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장원(五丈原)전투

▶ <제갈량 VS 사마의>

오장원(五丈原)은 제갈량이 제5차 북벌때 주둔하고 진몰한 장소이다.

건흥 12년(234년) 봄, 3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다섯번째의 북벌전에 임한 촉한 승상 제갈량은 그때까지의 우화적인 루트를 버리고 험난하긴 하지만, 장안(長安)에 가까운 사곡도(斜谷道)를 택했다. 미(湄)와 무공(武功)을 거쳐 단숨에 장안을 공격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항상 군량부족으로 퇴각하던 제갈량은 이번 제5차 북벌에서는 오장원 밑에서 둔전시켜, 항구적인 군사거점으로 삼고자 했다. 그리고 유마(流馬)라는 식량운반차를 개발하여 물자를 운송하였다. 촉의 10만군이 포진한 사수(斜水)와 위수(渭水)가 합류하는 무공군(武功軍) 오장원(五丈原), 위수 북쪽에는 사마의의 대군, 지구전을 각오했던 공명은 병사를 오장원의 산기슭의 낮은 습지대에 주둔시켰다. 그렇게 양쪽 군대가 대치한 상태로 1백여일이 지났다.

그러던중 계속된 과로에 공명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고 결국은 그 해 8월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의 나이 향년 54세였다. 유비의 부탁을 받고 일으켰던 북벌도 결국 그렇게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위수(渭水)에 진을 친 사마의의깃발을 바라보며 병상에 누워있는 제갈공명의 가슴속에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현재 산정상에는 제갈량의 묘가 있다고 한다.

오장원(五丈原)의 유래

오장원(五丈原)의 지명은 가장 좁은곳의 폭이 오장(약12m)밖에 안된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장원(五丈原)

오장원(五丈原)은 조위(曹魏)의 옹주(擁州) 미국 서쪽에 속했다.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기산현(祁山縣) 남쪽 2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로 약 1km, 남쪽으로 약 5km인 고지대로 높이가 약 120m이다. 동쪽으로는 석두하(石頭河)와 접해있고, 남쪽으로는 기반산(棋盤山)과 접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맥리하(麥里河)와 경계를 이루고 있고, 북쪽으로는 위수(渭水)에 의지하고 있다.

이와같이 삼면은 하천의 해안에 접해있고, 한 면만이 산을 의지하고 있어서 그 형세가 매우 험하다. 건흥 12년(234년) 봄, 제갈량이 제6차 북벌을 감행하면서 성을 쌓아 사마의와 100일동안 대치했던 장소로 전해진다. 이 성을 활락성(豁落城)이라 하며, 남북으로 길이가 약 250m이고 동서로 폭이 100m 정도이며, 아직도 높이 50cm 가량의 담장이 남아있다. 오장원 아래 석두하의 양쪽 연안은 농경지인데, 제갈량이 군사들을 선별하여 둔전(屯田)을 실행하면서 이곳을 농경지로 개간하였기에 이곳을 공명전(孔明田) 또는 제갈전(諸葛田)이라 불렀다.

그가 죽을때, 큰 별이 하늘에서 영채 가운데로 떨어졌다고 하여 오장원 아래의 마을 이름은 낙성보(落星堡)라 하며, 석두하가 오장원을 지나는 곳의 하만(河灣)의 이름을 낙성만(落星灣)이라 한다. 오장원 위에 무후묘(武侯廟)가 있는데, 묘당뒤의 높은 언덕은 제갈량이 별에 제(祭)를 올린 곳이라 하여 이름을 양성대(禳星臺)라 부른다.

오장원제갈량묘(五丈原諸葛亮廟)

오장원(五丈原)의 제갈량묘(諸葛亮廟)는 섬서성(陝西省) 기산현(祁山縣)에 위치하고 있다.

원대(元代)에 처음으로 지어졌으며, 명대( 明代)와 청대(淸代)를 거치면서 중수(重修)되었다. 현재는 대문(大門), 헌전(獻殿), 정전(正殿) 등 세 채의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또한 종고루(鐘鼓樓), 팔괘정(八卦亭) 등으로 두 개의 정원을 조성하고 있다. 대문은 푸른 벽돌과 흰기와로 이루어져 고색창연하며, '오장원제갈량묘(五丈原諸葛亮廟)'라는 7자의 금색 글자가 크게 쓰여 있다. 헌전은 다섯 간(間) 넓이로 되어 있고, 벽에는 공성계, 삼영전여포(三英戰呂布), 고성회(古城會), 화소신야(火燒新野), 허전수렵(許田狩獵) 등의 내용을 그린 벽화가 그려져 있다. 정전은 세 간으로 되어 있고, 안에는 제갈량의 팔괘의(八卦衣)를 걸치고 있는 좌상을 모시고 있으며, 양측에는 양의, 강유 등의 입상이 만들어져 있다. 사당은 벽돌과 나무로 지어졌으며, 둥근 아치에 높이 솟은 처마는 고풍스럽고 소박하면서도 고전적이고 단아하다.

천극(川劇) "오장원(五丈原)"

천극(川劇) 중에 오장원(五丈原)이 있다. 이 극의 내용을 보면, "제갈량이 오장원에 주둔하고 있을때 피를 토하며 병이 중해지자, 기양지법(기도를 하여 복을 구하고 재앙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장막안에 일곱 개의 큰 등잔을 배치하고 답강보두(도교 법사가 하늘에 기도를 하거나 도술을 부릴때의 걸음걸이를 말한다. 천궁의 북두칠성 별자리 형상으로 발걸음을 옮겨 디디며 기도)하며 생명을 연장시켜 줄것을 천지신명에게 기원한다.

위연은 위군이 영채를 겁탈하러 쳐들어온다는 보고를 하기 위하여 군막안으로 급히 뛰어들어오다가 실수로 주등을 꺼 버린다. 이에 제갈량은 스스로 죽음을 면할 수 없음을 알고 후사를 정한 다음, 홀연히 운명한다"라는 줄거리이다.

참고자료.
1) 삼국지사전
2) 월간삼국지 1997년 6월호 / 아이디어뱅크
  
▶ 한실 부흥의 꿈을 못이루다. - 오장원

234년, 제갈량이 제5차 북벌때 주둔하고 진몰한 장소.

항상 군량부족으로 퇴각하던 제갈량의 오장원 밑에서 둔전시켜, 항구적인 군사거점으로 삼도록 했다. 하지만 사마의와 대치하는 것이 백여일이 되고, 같은 해 8월 천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54세로 병사했다.

현재도 산정상에 제갈량의 묘가 있으며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굉장히 힘들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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