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아질 것"주민들 부푼 꿈

운하예정지 현장 르포

이르면 이번 주중 경기도 여주읍사무소에서는 새해 첫 이장회의가 열린다. 여기선 한반도 대운하가 주요 의제가 될 전망이다.

교1리 이장 김재철(56)씨는 “여주는 상수도보호구역이라서 규제가 많은데 운하가 건설되면 이런 문제가 풀리고 지역이 발전될 것”이라며 “이장 회의에서는 다같이 노력해 대운하가 만들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모아지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운하의 화물·여객터미널 유력 후보지로 거론되는 여주. 지난 4일 현장을 가보니 주민들 사이에 운하 건설에 대한 기대가 퍼지고 있다. 무엇보다 바지선이 다니게 되면 각종 규제가 풀리게 될 것이라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양태호(58·농업)씨는 “대운하가 건설되면 수변구역 규제가 풀리고 마을이 발전할 것”이라며 “공장이든 모텔이든 유원지든 뭐든지 사람이 많이 다니도록 들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터미널 후보지 등 규제 풀릴 것 기대]]

사정이 이렇게 되자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부동산 업계. 여주 지역 부동산업체들은 홈페이지에 ‘급매물, 대운하 주변’ ‘대운하 투자 유망지’ 등의 문구를 띄워놓고 투자자를 기다리고 있다. 매물 사진에 강물이 보이도록 하는 것은 기본이다.

여주 지역 도로변 곳곳에서 ‘청정지역 석산개발이 웬 말이냐’는 등의 항의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지만 운하 건설에 반대한다는 문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최근엔 운하 건설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도 걸렸다고 한다.

지난 4일 충북의 충주 조정지댐 부근. 경부운하가 생기면 서울에서 한강을 타고 온 배가 낙동강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거쳐야 하는 이곳은 강폭이 150∼200m여서 바지선이 다니는 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가금면 장천리로 들어서면서 수심이 얕아져 배가 다니려면 준설 공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충주에서 만난 주민들 역시 운하에 대한 관심이 컸다. 장완규(59·공인중개사)씨는 “충주 시민의 70%가 운하를 적극 환영한다고 보면 된다”며 “이명박 당선인의 득표율이 말해주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번 대선에서 이 당선인의 충주 지역 득표율은 47.97%. 충북 평균(41.58%)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장씨는 “지금 충주는 아파트값이 뚝뚝 떨어지는데 그 이유는 살 사람, 즉 인구가 없기 때문”이라며 “운하가 만들어지면 선착장도 생기고 인구도 늘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들 유혹 나서]]

낙동강 수계인 경북 문경으로 넘어가자 물길 상황이 많이 달랐다. 한강에서 터널로 넘어온 배가 지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마성면 모곡리의 소야교 주변 하천은 폭이 10∼20m에 불과했고 그나마 물길도 중간중간 끊겼다. 운하 건설을 위해선 강변을 넓히고 강바닥을 많이 파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길 가운데는 얼지 않았지만 강변의 그늘진 곳은 단단하게 얼어 있었다. 이날 문경의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5.3도였으며 낮 최고기온은 6.8도였다. 혹한이 닥친다면 강물이 꽁꽁 얼 가능성도 있을 듯싶었다.

이어진 신현리도 수심이 얕고 강폭이 5∼10m밖에 안 됐다. 특히 이곳에는 천연기념물인 무태장어·어름치·황쏘가리 등이 서식한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섣불리 대규모 준설 작업을 할 경우 희귀 동식물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주민들은 운하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김용환(64·농업)씨는 “요즘 토요일에도 고속도로에 나가면 화물차 때문에 길이 막히는데 운하가 생겨 그쪽으로 물동량이 가면 좋을 것 같다”며 “땅값이 오르는 것보다는 항구가 생기고 지역이 활성화되면 살기가 좋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운하(59·분재 관리사)씨는 “세계적 공법의 리프트를 설치한다는데 (문경이) 내륙 항구도시가 되는 거 아니냐”며 “운하에 관심이 많아 산에 올라가 운하 들어설 곳을 향해 혼자 사진도 찍어보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당선인 카페에 가입했더니 이름이 ‘박운하’라고 사람들이 특별대우를 해주더라”며 웃었다.

[["외지인만 좋은 일" 거부감도]]

유승극(67·농업)씨는 “예전에 이곳이 광산촌이었는데 차라리 그때가 좋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라며 “운하가 들어오면 사람도 기업도 많이 오고 자식들도 들어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도 여기서 자식들과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다. 경북 고령으로 내려가자 강폭이 300m 정도로 넓어지며 바닥만 준설하면 배가 다니기에 충분한 상태다. 사문진 2교 공사 현장 인근에선 골재를 채취하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대구 달성군 화원유원지 부근은 철새 도래지다. ‘낙동강 지킴이’로 알려진 박주덕(59)씨는 “동서로 흐르는 다른 강과 달리 낙동강은 북남으로 향해 흑두루미 같은 철새의 이동통로가 된다”며 “철새를 쫓아내는 방식으로 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대구 터미널 후보지로 거론되는 달서구 지역 역시 강폭은 넓었으나 수심이 깊진 않았다. 전반적으로 낙동강은 수량 확보가 쉽지 않아 보였다.

대운하가 지나갈 지역 주민들이 모두 이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반대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대구시 달서구의 낙동강변에서 공장작업을 하던 김모(54)씨는 “서해안 기름 유출사고에서 보듯이 운하가 생기고 배가 다니면 환경이 오염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운하를 건설하면 환경이 오히려 좋아진다는 주장은 90%가 거짓말”이라고 꼬집었다.

충주 가금면에 사는 전인수(55·농업)씨는 “땅 보상금 몇 푼 가지고 한두 해 먹고 나중엔 노숙자로 살고 싶지 않다”며 “이곳은 다 노인들인데, 터미널이 생긴다고 일자리를 주겠느냐”고 걱정했다. 그는 “운하 근처에 칼국숫집을 내도 여기 사람들이 할 수 있겠느냐”며 “관광산업도 결국 외지인들이 돈 벌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 소유인 하천부지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은 보상을 기대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 근심이 많다고 한다.

부동산을 둘러싼 잡음도 들린다. 경북 고령의 한 주민은 “이곳의 땅은 상당 부분이 외지인 소유인데 이들이 보상을 더 받으려고 요즘 나무를 막 심으려 한다”며 “그러면서 임차한 농민들에게 땅을 내놓으라고 압박해 여러 명이 곤경에 처했다”고 밝혔다.

문경의 공인중개사 임창수(43)씨는 “언론이 떠들자 내놨던 매물까지 거둬들이는 분위기”라며 “팔려던 사람마저 외지의 자식이나 친척이 ‘곧 땅값이 오를 텐데 왜 파느냐’고 말리는 실정”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당장 돈이 급한 사람들도 땅을 안 팔고 기다리고 있다”며 “거래 자체가 안 되니까 부동산 업자로서는 짜증이 난다”고 털어놨다. (중앙일보 2008/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