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평(關平) 호서 182~219

▶ 관정의 차남으로 어릴 때 관우(關羽)의 양자로 들어가 관우를 따라다니며 많은 공을 세웠다. 주창(周倉)과 함께 좌우에서 관우를 보좌하는데 유비가 촉으로 들어간 후 관우와 형주를 지켰다. 여몽의 계락에 빠져 형주(荊州)에서 탈출하는데 맥성에서 오군에게 잡혀 관우와 함께 참수당했다. 정사에는 양자의 기록은 없다.

▶  관우(關羽)의 양자(養子). 얼굴은 희고 수염이 없었다 한다. 본시 오관참장(五關斬將)하고 관우가 유비를 찾아 나섰을 때 신세진 관정(關定) 노인의 작은 아들. 평생 양부를 따라 행동하다 형주(荊州) 함락 후 아비와 함께 죽음을 당하였다.

▶ 출신지 : 불명, 직위 : 불명

<정사>에서는 전장군 관우의 아들로 되어 있을 뿐, 몇 번째 아들인지는 불분명하다. 관우와 함께 반장의 부장 마충에게 임저에서 체포되어 참살되는 것으로만 나온다. 그러나 <촉기>에서는 관우가 번을 포위했을 때 이리에게 다리를 물리는 꿈을 꾸고 '나는 이미 나이가 들어 되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관평에게 술회한다. 따라서 관우를 따라 번을 공격하고 곧이어 손권에게 배후를 찔려 참살되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연의>에서는 관우가 하북 관정의 집에 묵었을 때 그의 차남 관평을 양자로 삼았는데, 그 활약이 눈부시다. 특히 관우를 따라다니며 유비의 양자 유봉과 호흡이 잘 맞는 짝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신야, 적벽 전투를 거쳐 나중에 유비가 서천을 공략하자 유봉과 함께 종군해 부수관에서 유장의 부하 양회와 고패를 사로잡아 참수한다. 그러나 군사 방통이 전사해 형주에 있던 제갈량을 부르는 사자로 나서면서 운명이 바뀐다.

관평은 형주를 지키는 관우 밑에 그대로 남고, 위의 방덕과 일 대 일로 대적하지만, 마침내 손권에세 배후를 찔려 관우와 운명을 함께 한다. 양자이면서도 천자 이상의 유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마 나관중의 훌륭한 연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한국 Korea Tour in Subkorea.com Road, Islands, Mountains, Tour Place, Beach, Festival, University, Golf Course, Stadium, History Place, Natural Monument, Paintings, Pottery, K-jokes, UNESCO Heritage, 중국 China Tour in Subkorea.com History, Idioms, UNESCO Heritage, Tour Place, Baduk, Golf Course, Stadium, University, J-Cartoons, 일본 Japan Tour in Subkorea.com Tour Place, Baduk, Golf Course, Stadium, University, History, Idioms, UNESCO Heritage, E-jokes, 인도 India Tour in Subkorea.com History, UNESCO Heritage, Tour Place, Golf Course, Stadium, University, Paint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