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에 벌써 '이명박 효과'  

규제완화 기대감에 호가 강세… 매수세는 뜸해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얼마 전까지는 급매물도 잘 팔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정상 매물들도 쏙 들어갔어요.”(서울 강남구 대치동 K공인 관계자)

주택시장에 벌써 ‘이명박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새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아파트 매매시장도 술렁대고 있다. 부동산 규제 완화와 가격 상승 기대감에 매물도 많이 사라지고 호가도 오름세다. 이른바 ‘MB발’ 훈풍이 서울 강남권 아파트시장과 강북권 재개발시장에 솔솔 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매수자들은 아직까지 관망세를 보이고 있어 실제는 거래는 뜸한 편이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 매물 자취 감춰]]

대선 이후 강남권 주요 재건축 단지 아파트 매매호가가 일제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일부 단지에서는 급매물이 팔리고 매물도 회수되고 있다. 도심 용적률을 높이는 등 재건축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향후 규제 완화에 따른 가격 상승 기대감이 부쩍 높아진 때문이다.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36㎡형은 한 달 전보다 3000만~4000만원 올라 6억3000만~6억4000만원 선을 호가한다. 42㎡형도 7억8000만원 선으로 보름 새 2000만원 가량 올랐다.

개포동 개포공인 채은희 사장은 “새 정부가 용적률이나 개발이익환수제 등 각종 재건축 규제를 풀어 줄 것으로 기대하는 주민들이 많다”며 “일부 집주인들은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고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호가를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매물 부족 속 호가가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 아파트 112㎡형은 12억~12억5000만원선을 호가한다. 이달 초보다 3000만~5000만원 가량 올랐다. 인근 명지공인 송명덕 사장은 "시세보다 싼 물건이 나올 경우 연락해달라는 매수 대기자도 조금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개포동 동명공인 이형관 사장은 "분위기가 매도자 우위 시장으로 바뀌다 보니 계약 성사 직전까지 갔던 거래가 막판에 무산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규제완화 기대감에 강남권 아파트 호가가 강세다. 사진은 은마아파트.
송파구 잠실동 잠실5단지도 호가 상승 폭이 커지고 있다. 이 아파트 112㎡형은 하루 새 호가가 2000만~3000만원 뛰어 12억2000만원 선이다. 잠실동 송파공인 최명섭 사장은 "대선 이후 매물이 아예 사라졌다"고 전했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이 호가 위주로 가격 상승 분위기가 역력하지만 거래는 뜸하다. 매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잠실동 대성공인 최원호 사장은 "용적률 완화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집주인들이 '지금은 안판다'로 돌아서 거래가 끊긴 상태"라고 전했다.

또 값이 더 떨어지길 기대했던 매수 대기자들은 오른 값에 추격 매수할 기미를 보이지는 않고 있다. 급할 게 없는 집주인들은 대통령 취임 이후 판도를 지켜보겠다는 분위기 속에 호가를 올리고 있는 반면 관심을 보이던 매수자들도 급매물이 사라져 관망세로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일부 단지에선 매수세 따라붙어]]

일부 단지에서는 매수 의사를 적극 타진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강남구 압구정동 재건축단지들에선 매물이 거의 사라진 가운데 호가 오름세가 뚜렷하지만 매입 문의도 꾸준하다.

구현대5차 116㎡형은 호가가 15억~16억원선으로 지난해 하반기 고점을 찍을 당시 가격을 거의 회복했다. 신현대9차 115㎡형도 일주일새 5000만원 올라 13억~13억5000만원을 호가한다.

압구정동 나은공인 김연순 사장은 “주민들의 오랜 염원인 초고층 재건축이 허용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인지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며 "호가는 오르고 있지만 매수세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압구정동 한 공인중개사는 "급매물은 정상 매물도 사라져 가격이 좀 더 올라갈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권 일반아파트 매매시장도 미미하긴 하지만 매매 호가가 살금살금 오르고 있다. 대치동 동부센트레빌 148㎡형은 하루 새 호가가 1억원 가량 뛰어 23억~25억원 선이다. 1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감면조치 및 종부세 과표 상향 조정 등 세제 완화 기대감에서다.

대치동 대치센트레빌공인 이규정 사장은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세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이명박 후보다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매물이 아예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강북권 뉴타운 지역도 분위기 들떠]]

서울 강북 뉴타운(재개발)·재정비촉진지구도 분위기가 들떠 있다. 이 당선자가 서울시장 재임시절 강북 뉴타운 사업을 처음으로 추진했던 만큼 강북개발 사업이 날개를 달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가 상승 움직임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거래도 뜸하다. 강북구 미아동 늘푸른공인 관계자는 "매수 문의는 꾸준히 있는 편이지만 싼 매물만 원하는 수요자들이 대부분이어서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집주인들은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지만 매수자들은 분양가 상한제 등 각종 규제와 계속된 금리 인상 기조로 수익성에 부담을 느끼고 있어 가능한 한 가격이 낮은 물건에만 매입 의사를 보이는 등 매우 신중한 입장이라는 것이다.

[[강남권 집값 향방은?]]

전문가들은 차기 정부의 규제 완화 강도에 따라 시장 변화 폭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대표는 "재건축·재개발 공급이 활성화되면 기존에 규제에 묶여 재산가치가 떨어졌던 강남 저층 재건축아파트들이 투자 대상으로 다시 주목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부동산 정책의 기조가 갑자기 바뀌기는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거래시장 정상화’는 필요하지만 새 정부가 당장 대규모 규제완화책을 내놓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이 많다. 자칫 규제완화가 겨우 진정세를 찾은 집값을 끌어올리는 심리적 도화선이 될지도 모른다는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란다.

부동산퍼스트 곽창석 전무는 "새 정부의 주택정책 목표도 가격 안정에 최우선을 둘 수밖에 없다"며 "규제 완화가 가시화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와이플래닝 황용천 사장도 "규제를 풀더라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 시차를 둔 단계적 완화일 수밖에 없다"며 "특히 시장 예상만큼 완화 폭이 크지 않다면 가격이 다시 약세로 돌아설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07/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