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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원 삼국지 세트 (전10권)
    나관중 저/박태원 역 | 깊은샘

정가 95,000원
출간일 2008년 05월 15일
ISBN-13 9788974161903

▶ 지은이 소개

저 : 박태원 (1909년~1987년)
서울 출생. 1930년 신생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에 나왔다. 구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반계몽, 반계급주의문학의 입장에서 세태풍속을 착실하게 묘사한 『소설가 구보씨의 1일』『천변풍경』등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가족을 남겨둔 채 월북하였고, 북한 쪽 종군기자로 활동했다고 한다. 1960년에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의 집필을 착수하나, 당뇨병과 고혈압으로 실명과 전신불수가 되는 시련을 겪으면서『갑오농민전쟁』 1, 2부를 출간한다. 1986년 7월 10일에 사망했으며, 사망 후에 박태원의 구술을 정리하여 『갑오농민전쟁』 3부가 출간되었다.

▶ 책소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유명한 작가 박태원이 완역한 삼국지. 1950년 박태원의 월북으로 중단되었던 『삼국지』가 무려 58년만에 돌아온 셈이다. 이번에 나온 박태원의 삼국지 완역본은 1959년 북한의 국립문학예술서적출판사에서 번역, 출판하기 시작하여 1964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출판사에서 총 6권 분량으로 완결된 판본을 저본으로 한 것으로 박태원 삼국지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근대문학사상 최고의 모더니스트로 손꼽히는 작가의 유려한 문체와 양백화에게서 전수받은 해박한 한문 실력이 더해져 그 완성도도 상당하다.

작가의 이같은 삼국지 번역 경험은 모더니스트였던 박태원이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을 창작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기도 하였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첨단 모더니즘과 『갑오농민전쟁』의 웅장한 민중적 대하소설이 박태원의 작가세계에서 공존할 수 있도록 교량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민중문학으로, 정치적인 오락물로, 재미있는 이야기로, 경영전술과 리더십에 대한 교재로 다양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삼국지의 매력이라면, 이 작품을 통해 작가 박태원의 작품세계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재미도 추가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동안 삼국지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작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새로워졌지만, 반 세기 전 삼국지의 현대화를 처음 이루었던 박태원 삼국지가 보여주는 묵직함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갈 것이다.

▶ 차례

-삼국지 1 도원에서 맺은 의
나의 아버지 박태원과 삼국지
1. 도화 만발한 동산에서 의형제를 모으고 세 영웅은 나가서 황건적을 쳤다
2. 장익덕이 대로하여 독우를 매질하고 하국구는 환관들을 죽이려 들었다
3. 은명원 모임에서 동탁은 정원을 꾸짖고 황금과 명주로 이숙은 여포를 꼬였다
4. 동탁이 임금을 폐하고 진류왕을 세우니 조조가 역적을 죽이려다 보도를 바쳤다
5. 교조를 내니 제후들이 조조에게 응하고 관을 칠 세 영웅이 조조와 싸우다
6. 금궐에 불을 질러 동탁이는 행흉하고 옥새를 감추어 손견은 맹세를 저버렸다.
7. 원소는 반하에서 공손찬과 싸우고 손견은 강을 건너 유표를 치다
8. 교묘할사 왕 사도의 연환계야 동탁을 봉의정에서 호통 치게 만드는구나
9. 왕 사도를 도와서 여포는 역적을 죽이고 가후의 말을 듣고 이각은 장안을 범하다
10. 왕실을 위하여 마등은 의기를 들고 아비 원수를 갚으러 조조는 군사를 일으키다
11. 현덕은 북해로 가서 공융을 구하고 여포는 복양에서 조조를 치다

박태원삼국지의 출간이 갖는 의미

-삼국지 2 난세, 풍운의 영웅들
12. 도 공조는 서주를 세 번 사양하고 조맹덕은 여포와 크게 싸웠다
13. 이각과 곽사가 크게 싸우고 양봉과 동승이 함께 거가를 보호하다
14. 조조는 거가를 허도로 옮기고 여포는 밤을 타서 서주를 엄습하다
15. 소패왕 손책이 태사자와 싸우고 또다시 엄백호와 크게 싸우다
16. 여봉선은 원문에서 화극을 쏘아 맞히고 조맹덕은 육수에서 적과 싸워 패하다
17. 원공로는 칠로로 군사를 일으키고 조맹덕은 세 곳의 장수들을 모으다
18. 가문화는 적을 요량해 승패를 결하고 하후돈은 화살을 뽑고 눈알을 먹다
19. 하비성에서 조조는 군사를 무찌르고 백문루에서 여포는 목숨이 끊어지다
20. 조조는 허전에서 사냥을 하고 동 국구는 내각에서 조서를 받다
21. 조조는 술을 마시며 영웅을 논하고 관공은 성을 열게 해서 차주를 베다
22. 원소와 조조가 각기 삼군을 일으키고 관우와 장비는 함께 두 장수를 사로잡다

-삼국지 3 오관을 돌파하고 천리를 달려서
23. 예정평이 벌거벗고 국적을 꾸짖고 길 태의가 독약을 쓰고 형벌을 받다
24. 국적이 행흉하여 귀비를 죽이고 황숙이 패주해서 원소에게로 가다
25. 토산에서 관공은 세 가지 일을 다짐받고 조조를 위해 백마의 포위를 풀어주다
26. 원본초는 싸움에서 패해서 장수를 잃고 관운장은 인을 걸어놓고 금을 봉해 두다
27. 형님을 찾아가는 한수정후 관운장 천 리 먼 길을 필마로 달리면서 오관을 돌파하고 육장을 베었다
28. 채양을 베어 형제가 의혹을 풀고 고성에 모여 군신이 의리를 세우다
29. 소패왕이 노하여 우길을 베고 벽안아가 앉아서 강동을 거느리다
30. 관도에서 싸워 본초는 싸움에 패하고 오소를 들이쳐서 맹덕은 군량을 불사르다
31. 조조는 창정에서 본초를 깨뜨리고 현덕은 형주로 가서 유표에게 의지하다
32. 원담과 원상이가 기주를 가지고 다툴 때 허유는 조조에게 장하를 틀 계책을 드리다
33. 조비는 난리를 타서 견씨에게 장가들고 곽가는 계책을 남겨 두어 요동을 정하다
34. 채 부인은 병풍 뒤에서 밀담을 엿듣고 유황숙은 말 타고 단계를 뛰어넘다

-삼국지 4 삼고초려
35 현덕이 남장에서 은사를 보고 단복이 신야에서 영주를 만나다
36 현덕이 계책을 써서 번성을 엄습하고 원직이 말을 달려와서 공명을 천거하다
37 사마위가 다시 명사를 천거하여 유현덕은 세 번 초려를 찾다
38 공명은 융중에서 현덜을 위해 계책을 정하고 손권은 장강에서 돌아간 부친의 원수를 갚다
39 유기는 형주성에서 세 번 계책을 구하고 공명은 박망파에서 처음으로 군사를 쓰다
40 채 부인은 형주를 조조에게 바치고 제갈공명은 신야를 불로 사르다
41 백성을 데리고 현덕은 강을 건너고 필마단기로 조자룡은 주인을 구하다
42 장비는 장판교에서 크게 호통치고 현덕은 패해서 한진구로 달아나다
43 강동의 모사들과 공명은 혀로 싸우고 뭇사람의 공론을 노숙은 극력 물리치다
44 공명은 슬기롭게 주유를 격동하고 손권은 용단을 내려 조조를 치기로 하다
45 삼강구에서 조조는 군사를 잃고 군영회에서 장간은 계교에 떨어지다
46 기이한 꾀를 써서 공명은 화살을 얻고 비밀한 계책을 드려 황개는 형벌을 받다
47 감택은 가만히 사항서를 드리고 방통은 교묘하게 연환계를 쓰다


-삼국지 5 아! 적벽대전
48 장강에서 잔치 하며 조조는 시를 읊고 전선을 연쇄하여 북군은 무력을 쓰다
49 칠성단에서 공명은 바람을 빌고 삼강구에서 주유는 불을 놓다
50 공명은 꾀도 많아서 화용도로 조조를 꾀어 들이고 관운장은 의기도 장해서 잡은 조조를 놓아 보내다
51 조인은 동오 군사와 크게 싸우고 공명은 주공근의 기를 한 번 돋우다
52 제갈량은 교묘하게 노술을 물리치고 조자룡은 계교를 써서 계양을 취하다
53 관운장은 의로써 황한승을 놓아 주고 손중모는 대판으로 장문원과 싸우다
54 오국태는 절에서 신랑의 선을 보고 유황숙은 화촉동방에 아름다운 연분을 맺다
55 현덕으느 꾀를 써서 손부인을 격동하고 공명은 두 번째 주공근의 화기를 돋우다
56 조조는 동작대에서 크게 잔치 하고 공명으느 세 번째 주공근의 화기를 돋우다
57 시상구에서 와룔은 조상을 하고 뇌양현에서 봉추는 공사를 보다
58 마초가 군사를 일으켜 원한을 푸니 조조는 수염을 베고 전포를 벗어 버리다
59 허저는 벌거벗고 마초와 싸우고 조조는 글씨를 흐려 한수를 이간 놀다
60 장영년은 도리어 양수를 힐난하고 방사원은 앞장서서 서촉을 취하려 하다

-삼국지 6 서쪽의 땅 촉을 향하여
61 조운은 강을 끊어 아두를 빼앗고 손권은 글을 보내 아만을 물리치다
62 부관에서 양회와 고패는 머리를 드리고 낙성에서 황충과 위연은 공을 다투다
63 제갈량은 방통을 통곡하고 장익덕은 엄안으르 의로 놓아 주다
64 공명은 계책을 정해서 장임을 사로잡고 양부는 군사를 빌려 마초를 격파하다
65 마초와 장비가 가맹관에서 크게 싸우고 유비는 스스로 익주목을 거느리다
66 관운장은 칼 한 자루 들고서 모꼬지에 나가고 복 황후는 나라를 위하다가 목숨을 버리다
67 조조는 한중 땅을 평정하고 장료는 소요진에서 위엄을 떨치다
68 감녕은 백기를 가지고 위군 영채를 겁략하고 좌자는 술잔을 던져 조조를 희롱하다
69 주역을 점쳐서 관뇌는 천기를 알고 역적을 치다가 다섯 신하는 충의에 죽다
70 맹장 장비는 지혜로 와구관을 취하고 노장 황충은 계책을 써서 천탕산을 빼앗다
71 대산을 차지하고 황충은 편히 앉아 적이 피로하기를 기다리고 한수를 의지해서 조운은 적은 군사로 대병을 이기다
72 제갈량은 한중을 지혜로 취하고 조아만은 야곡으로 군사를 돌리다

-삼국지 7 세상을 뜨는 영웅들
73 현덕은 한중왕의 위에 오르고 운장은 양양군을 쳐서 빼았다
74 방영명이 관을 지우고 나가서 죽기로써 싸움을 결단하고 관운장이 강물을 터서 칠군을 엄살하다
75 관운장은 뼈를 긁어 독기를 다스리고 여자명은 백의로 강을 건너다
76 서공명은 대판으로 면수에서 싸우고 관운장은 패해서 맥성으로 달아나다
77 옥천산에서 관공이 현성하고
78 풍질을 고치다가 신의는 비명에 죽고 유명을 전하고서 간웅은 세상을 버리다
79 형이 아우를 핍박하니 조식은 시를 읊고 조카로서 삼촌을 함해하고 유봉은 처형을 당하다
80 조비는 헌제를 폐하여 한나라를 찬탈하고 한중왕은 제위에 올라 대통을 계승하다
81 형의 원수를 급히 갚으려다 장비는 해를 입고 아우의 한을 풀려고 현덕은 군사를 일으키다
82 손권은 위에 항복하여 구석을 받고 선주는 오를 치고 육군을 상 주다
83 효정에서 싸워 선주는 원수들을 잡고 강어귀를 지키다가 서생은 대장이 되다
84 육손은 칠백 리 영채를 불사르고 공명은 공교하게 팔진도를 배포하다
85 유선주는 조서를 끼쳐 고아를 부탁하고 제갈량은 편히 앉아서 오로병을 평정하다

-삼국지 8 공명 출사표
86 전복은 천변을 늘어놓아 장온을 힐난하고 서성은 화공을 써서 조비를 깨뜨리다
87 남구를 치려 하여 승상은 크게 군사를 일으키고 천병에 항거하다 만왕은 처음으로 결박을 당하다
88 노수를 건너서 두 번째 번왕을 묶어 오고 거짓 항복함을 알아 세 번째 맹획을 사로잡다
89 무향후는 네 번째 계책으 ㄹ쓰고 남만왕은 다섯 번째 생금을 당하다
90 거수를 몰아 여섯 번째 만병을 깨뜨리고 등갑을 불살라 일곱 번째 맹획을 사로잡다
91 노수에 제를 지내 승상은 군사를 돌리고 중원을 치려 무후는 표문을 올리다
92 조자룡은 분말하여 다섯 장수를 베고 제갈량은 꾀를 써서 세 성을 빼앗다
93 강백약은 공명에서 항복을 드리고 무향후는 왕량을 꾸짖어 죽이다
94 제갈량은 눈을 이용해서 강병을 깨뜨리고 사마의는 날을 한해서 맹달을 사로잡다
95 마속은 간하는 말을 듣지 않다가 가정을 잃고 무후는 거문고를 타서 중달을 물리치다
96 공명은 눈물을 뿌려 마속을 베고 주방은 머리를 잘라 조휴를 속이다
97 위국을 치려 하여 무후는 다시 표문을 올리고 조병을 깨뜨리려 하여 강유는 거짓 항서를 드리다

-삼국지 9 큰 별 하늘로 돌아가다
98 한군을 쫓다가 왕쌍은 죽고 전창을 엄습하여 무후는 이기다
99 제갈량은 위병을 크게 깨뜨리고 사마의는 서촉을 범해 들어오다
100 촉병은 영체를 겁칙하여 조진을 깨뜨리고 무후는 진법을 다투어 중달을 욕보이다
101 농상으로 나가 공명은 귀신 놀음을 하고 검각으로 달려가다가 장합은 계책에 떨어지다
102 사마의는 북원 위교를 점거하고 제갈량은 목우유마를 만들다
103 상방곡에서 사마의는 하마 죽을 뻔하고 오장원에서 제갈량은 별에 수를 빌다
104 큰 별이 떨어져 한 나라 승상은 하늘로 돌아가고 목상을 보고서 위나라 도독은 간담이 스러지다
105 무후는 미리 금낭계를 깔아 두고 위주는 승로반을 떼어 옮기다
106 공손연이 싸우다 패하여 양평에서 죽고 사마의 거짓 병든 체하여 조상을 속이다
107 위나라 임금의 정사는 사마씨에게로 강유의 군사는 우두산에서 패하다
108 정봉은 눈 속에서 짧은 병장기를 뽐내고 손준은 술자리에서 비밀한 계책을 베풀다
109 한 나라 장수가 기이한 꾀를 쓰매 사마소는 곡경을 치르고 위나라 집의 응보로 조방은 폐함을 당하다

-삼국지 10 하나로 통일된 천하
110 문양은 단기로 웅병을 물리치고 강유는 배수진을 쳐서 대적을 깨뜨리다
111 등사재는 지혜로 강백역을 깨뜨리고 제갈탄은 의리로 사마소를 치다
112 수춘을 구하려다 우전은 의리를 지켜서 죽고 장성을 치매 강유는 힘을 다해 적을 무찌르다
113 정봉은 계책을 정해서 손림을 베고 강유는 진법을 다투어 등애를 깨뜨리다
114 조모는 수레를 몰아 남궐에서 죽고 강유는 양초를 버려 위병을 이기다
115 회군하라고 조서를 내려 후주는 참소를 믿고 둔전한다 칭탁하고 강유는 화를 피하다
116 종회는 한중 길에서 군사를 나누구 무후는 정군산에서 현성하다
117 등사재는 가만히 음평을 넘고 제갈첨은 싸우다가 면죽에서 죽다
118 소열 묘에 통곡하며 하노앙은 효도에 죽고 서천을 들어가매 두 선비는 공을 다투다
119 거짓 투항하매 교묘한 계고가 공담이 되어 버리고 두 번 수선하매 본보기대로 호로를 그리다
120 두예를 천거하매 노장은 새로운 계책을 드리고 손호를 항복바다아 삼분천하가 통일되다

주여창해설
박태원연보
박태원가계도

▶ 출판사 리뷰

『박태원 삼국지』가 반세기만에 출판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박태원의 월북으로 중단됐던 『삼국지』를 기준으로 하면, 국내의 독자들은 무려 58년 만에 박태원과 문학적인 상봉을 하는 셈이다. 본래 『박태원 삼국지』는 1941년 잡지 <신시대>에 연재되었으나 일제 말기의 정치적·문화적 상황이 여의치 않아 결국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당시 독자들의 열광적 반응에 힘입어 해방 직후 정음사에서 박태원의 『삼국지』가 다시 번역·출판되던 도중 그의 월북으로 중단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였으나 당시 정음사 사장이었던 최영해씨의 이름으로 대신 출간된 『삼국지』는 독자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당시의 많은 독자 중에는 박태원 삼국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차차 시간이 흘러 잊혀지고 말았다.

월북 후에도 박태원은 1959년 무렵부터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던 ‘삼국지 번역’에 착수하여, 5년만인 1964년 총 6권의 『삼국지』를 완역, 출판하게 된다. 이번에 깊은샘에서 출판되는 『박태원 삼국지』는 유족들과 깊은샘에서 수년에 걸쳐 일본과 중국 등지를 다니며 구해온 것으로 북한에서 완역된 『삼국연의』를 저본으로 하여 총 10권으로 복간한 것이다.

지금도 연구자들 사이에서 『박태원 삼국지』는 한국 근대문학사상 최고의 모더니스트로 손꼽히는 작가의 유려한 문체와 양백화에게서 전수받은 해박한 한문 실력이 더해진 최고의 명품으로 손꼽힌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삼국지 번역 경험은 모더니스트였던 박태원이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을 창작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기도 하였다.

『박태원 삼국지』를 출판한 도서출판 깊은샘은 ≪박태원전집≫은 물론 학회지 <구보학보>를 발간하고 있는 ‘박태원 전문 출판사’이다.

박태원 삼국지의 출간이 갖는 의미
조 성 면(인하대 강의전담교수, 문학평론가)

『박태원 삼국지』가 돌아왔다! 반세기를 넘긴 두 세대만의 극적인 귀환이다. 다시 쓰기(re-writing)와 리메이크가 『삼국지』의 텍스트 논리라고는 하지만, 강력한 원본성을 지닌 걸작의 출현에 이제 시뮬라크르들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앞으로 ?삼국지?의 판도가 한바탕 크게 요동을 치게 될 것 같다.

장구한 텍스트의 형성사가 보여주듯 『삼국지』는 통상의 문학작품들처럼 천재적 개인에 의한 창작물 즉 단일한 작가의 개념을 전제로 축조된 작품으로 보기 어렵다. 진수(233~297)의 정사 『삼국지』와 배송지(372~451)의 『삼국지주』 등의 공식적인 기록물들을 비롯하여 민간에서 떠돌던 설화들, 당대의 변문, 송대의 화본, 원대의 잡극, 그리고 『전상평화삼국지』 등을 거쳐 『삼국지』가 연의(演義)로 완결, 집대성된 것은 나관중(생년미상~1398)에 이르러서이다. 1644년경 이것이 다시 모종강(毛宗崗)에 의해 각종의 한시와 회평(回評)이 첨가된 120회 장편 장회소설로 재구성,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의 원형이 만들어지게 된다. 여기에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 1892~1962)에 의해 근대적 대하소설로 재창작되면서 마침내 『삼국지』가 복수의 텍스트들로 분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판본사(textual history)의 관점에서 『박태원 삼국지』는 ‘한국어판 삼국지 현대화’의 종착점이면서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삼국지』는 목판본과 활자본 등 다양한 형태로 유통되다가 1904년 박문서관에서 펴낸『수정 삼국지』를 기점으로 근대식 활판본들이 출판되기 시작했다. 이후 한동안 딱지본 형태의 이야기책 시대를 이어오다가 양백화(『매일신보』, 1929. 5. 5~1931. 9. 21)와 한용운(『조선일보』, 1939. 11. 1~1940. 8. 20)에 와서 의고적인 편역과 언해의 단계에서 확실하게 벗어나 근대적인 텍스트로 분화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박태원(1909~1986)의 손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우리가 『삼국지』라고 생각하는 현대적인 ‘한국형 삼국지’가 탄생하였다.

그러면 이른바 『박태원 삼국지』의 판본사적 획기성과 의미는 무엇이며, 그것은 왜 중요한가.

우선 『박태원 삼국지』는 그 자체가 작은 문학사이며 현대사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그의 문학적 여정과 한국현대문학사의 파란곡절이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걸작은 코에이(KOEI) 사(社)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 시리즈>를 즐기는 오늘날의 유저들이 읽어도 좋을 만큼 빼어난 가독성과 동시대성 그리고 순도 높은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박종화(1901~1981)·김동리(1913~1995)·황순원(1915~2000)·김구용(1922~2001)·황석영(1943~)·이문열(1948~)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대표 작가들의 텍스트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박태원이 처음으로 이룩하고 도달했던 ‘삼국지 한국화와 현대화’라는 압도적 성취에서 좀더 묵직한 존재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남북의 화해와 교류협력이라는 지난 시대의 성과들이 보수의 논리 앞에서 크게 훼손되고 또 다시 대결적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 국면에서 박태원이 1964년 북한에서 완결지은 『삼국지』가 다시 출판된다는 이 문화사적 사건은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다.

『박태원 삼국지』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41년 4월 월간 <신시대>에 『신역 삼국지』란 이름으로 연재되면서부터이다. 일부 고서 애호가들이 이것보다 앞선 1938년 박태원이 박문서관에서 『삼국지』를 펴냈다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근거 없는 주장이며, 『박태원 삼국지』의 서막을 연 『신역 삼국지』도 1943년 1월 모종강본의 「제57회 와룡선생은 시상군에서 주유를 조상하고 봉추는 뇌양현에서 고을을 다스리다」에 해당하는 대목을 연재하다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박태원은 1945년 전3권 분량으로 추정되는 축약본 『삼국지』를 ‘박문서관’에서 펴낸 바 있다. 1950년에는 정음사에서 다시 『삼국지』를 번역·출간하던 중 박태원의 월북으로 중단의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사장 최영해의 뚝심으로 속간되었으니, ‘최영해 삼국지’는 바로 『박태원 삼국지』의 후신이었던 것이다. 이른바 독자들 사이에서 『박태원 삼국지』의 은유로 통용됐던 정음사의 최영해 본 『삼국지』는 ‘제1권 도원결의’를 시작으로 단기천리·삼고초려·적벽대전·조조집권·관공현성·팔진도법·공명출사표·대성귀천·천하통일 등 총10권 분량으로 1955년 완결되었다. 탁월한 모더니스트가 보여준 유려한 미문에다 서슬 퍼런 냉전시대 월북 작가 박태원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대리만족감과 위반의 즐거움으로 인해 1960년대의 독자들에게 최영해 본 『삼국지』는 기대 이상의 각광을 받았다. 박태원의 월북으로 사라져버릴 뻔했던 걸작을 문화인식과 뚝심으로 이어간 정음사 사장 최영해는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의 아들이다.

그런 ‘최영해 삼국지’는 독자들의 각별한 사랑과 아쉬움 속에서 1959년, 1970년, 1979년 판과 쇄를 달리하면서 80년대 중반까지 계속해서 출판되었다. 이번에 깊은샘에서 새롭게 펴내는 『박태원 삼국지』는 그가 1959년 북한의 국립문학예술서적출판사에서 번역, 출판하기 시작하여 1964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출판사에서 총 6권 분량으로 완결된 판본을 저본으로 한 것으로 ‘삼국지 마니아’들이 반세기 이상 기다려왔던 『박태원 삼국지』의 결정판이며, ‘한국판 현대 삼국지’들의 좌장격인 진짜 원본의 복원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한국근대문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이나 박종화와 최영해를 찾아서 읽을 정도로 내공이 심후한 ‘삼국지 광팬’이 아니라면, 21세기의 젊은 독자들에게 『박태원 삼국지』는 다소 낯설지도 모르겠다. 특히 박태원 문학을, 경성거리를 배회하던 식민지 지식청년의 고독한 산책길과 갑오년 농민군들의 뜨거운 함성으로 기억하는 독자들에게 ‘박태원’과 ‘삼국지’는 뜻밖의 조합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태원 삼국지』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란 첨단 모더니즘과 『갑오농민전쟁』이란 웅장한 민중적 대하소설 사이의 낙차를 메우는 교량형의 작품이면서 『갑오농민전쟁』의 밑바탕이 되는 미완의 가작 『군상』의 탄생을 예비하는 것이니, 작품사적 의미 또한 결코 간단하지 않다. 여기에『삼국지』를 한국문학사상 최초로 신문에 연재한 바 있었고 동양 고전에 해박했던 양백화(1889~1944)에게 전수받은 단단한 한문 실력에 한국 모더니즘문학을 이끌었던 탁발한 문장력이 뒷받침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겠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요컨대 선구적 모더니스트이자 진보적 문학이념의 길을 선택한 그의 『삼국지』 번역 자체가 바로 그러하다.

뜻밖에도 우리는 그 해답의 단초를 『삼국지』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던 이태준(1904~미상)이 골동품과 기명절지(器皿折枝)들을 만지던 상고주의자(尙古主義者)였고, 정지용(1902~1950) 역시 한시에 능통한 고전주의자였으니 모더니즘과 고전은 그 내부에서 이처럼 강력한 심미적 친화력과 정신적 유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삼국지』는 고전주의자였던 모더니스트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매력적 대상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삼국지』를 처음 연재하던 1940년대 초반은 고전이나 역사 속으로 도피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암흑의 시대가 아니었던가. 뿐인가. 어떤 점에서 『삼국지』는 정처를 잃은 진보적 문학인이 의지처요,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던 것이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충과 의리 등과 같은 유교적 이념에 기초한 『삼국지』의 핵심적 세계관, 즉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이나 옹유반조(擁劉反曹) 등이 근대의 정신과 길항하는 시대착오적인 낡은 이념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오해이며 단견이다.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 삼형제의 면면을 보자. 탁현의 촌구석에서 돗자리를 만들어 팔던 유비, 저자거리에서 돼지를 잡아 팔던 장비, 탐관오리를 징치하고 수배를 피해 강호를 떠돌던 낭인 관우가 도원에서 결의를 맺고 군사를 일으킨 것은 일종의 민중적 봉기에 가깝다. 오직 웅지와 삼척검에 의지하여 몸을 일으킨 유비 삼형제에 대한 독자들의 열광과 지지는 부패한 정치권력과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민중적 항의와 분노가, 그리고 새로운 사회와 신분상승에 대한 열망의 심미적 표현인 것이다. 비록 종교적 외피를 쓰긴 했으나 농민들의 봉기로 볼 여지가 있는 황건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라든지 유비 삼형제가 보여주는 투철한 근왕주의나 한실재건 같은 복벽주의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오늘날의 관점을 무리하게 소급하여 적용한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유비 삼형제의 근왕주의와 애민주의는 전근대가 도달할 수 있었던 최고의 민중주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삼국지』를 민중문학으로, 정치적인 오락물로 읽어내는 방식은 단견이요, 일방적 관점일 수 있다. 요컨대 『삼국지』는 낙척불우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인생의 지혜를, 삶이 무료한 이들에게는 재미를, 경영인들에게는 탁월한 전술과 지략을, 그리고 새로운 시나리오와 콘텐츠가 필요한 크리에이터들에게는 원천소스를 제공해주는 등의 다양한 맥락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언제라도 자신의 처지와 관점에 따라 맥락을 달리 하여 읽을 수 있는 이 다성성(多聲性)과 풍부한 내포야말로 『삼국지』가 시대와 계층을 초월하여 반복해서 읽히게 되는 원동력일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조차 실전되었다고 하는 희대의 걸작 『박태원 삼국지』가 유족들과 깊은샘출판사의 수년에 걸친 끈질긴 노력과 열정으로 이렇게 다시 감격적으로 복간되는 것을 한국문학 전공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쁘게 환영한다. 아울러 중국문학 전문 번역가로서 온라인에서 삼국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송강호 선생과 이른바 <삼국지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여 <한국어판 삼국지 번역의 실상과 전모>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기초학문연구단> 소속 연구원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모쪼록 ‘현대 한국어 삼국지 판본’들 가운데서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 명품 『삼국지』가 독자들에게 새로운 기쁨이 되고, 더 나아가 박태원 연구는 물론 남북 간의 문화 교류 및 협력과 상호 이해의 물꼬를 트는 새로운 전기가 되었으면 한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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