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처세술] 백제성에서의 유언  

일체를 맡길 수 있는 심복이 있는가  

이릉에서의 전투에서 패한 후, 유비는 장강 상류에 있는 백제성으로 피신하여 재기를 도모하였다. 승승장구로 추격해온 육손은 백제성 못 미쳐 백 리쯤 떨어진 곳에서 군대를 정확하게 정지시켰다. 오나라 국내는 전승 기분으로 들떠 있었다. 막료의 여러 장수들은 한결같이 손권에게 상신하였다.  

"전선사령관인 육손 장군은 어째서 진격을 멈추고 있는 것입니까. 지금 단숨에 유비의 맥을 끊어 놓아야 합니다."  

손권은 급히 사람을 보내어 육손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육손은 이렇게 회답하였다.  

"백제성을 함락시키는 것은 간단하오나, 이 이상 진격을 하면 이번에는 아군과 적군과의 전략적인 입장이 반대 상황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적군의 영토이며, 보급에도 차질이 생기게 됩니다. 또 이 이상 전진하면, 적의 참모인 제갈량이 나설 것입니다. 그 사람은 전략의 귀재이기 때문에 무서운 상대입니다. 한편 북방에 있는 위나라의 움직임에도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사람은 진격을 멈추고 있는 것입니다. 제반 정세로 보아, 지금은 오히려 철퇴하여 후방의 방어를 굳게 해야 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손권은 육손의 진언을 받아들여, 전군에게 철수명령을 내렸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육손이 깊이 추격하지 못한 것은, 공명이 고안한 '팔진지도(八陳之圖)'를 돌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이 '팔진지도'는 병법 칠서인 '이위공 문대'에도 나와 있는 비법의 전술로서, 여덟가지의 진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갈량은 이 비술로써 오나라의 육손과 위나라의 사마중달을 격파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실제로 오나라 군대가 백제성의 바로 앞에서 진격을 중지한 것은, 지휘관인 육손의 전략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었을 게다.  

촉나라 장부 3년(223년) 봄, 백제성에서 중태에 빠진 유비는 성도로부터 정승인 제갈공명을 불러들여,  

"당신은 위나라의 조비나 오나라의 손권보다 현격하게 뛰어난 인물이시오. 우리 촉나라를 안정시켜서 천하 통일의 대업을 성취할 힘을 가진 사람은 당신밖에 없소. 공명이여, 내가 죽은 후에 황태자인 유선이 보좌할 만한 인물이거든 육성시켜 주시오. 만약 그럴만한 그릇이 아니라고 생각되거든 서슴없이 당신이 대신 제위에 오르도록 하시오."  

하고 뒷일을 당부하였다. 너무나 감격한 공명은 목이 메어 울면서,  

"폐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불초 제갈량은 어디까지나 수족같은 신하로서 충절을 다하여, 죽는 일이 있더라도 보필하겠습니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도 죽기 전에 뒷일을 당부하고 있다. 이때, 히데요시는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모리 데루토모, 우에스기 카게가쯔, 우키다 히데이에 등 오대 노신을 머리맡으로 불러놓고,  

"히데요리(秀賴)를 잘 부탁하네."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간원하였다. 유비와의 태도와는 전혀 다르지만, 섭정까지 했던 독재자가 수치도 체면도 없이 오로지 부하에게 간원하는 것은, 인간의 약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며, 부모된 사람으로서는 자연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역사가 중에는 이때의 유비의 말이 너무나 훌륭하므로, 이것은 책사가 곧잘 쓰는 잔꾀이며, 이렇게 해둠으로써 공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라 하겠다. 자식들에게 남긴 유서를 보더라도, 유비는 진심으로 공명을 신뢰하였으며,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전면적으로 신뢰받은 사람일수록 강한 우군이 된다  

유비는 또 성도의 자식들에게 이런 유서를 보냈다.  

-아버지의 병은 처음에는 가벼운 것이었으나, 그후 여러 가지 합병증이 발생하여 이제는 회복될 가망성이 없어졌다. 인생 50세까지 살았으면 단명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물며 아버지는 60여세, 만족한 생애였으며 원망할 일도 후회할 일도 없다. 단지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너희 형제들의 문제뿐이로구나... 악한 일은 작은 것이라 해도 행해서는 안 되며, 선한 일은 작은 것이라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인생에 있어서는 '현명함과 덕망'이라는 두가지 품격이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다. 아버지는 덕망이 모자랐다. 이 아버지를 배워서는 안 된다. 고전을 많이 읽고 틈이 있으면 공부에 정진하여, 끊임없이 향상되도록 하라.-  

마지막 임종시에 유비는 머리맡에 차남인 노왕(魯王)을 불러놓고,  

"아버지가 죽거든 너희 형제들은 정승을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섬기도록 하여라. 무슨 일이든 정승의 말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  

라고 유언하였다. 공명에 대한 유비의 신뢰가 얼마나 두터웠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리더쉽의 중요한 점은, 믿을만한 부하에 대해서는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일이다. 신뢰가 없으면 우정도, 애정도, 충성도 성립되지 않는다.  

'무사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만 죽는다.'라는 말도 있듯이, 인간은 전면적으로 신뢰받고 있다고 스스로 느끼면, 그 사람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법이다. 유비의 사후 십수년, 공명은 2대째의 유선이 어리석은 군주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여러 번에 걸쳐 원정을 시도하며, 촉나라와 유선을 끝까지 지키는 데에 일신을 다 바쳤다. 이것은 오로지 유비의 신뢰와 베풀어 준 후대에 보답하기 위한 충절심이었다.  

'믿을만한 신하를 전면적으로 신뢰하고 일체를 맡긴다.'  

여기에 '어진 군주'로서 칭송되는 유비의 진면목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을 삼국지의 조조, 손권, 유비를 통해 알아본다. 여기에 잇는 자료는 "삼국지를 읽으면 사람이 보인다 (松本一男 지음, 이주영 옮김, 이목출판, 1995년 12월 10일 초판발행, 6,000원)" 에 나오는 자료로서 독자 여러분들은 이 책을 한권 구입하여 자기의 가까운 곳에 놓아 두고 자주 읽어 봄으로써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을 익히기 바랍니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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