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다음은 스칼라넷이다
<박영숙의 미래뉴스>10년전엔 인터넷의 발달 아무도 믿지 않아 
대형 학계서 연구개발 협업하는 교육포털…정보지식 나눔의 장
  
미래학자들이 신문이 사라지고 인터넷신문이 나온다고 했을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특히 인터넷이나 전자신문이 되면 엄청난 상호정보교환 네트워킹 요구(interactivity)나 여러매체에서 정보의 소스와의 전쟁의 결과가 돈다는 것을 예측하였는데, 일반인들은 믿지 않았다. 

사실 인터넷은 우리 인간의 삶을 송두리채 바꿔버렸다. 우리는 지난 10년전의 우리의 삶을 이미 다 잊어버리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생각하지만 10년전만해도 언론은 멀쩡히 살아있었다. 미래학자들이 신문을 전자 즉 인터넷으로 집에서 볼 것임을 알고있었다. 영국에서 전자신문은 이미 각 가정의 현실이 되었다. 

1978년 더 퓨처리스트지(THE FUTURIST)에는 '전자(인터넷)신문(The Electronic Newspaper)'이란 기사가 실렸었다. 이 기존 종이신문의 소멸을 알린 최초의 기사는 1978년 4월호에 실렸고 저자는 케니스 에드워드(Kenneth Edwards) 앨라바마대학교 신방과 교수였다. 퓨처리스트 잡지에서 케니스는 BBC가 텔렉스를 통해서 기사를 세계 각처에서 본사로 올리는 것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또 그런 사진이나 그림들이 집에서 텔레비전과 링크해서 볼 수있게 해놓은 편집장의 집을 소개하였다. 뉴스가 온라인으로 가기 전이었고 당시로서는 황당한 이야기였다. 다른 통신수단이 없고 유선전화만 유일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또 그 기사에서 언론 소비자 즉 독자들이 기사를 쓰는 과정에 참여하기를 희망하게된다고 예측하였다. 

에드워드의 미래예측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의 글을 까마득히 잊어먹고 있을무렵 즉 10년후 1987년에 마이크 그린리(Mike Greenly)가 세계최초 인터액티브 전자신문기자로서의 경험을 더 퓨처리스트에 올렸다. 당시 그의 글의 제목은 인터액티브 저널리즘과 컴퓨터네트워킹 새로운 경험들 ('Interactive Journalism and Computer Networking: Exploring a New Medium', March-April 1987)이었다. 

1986년에 세계미래회의는 사상 최초의 인터넷회의를 했는데 이를 그린리가 자세히 보도하였고 당시 사용하였던 콤덱스컴퓨터의 사진을 크게 실었다. 그는 라스베이가스에서 개최된 컴덱스쇼를 소개하였고 1984년에 민주당 공화당의 전당대회가 인터넷회의 즉 인터넷으로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는 지금의 채팅같은 서비스를 상세히 기사화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당시 그의 기사에 냉소적이었다. 

그린리는 또 당시 뉴욕시장이던 에드 카치같은 유명인사들을 이동식 컴퓨터를 직접 가지고 가서(요즘은 노트북을 들고가지만) 인터 뷰내용을 컴퓨터에 쳐넣었는데 당시 에드 카치 시장은 암을 앓고있었고 그 책의 제목은 '크로니컬, 에이즈의 인간적인 점 (Chronicle: The Human Side of AIDS)'이었다. 그린리가 컴퓨터에 올린 기사가 며칠 후에는 기사화가 되고, 독자들이 반응을 보이고 질문을 하는 형식으로 컴퓨터를 활용하는 최초의 인터넷신문이 만들어진 것이다. 

"내가 당시 인터액티브 저널리즘(독자와 상호교류하면서 함께 쓰는 기사)을 표방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내게 전자메일로 질문도 하고 의견도 주면서 대화를 나누었다"라고 그린리는 더 퓨처리스트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였다. 

그린리는 "나와 몇명의 기자들이 전자메일 등 전자저널리즘을 활용하고 있고 미래사회에 인터넷신문 포털 등으로 모든 것이 옮겨갈 것을 주장하였지만 당시 언론사 사장들은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 지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술회한다. 사장들은 그래도 주식거래상황, 뉴스, 날씨 등이 중요하므로 그런 기사만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린리는 이제 웹2.0시대를 이야기한다. "사람들의 면대면 의견교환은 더욱더 성장하고 번창할 것인데, 기자들이 TV현장뉴스를 하듯이 기사를 미리 써서 읽지않고 그 순간 자신의 지식을 이야기하듯이, 미래사회 언론은 트위터,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아는 지식을 적시 적소에 그냥 써 뱉는 형식이지, 원고지에 준비된 자료를 적어 넣는 것이 아니다. 원고지에 글을 올리는 미디어는 이미 죽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린리씨는 당시나 지금이나 유튜브같이 동영상이 이렇게 많이 찍혀지고 올려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큰 걱정은 이렇게 무분별한 정보를 누군가는 공공의 목적으로 신뢰성있는 글들을 올리도록 규제하고 섞어내는 작업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리트윗을 할때 아니면 남의 글을 퍼올때 그 최초의 창작자는 반드시 알려지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아주 기본적인 예의나 에티켓은 반드시 지켜져야 되도록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기술이 제재나 규제보다 한발 앞서 가지만 온라인 정보 독자들은 정보를 생산도 하고 소비도 하면서 첫 기록 혹은 창작자를 반드시 소스로 밝혀주는 예의를 지키자고 주장한다. 그렇게 창작자를 기리거나 존중하지않으면 아무도 창작을 하지않게되고 결국 인간은 새로운 것이 없는 똑 같은 것을 자꾸 돌려볼수 밖에 없는 재미없는 세상에 살게된다고 예측한다. 창작자들을 알아주지 않으면 아무도 힘든 창작을 하지 않게된다는 것이다. 

그가 주장한 인간의 의사소통기술이 인간들끼리의 소통을 더욱더 원활하게해주면서, 협업하는 연구개발분야가 부상한다는 주장, 즉 20년전에 그린리가 주장하던 말을 또 한사람이 주장하고있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의 리차드 슬래타 교수('ScholarNet: The Beginning of a World Academic Community” by Richard W. Slatta)의 글이 더 퓨처리스트 2010년 8월호에 실렸다. 

이 새로운 기술은 인터넷을 대체하게될 기술이며 교육포털을 만들 수 있는 툴인 스칼라넷, 세계아카데믹 커뮤니티의 시작이라는 새로운 네트워크를 추축해주는 기술이다. 학계에서 연구개발 협업하는 교육포탈이다. 지금은 믿을 수 없겠집만 우리가 이제서야 그린리가 주장한 인터넷의 위력을 알게 되듯 몇년후 리차드 슬래타가 주장하는 스칼라넷의 위력을 알 게 될 것이다.

박영숙 유엔미래포럼대표 (2010.08.28 12:00:48)

출처 -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216260&page=1&code=&gubun=sh&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