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회(鍾會) 사계(士季) 225~264 영천 장사
  
▶ 종요(鍾繇)의 아들로 위(魏)의 재사 중의 한명이다. 사마사, 사마소의 심복으로 등애(鄧艾)와 쌍벽을 이루어 함께 촉(蜀)을 정벌하였다. 후일 강유(姜維)와 함께 위에 반란을 일으키다가 사전에 누설되어 난전을 맞고 죽었다.

▶ 사마씨 휘하의 대장. 영천 장사(穎川長沙) 사람으로 자는 사계(士季). 태부 종요(鍾繇)의 아들로서 장재(將才)가 있어 하후패(夏侯覇)는 촉한에 항복했을 때 그를 일러 훗날 반드시 촉한(蜀漢)의 위협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등애(鄧艾)와 길을 나눠 촉한을 쳤는데, 거짓으로 항복한 강유(姜維)에게 여러 가지로 농락당하고, 뒷날 등애를 쳐 없앤 뒤, 중앙에서 자신마저 멸하려는 것을 알자, 강유의 권고로 모반하였다가 이루지 못하고 진 앞에서 난전(亂箭)에 맞아 죽었다.

▶ 출신지 : 영천군 장사현, 직위 : 비서랑 - 사도

위 태부 종요의 막내아들. 어릴 적부터 신동 기질을 발휘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논리학에 정통해 이름이 알려진다.

257년 제갈탄이 수춘에서 반역하자 종회는 사마소를 따라나서고 계략을 써 제갈탄 구원을 위해 달려온 오의 전역 등을 귀순시키는 등 반란 진압에 활약. 사마소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 당시 사람들에게 자방(전한의 책사 장량)으로 알려진다.

263년 가을. 종회는 마침내 촉 토벌군을 일으키고 수십만의 병사와 등애, 제갈서 두 부대의 각각 3만여 병사가 촉으로 향한다. 검각에서 강유의 격렬한 저항을 맞고 있는 사이에 별동대 등애가 성도에 들어가 유선을 항복시킨다. 결국 강유는 종회에게 항복하지만, 종회는 부하들을 엄하게 단속해 촉의 관료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강유와 매우 친밀한 사이가 된다.

그후 종회는 자립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등애를 모함해 도성으로 보낸다. 혼자 대군세를 통솔할 수 있게 되자 강유와 함께 계획을 짜지만, 믿었던 구건의 배반으로 호열 등의 군사가 폭동을 일으켜 강유와 함께 살해된다. 나이는 40세였다. 한편, 사마소는 종회가 반역할 것을 알고 있었고, 더욱이 반역후의 일까지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고 힌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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