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창(曹彰) 자문(子文) 190~223
  
▶ 조조(曹操)의 셋째아들로 용력이 절륜하여 황수아(黃鬚兒)로 불리었는데 아버지의 권력에 무심하 고문(文)보다는 무(武)에 관심이 많아 어려서부터 무예에 열중하였다. 한중 쟁탈전에서는 적군에게 쫓기는 조조를 구해내었으며 오랑캐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정복하여 공을 세웠다. 임성왕(任城王)에 책봉되었다.

▶ 조조의 둘째 아들. 자는 자문(子文). 어려서부터 궁마에 통달하고 힘은 맹수를 잡을만 하였는데, 수염이 노랗다고 조조는 그를 황수(黃鬚)라 부르며 자랑으로 삼았다.

대군을 거느려 오환족(烏丸族)의 반란을 평정하여 공을 세웠는데, 조조가 죽었을 때 군사를 이끌고 상경하였다가, 이내 전군을 형 조비(曹丕)에게 인계하고 뒤에 임성왕(任城王)으로 봉해졌으나 몇해 후 입경하였다가 객사에서 갑자기 죽었다.


▶ 출신지 : 패국 초현, 직위 : 언릉후 - 북중랑장· 효기장군 - 임성왕

조조와 변황후 사이의 2남. 젊은 시절부터 궁술과 마술이 뛰어나고, 완력이 보통사람 이상으로 맹수와 격투할 정도였다고 한다. 조조는 독서를 권했으나 학문을 좋아하지 않고 '장수가 되어 사졸들의 선두에 서서 싸우고 싶다.'고 말해 후계 쟁탈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218년에 대군의 오환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토벌을 명령받고, 스스로 전투에 참가하여 활을 쏠 때마다 반드시 적병을 쓰러뜨리는 용맹함을 보이고 있다. 도망가는 적을 추적하는 동안 원거리를 행군하여 말과 병사 모두 피로에 지치고 말았으나, 그는 지칠 줄 모르고 추격해 적을 산산조각으로 격파했다. 장병에게는 평소의 두 배가 되는 포상을 주었기 때문에 모두 기뻐했다고 한다. 이 보고를 들은 조조는 '우리 황수아(黃鬚兒, 황색 수염이 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부름), 쓸 만하구나.'하고 칭찬했다.

그후 조비가 제위에 오르면서 임성군에 봉해지지만, 그의 무략을 두려워했는지 하는 일마다 박해를 받아 223년 불우한 나날속에 병사하고 만다. <세설신어>에서는 조비에게 독살된 것으로 묘사되었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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