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준(王濬) 사치(士治) 206~286
  
▶ 진(晋)의 장군(將軍)로 관직은 익주자사(益州刺使) 용양장군(龍釀將軍)을 지냈다. 사마염(司馬炎)에게 오(吳)를 정벌할 것을 권한 후 정벌에 앞장선다. 익주성에서 장강으로 내려가 오를 공격하여 석두성에서 손호를 항복시키는데, 그 공으로 사마염은 그를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에 임명하였다.

▶ 고향:사예 홍농군 호현, 소속:진나라

진나라 장군으로 실제 군대를 지휘하여 오나라를 멸망시킨 인물이다. 익주자사로 있을 때 황제 사마염(司馬炎)에게 상소문을 올려 오나라를 공격할 것을 청하였으며, 그 청이 곧 받아들여져 용양장군에 임명된 후 수군을 이끌고 동오로 출전했다. 이때 나이가 74세를 넘은 고령이었으나 군대의 기세를 늦추지 않고 장강을 따라 진격하는 수완을 보였다. 삼산(三山) 근처를 지날 때 부하 하나가 풍랑이 심하니 잠시 지체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하자 왕준은 칼을 빼어들고 소리쳤다.

"나는 지금 석두성을 취하려 한다. 어찌 한 시각인들 머물려 있을 수 있겠는가!"

왕준은 기어이 군대를 진격시켜 성을 점령하고 오나라 황제 손호(孫浩)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이후 그 공을 인정 받아 보국대장군에 올랐으며, 통일한 지 7년째인 태강7년에 명을 달리했다.

왕준이 아니었어도 진나라 장수 가운데 누군가가 통일전의 최선봉에서 위업을 달성하기는 했었겠지만,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지휘력을 보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진(晋)의 대장. 호(湖) 사람으로 자는 사치(士治). 익주 자사(益州刺史)로 여러 차례 오(吳)를 치기를 건의하였다. 그러다 진주(晋主)의 명을 받고 용양 장군(龍讓將軍)으로, 수병을 거느리고 흐름을 따라 내려 오다가, 삼흔이 설치한 쇠사슬을 뗏목을 흘려 끊어 버리고, 수륙 양로로 진격하니 오(吳軍)은 이르는 곳마다 항복하였다. 오를 멸한 뒤 보국(輔國) 대장군에 봉해졌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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