 만족치 못하자 대역무도하게도 황제의 자리를 찬탈함. 쫓겨난 후 죽음을 당했다고 전해짐.

▶ 영제(靈帝)의 둘째 아들로 처음에 진류왕(陳留王)의 봉함을 입어 십상시(十常侍) 난리에 소제(小帝)와 같이 피신하였다. 동탁(董卓)이 임금으로 세우니 그때 나이 겨우 아홉 살이요, 연호(年號)를 초평(初平)이라 하였다. 이각(李 )·곽사(郭 )의 난을 만나 갖은 신고를 겪고, 다시 조조의 받드는 바 되었으나 허전(許田)의 사냥 이후 조정의 권한이 기우는 것을 한탄, 밀조(密詔)를 의대(衣帶) 속에 넣어 국구(國舅) 동승(董承)에 내려 조조를 멸하려다 발각되어 충신의무리는 모조리 죽음을 당하고 동귀비(董貴妃) 마저도 죽음을 당하였다. 뒤에 복황후(伏皇后)또한 그의 손에 죽고 두 황자마저 죽음을 당하였으며, 조조가 살았을 때만도 그래도 빈자리나마 유지하더니, 그의 아들 조비(曹丕)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산양공(山陽公)이란 호칭으로 지내다가, 제갈양이 죽던 그해 오십사 세로 한많은 이 세상을 떠났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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