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분양시장 '4순위' 뜬다

자격ㆍ재당첨 등 제한 없어 수요자 몰려

9일 오후 서울 지하철 3호선 백석역 인근인 경기도 고양시 덕이동 덕이지구 신동아파밀리에 견본주택.

4일까지 순위내 청약접수가 끝났지만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순위 이외의 ‘4순위’ 신청자들로 40개 상담창구에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파주에서 왔다는 김모(45)씨는 “당첨돼도 청약통장 자격이 없어지지 않고 1~3순위 청약자가 많지 않아 좋은 층에 당첨될 가능성이 커 신청했다”고 말했다.

분양사무소 측에 따르면 4순위 접수를 시작한 5일부터 마감시한인 이날까지 2500명 정도 신청했다. 1~3순위 신청자 1123명의 두 배가 넘는다. 이 단지는 앞서 순위 내 접수에서는 67%가 미달됐다.

분양소장인 신동아건설 조남익 과장은 “청약•당첨에 별다른 규제가 없어 4순위 신청이 많았다”며 “4순위 청약자 덕에 계약이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 나을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요즘 아파트 분양시장에 순위내 청약에선 미분양이 속출하는 반면 내 미분양 물량에 대한 4순위 신청에 주택 수요자들이 몰리고 있다. 청약자격 제한이 없고 새 정부의 규제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 때문이다. 업체들도 초기 계약률을 높이기 위해 선착순 분양 대신 4순위 접수에 적극적이다.

◇[[넘쳐나는 4순위 접수 창구]]=고양 식사지구 벽산블루밍은 지난달 28일까지 순위 내 청약접수에서 모집가구 2526가구 중 청약자가 498명(20%)에 불과했다. 4일 인터넷과 견본주택에서 접수한 4순위 신청자는 미달가구수(2087가구)의 2배에 가까운 3983명에 달했다.

이 업체 함종오 분양소장은 “청약통장이 필요 없어 한 세대에서 여러 명이 신청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순위 내 접수에서 대거 미달한 파주신도시 단지들은 뒤늦게 4순위 청약에서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남양휴튼 단지가 미달된 392가구에 3347명이 신청, 경쟁률이 10대 1을 넘겼다. 벽산•한라 단지의 4순위 경쟁률은 2.8대 1이었다.

4순위 경쟁이 치열한 것은 순위 내 청약률이 크게 떨어지면서 청약통장•거주지역 등에 상관 없이 누구든 청약할 수 있기 때문. 이전에는 순위 내 마감이 많아 1~3순위 자격이 되지 않는 수요자들에게 돌아갈 몫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4순위로 당첨되더라도 재당첨 제한을 받지 않는다. 1~3순위로 청약해 당첨되면 수도권에서 5~10년간 새 아파트를 분양받기 어렵다. 한라건설 임완근 차장은 “당첨된 뒤 계약하지 않더라도 아무런 피해가 없어 층•향이 좋은 로열층을 기대한 4순위 신청자도 많다”고 전했다.

4순위 접수 단지들의 계약률도 뛰고 있다. 순위 내에서 43%나 미달한 파주신도시 남양휴튼의 당첨자 계약률은 4순위 신청에 힘입어 현재 80%대에 이르고 있다.

◇[[업체들 ‘4순위’ 잡기 혈안]]=업체들은 종전에는 선착순으로 미분양을 팔았지만 요즘에는 4순위 청약접수라는 새로운 '이벤트'에 열중한다. 1~3순위 청약 접수처럼 특정한 기간을 정해 신청을 받은 뒤 동•호수를 추첨해 계약하는 것이다.

조용한 선착순 분양보다 견본주택이 시끌벅적한 4순위 접수가 수요자들의 관심을 높이이고 계약률까지 끌어 올리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는 청약률이 떨어질 1~3순위 접수를 무시하고 4순위 청약에 홍보를 집중하기도 한다. 일신건영은 최근 청약률 ‘0’를 보인 전주시 하가지구 단지의 1~3순위 접수를 하면서 견본주택도 짓지 않았다. 시장 분위기가 나아지면 4순위 접수 일정을 잡아 견본주택을 지어 본격적으로 분양할 계획이다.

이 회사 한이중 마케팅팀장은 “순위 내 청약률이 어차피 바닥이기 때문에 기운을 빼기보다 4순위에 힘을 쏟기로 했다”고 말했다.

분양대행사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무턱대고 4순위 청약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는데 4순위 당첨도 전매제한 기간 동안 명의변경을 할 수 없고 규제 완화 여부도 아직 불확실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4순위=청약통장 가입 기간 등 일정한 자격이 정해진 1~3순위 이외로 ‘무순위’라고도 말한다. 청약통장이 필요 없고 거주지역 제한을 받지 않는다. 20세 이상 성인이면 신청 가능하다. 당첨되더라도 재당첨 제한을 받지 않고 계약을 하지 않아도 별다른 불이익이 없다. (중앙일보 2008/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