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효과' 엇갈리는 부동산 시장

재건축·뉴타운 ‘방긋’ … 신도시 '울상'

#서울 고덕동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이남수씨는 대선 이후 부쩍 바빠졌다. 하루 5∼10건이던 매수·매도 문의가 20여 건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 거래까지 증가한 것은 아니지만 파리만 날리던 몇 달 전에 비하면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그는 “세금 부담 완화 등 새 정부의 정책 변경을 기대해 집주인들이 매물을 회수한 반면 매수 문의는 꾸준히 늘고 있다”며 “당장 안 팔아도 좋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호가도 올라가는 추세”라고 전했다.

#최근 일산 백석동에 모델하우스를 연 한 대형건설사의 분양팀장은 요즘 죽을 맛이다. 경품까지 내걸며 고객을 불러모았지만 분양률이 20%에 머무르는 ‘참패’를 면치 못했다. 대선 전 근처에서 분양한 운정지구의 성적(81%)보다 훨씬 못하다. 그는 “은평 뉴타운이나 송도 신도시보다 높았던 분양가도 문제였지만 주 고객인 서울 거주자들이 외면한 게 컸다”며 “도심 재개발을 활성화한다는 새 정부 정책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이 신도시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선 이후 부동산 시장에 명암이 엇갈린다.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하는 강남지역의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고 있는 반면 신도시 등 외곽지역의 한숨은 더 깊어졌다. 새 정부가 추진할 종합부동산세·양도세 등 세금 인하와 재건축 활성화, 도심 재개발 등의 정책이 서울, 특히 강남에 주로 혜택을 줄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강남 기대감 ‘둥실’]]

서울 대치동의 한 아파트 단지엔 대선 이후 종부세와 양도세 인하를 요구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세금폭탄을 철폐하라’, ‘장기보유 실소유자를 투기꾼으로 몰아붙이지 말라’는 게 주된 내용이다.

주민 정모(53)씨는 “집값이 많이 올랐다는 이유로 강남 사람들이 부동산값 폭등의 주범으로 간주돼 오지 않았느냐”며 “새 정부가 실수요자의 부담을 줄여주고 거래도 활성화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1가구 1주택 장기 보유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정책 변화가 다주택자로까지 확대되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피어난다.

한 중개업소 대표는 “2주택 이상 보유자들이 ‘보유세는 몰라도 양도세라도 낮아진 다음 팔자는 생각에 매물을 회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가격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재건축 단지는 ‘빅 3’로 불리는 대치동 주공, 고덕동 주공, 가락동 시영을 중심으로 대선 직후 호가가 상승했다.

고덕동 뉴스부동산 황인성 대표는 “용적률 완화 기대감에 사려는 사람은 꾸준한데 내놓으려는 사람은 줄고 있다”며 “대선 이후 평형별로 호가가 2000만∼3000만원 올랐다”고 말했다.

대치동 명지공인 송명덕 대표도 “은마아파트 매물 중 절반이 들어갔다”고 했다. 잠실 주공 등 일부에선 호가가 1억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실거래가는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다. 초과이익 환수제 등 용적률 완화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한 조치가 거론되면서 매수자들도 관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침체를 면치 못해온 중대형도 종부세 인하 기대감에 기지개를 켜고 있다.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강남구 아파트값은 0.14% 올라 1년여 만에 처음으로 서울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압구정동 구현대7차 214㎡(65평형)는 28억~32억원 선으로 한 주 동안 1억원이 올랐다.

[[뉴타운 웃고 외곽 울고]]

기대감에선 뉴타운도 강남에 뒤지지 않는다. 도심 재개발을 통해 공급을 늘리겠다는 정책이 뉴타운 사업을 활성화하고 진척 속도도 높여주리란 생각에서다.

상계뉴타운 인근의 고려공인 관계자는 “뉴타운 매물 중 20%가 회수됐다”며 “13∼19평의 작은 평수 호가가 평균 2000만∼3000만원 상승했다”고 말했다. 왕십리뉴타운도 “매수세가 없어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지만 대선 이후 기대감이 커졌다”(양지공인 양정옥 대표)고 한다.

경매시장에서도 재개발 가능성이 있는 도심의 노후 다세대·다가구 주택의 인기가 상한가다. 30명 이상이면 많다고 했던 응찰자 수가 50명을 넘어가는 물건이 늘어나고 감정가의 두 배가 넘는 가격에 낙찰되는 물건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박갑현 지지옥션 매니저는 “새 정부가 강남 집값 상승을 용인하기 어렵고, 투자 규모가 너무 커져 부담스러워진 만큼 오히려 뉴타운이 더 낫지 않으냐는 생각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대로 개발이 구체화되고 있는 2, 3기 신도시들은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최근 분양한 고양 덕이·식사지구는 모델하우스엔 사람이 몰리지만 청약률은 저조한 현상이 반복됐다.

입지나 여건에 비춰 값이 너무 비싸다는 인식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수요자를 주된 수요층으로 하고 있는 이들 신도시들엔 새 정부의 ‘주거 복지’ 확대도 부담이 된다. 신혼부부용 아파트를 특별공급하고 서민층을 위한 주택을 서울 도심에 많이 짓겠다는 정책은 그만큼 신도시 수요를 줄이게 된다.

[[‘두 마리 토끼’ 잡을까]]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단기적으로 거래 활성화를 통해 집값을 안정시키고 장기적으로 도심 내 주택 공급을 확대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물론 ‘투기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얼어붙은 시장을 녹이면서 집값도 안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취득·등록세와 양도세를 낮추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함정이 있을 수 있다. 거래비용을 줄여 기존 주택의 매물이 늘어나지만 신규 공급이 늘지는 않기 때문이다. 1가구 1주택자가 자기 집을 파는 것은 다른 집을 사기 위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 넓고 더 비싼 집으로 옮겨가는 게 보통이라고 보면 서울, 특히 강남의 집값을 자극하게 된다. 정답은 다주택자가 여유분의 집을 내놓도록 하는 것이지만 이들에 대한 세금 감면은 또 다른 투기를 부를 가능성이 크다.

종부세 역시 수혜 지역이 강남에 집중돼 있다.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종부세 부과 기준이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될 경우 서초구 아파트의 37.51%, 강남구의 27.94%가 세금을 면제받게 되는 반면 용산구를 제외한 강북권에선 수혜 단지가 손에 꼽을 정도인 것으로 조사됐다.

박상준 리얼티랩 소장은 “부동산 폭등을 불러온 자금이 대개 강남 돈임을 감안하면 이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게 시장 전체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도심 재개발을 통한 공급 확대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이명박 당선자가 서울시장 때 완공한 청계천 부근의 풍경은 몇 년이 지나도 큰 변화가 없다. 땅이 워낙 잘게 쪼개져 있는 데다 지주들의 이해도 상충해 개발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공영개발 등 특별 조치가 필요하지만 법 개정 등 거쳐야 할 절차가 만만치 않다. 공급 확대가 현실로 나타나기 전에 시장이 불안해지면 손쓸 수단이 마땅치 않아진다. 박 소장은 “공급 확대와 가격 안정에 대한 명확한 계획을 내놓아 막연한 기대심리를 잠재운 뒤 시장상황에 따라 규제를 풀어나가는 게 순서”라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2008/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