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도지역 국경선 확정을 둘러싼 협상년표

▼ 한국측 간도 영유권 주장 일지
- 1869∼1870 함경도 지역에 대흉작이 들자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가 농경지를 개간하는 조선인들이 급증.
- 1882 청나라가 간도 주민들을 자국인으로 편입하겠다는 방침을 고시. 이에 간도의 조선인들은 조선 정부에 “청의 시도를 막아 달라”며 청원.
- 1887 관찰사 조재우(趙存愚)가 조정의 지시에 따라 백두산 부근의 산과 하천을 둘러보고 을유·정해 감계에 대한 의견서인 담판오조(談判五條)를 보고. 토문이 조선과 청의 경계임을 확인.
- 1897 조선, 서상무(徐相懋)를 서변계(西邊界) 감리사로 임명해 압록강 대안인 서간도지역의 한인을 보호하도록 함.
- 1898 내부대신 이건하(李乾夏)가 함북관찰사 이종관(李鍾觀)에게 국계 답사를 지시. 경원군수 박일헌(朴逸憲) 등은 “흑룡강 하류 동쪽이 조선 땅인데 청나라가 러시아에 할양한 것은 용인할 수 없으니 3국이 회담해야 한다”고 보고.
- 1900년 경 평북관찰사 이도재(李道宰)가 압록강 대안지역을 각 군에 배속하고 충의사(忠義社)를 조직해 이주민을 보호.
- 1901 변계경무서를 회령에 설치하고 교계관(交界官) 2명을 임명. 무산과 종성에 분서를 둬 간도 한인을 보호 관할하고 사법·행정·위생을 담당해 고시문을 내고 일지를 기록.
- 1902 이범윤(李範允)을 간도시찰사로 임명. 간도 지역에서 민의 판적(版籍)에 든 자가 2만7400여 호, 남녀 10여만 명으로 조사됨.
- 1907 김현묵(金賢默) 외 13명, 주범중(朱範中) 외 13명 등 북간도민들이 “수십만의 생명을 보호해 달라”며 대한제국 내각에 청원문 제출.
- 1983 김영광(金永光) 의원 등 국회의원 55명 ‘백두산 영유권 확인에 관한 결의안’ 국회 제출.
- 1995 김원웅(金元雄) 의원, 국회에서 “간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

[출전] 동아일보




역사년표Map BC -AD 1 -600 -1000 -1500 -1800 -1900 -1950 -1980-현재 (1945년이후 10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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